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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essay

최영실-브람스와 백합

작성자사이펀|작성시간11:29|조회수18 목록 댓글 0

Poem essay

 

브람스와 백합

 

최영실

 

 

 첫 음의 슬픔이 안개처럼 낮고 느리게 밀려온다. 나무를 안고 한 몸이 되어 두 팔로 깊숙이 첼로를 안고 웅크려 활을 천천히 켠다. 그가 울고 있을 거라고 느낀 건 첼로 소리가 꼭 짐승의 울음 같아서였다. 마치 자신을 꼭 닮은 누군가를 안고 고개를 숙인 채 우는 듯한.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금세 그칠 것 같아 닦지 않고 그냥 두었던 눈물은 콧물까지 뒤범벅되었다. 흔한 티슈조차 없어 옆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원피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려 끈적거리는 액체를 닦아내었다. 백발이 성근 연주자는 일본 도후 가쿠엔 학장을 지낸 첼리스트 츠츠미 츠요시. 그의 나이 84세다. 팬덤을 몰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무대매너를 보여주는 젊은 연주자들이 결코 낼 수 없는 소리다. 노장의 악보에 그어진 우리가 볼 수 없는 선 한 줄. 마치 스포이트로 약품을 떨어뜨렸을 때 리트머스 종이가 서서히 다른 색상으로 변하는 것처럼. ‘시간이라는 정직한 시약은 악보의 오선에 한 줄을 더 긋는다.

 뜨거운 여름 중년의 여성 둘이 긴 여정으로 먼 곳을 향해 떠나왔다. 가족을 두고, 냉장고를 비우고, 김치를 담그지 않은 채. 마치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커다란 캐리어와 함께 사막의 한가운데 카페 앞에 남겨진 풍경으로 서있는 야스민처럼. 이렇게 긴 여행의 호사를 과연 끝까지 우리는 누릴 수 있을 것인가. 누구 한 사람,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고 집에서 급한 호출이 오면 달려가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 집을 비우게 되었다는 괜한 스스로의 자격지심에 돈을 좀 아껴 써보자는 합의가 있었다. 쌀과 김치, 장류까지, 밥을 지어먹을 반찬까지 꼼꼼히 챙겼다. 숲이 있는 멋진 곳에서 열리는 음악제에 개막 공연부터 폐막까지의 보는 일정이라 길어졌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말했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아내와 엄마라는 신분으로는 더 그러하다. 쉬이 가라고 부추기지도, 그렇다고 말리지도 못하는 집 동거인들은 허락보다는 침묵을 택했다.

 낮고 깊은 저음의 첼로 소리에 묻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울음을 잠식시킬 수 있었다. 나는 한여름 밤의 꿈속에 앉아있다. 노장의 연주자는 나의 울음을 위해 저토록 정성을 다해 활을 당긴다. 이런 공연이 아직도 하루에 한두 번, 십수 번이 우리에게 더 남아있다. 달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시작한 여행인데 만월이 되었다. 노을이 붉어졌다 사라지면 하늘이 잉크 빛으로 환해진다. 언덕에 차를 세우고 치마를 펄럭이며 한참을 춤을 추었다.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건 달빛이 하는 일이라고, 정말 그러하다고.

 그렇게 잠들고 싶지 않은 밤을 열흘 그리고 삼일을 더 보냈다. 가득 찼던 달은 기울기 시작했고 나는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 중에서 우리는 바닷길을 택했다. 야채나 주전부리로 끼니를 때워 여비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을 서로 칭찬하며 달콤한 물회로 여행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사막에 놓였던 야스민의 캐리어가 아파트 주차장에 놓인다. 집을 나갈 때 쌌던 짐보다 돌아올 땐 한 보따리 짐이 더 늘어났다. 평소 잘 사지 않았던 여행지의 핫한 음식과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위해 차릴 저녁 찬거리를 잊지 않고 장을 보아 서다.

 대충 가방 뒷정리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소파에 앉았다. 문득 작년에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한 번도 가족을 벗어나 좋아하는 긴 여행을 해보지 못하셨다. 친구로 동행이 되어 한 번쯤 다녀왔더라면. 엄마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완성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 듣고 싶어 lp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2악장 중간쯤 듣고 있는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퇴근하는 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연다. “지겹도록 음악 듣고 왔을 텐데 또 음악이야?” “응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어서바닷가에서 사온 백합 조갯국이 뽀얀 국물을 내며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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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실|2021년 여행산문집 『지금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를 발간했다. 사진산문집 『산책』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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