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essay
좋은 집
홍영지
유튜브에 어릴 적에 살던 동네의 옛 정경이 동영상으로 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남아 있던 부산의 취약지대 범일동 매축지. 그것을 보는 순간 흑백영화 같은 묵은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물처럼 얽혀 있던 좁은 골목길과 땅바닥에 질퍽하게 고인 구정물에서 풍겨나던 악취들. 여름에 큰비라도 내리면 금방 물은 무릎 위까지 차올랐고 집집이 재래식 변소에서 넘쳐난 오물이 때를 만난 듯 둥둥 떠다녔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것도 물이라고 뛰어다니며 장난질 쳤다.
거기서 소년기를 보냈다. 방 한 칸에 오 형제가 비비적거리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밤에는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며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을 잤다. 여름엔 모기와 빈대는 얼마나 집요하게 피를 빨며 괴롭히든지. 아픈 기억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식수 구하는 일이 큰 고역이었다. 동네에 딱 하나뿐인 공동수도를 관리하던 여인의 갑질이 여간 아니었다. 구불구불 수십 미터씩 줄지어 놓인 물통을 발로 차며 고함을 질러대던 기갈 센 그 여자. 그것도 권력이라고 그리 위세 부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피난민들의 애환과 하층민들의 고된 삶이 버물려 있던 그 동네에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렸고 옹기종기 밥상에 둘러앉은 정겨운 가족들의 모습도 열려진 문틈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동네가 개발되며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판자집들이 모두 헐렸다. 옛날에 살았던 우리 집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지금 아파트 건립공사가 진행 중이다. 몇 년 지나면 새 아스팔트가 깔린 반듯한 길이 나고 4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가 들어선단다. 상전벽해란 이런 걸 두고 말함일 거다. 수도꼭지는 틀기만 하면 물이 시원스레 쏟아지고 비데까지 설치된 좌식변기에서 편안히 앉아 볼일도 보게 될 게다. 좋은 집이 새로 한창 건설되고 있다.
이십 대에 들어서며 집을 떠나 타향살이를 했다. 시골 오지로 발령을 받았다.
전기도 없는 벽촌이었지만 처음으로 혼자 누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본채에서 마당을 건너 마주 자리한 사랑채로 겨우 두어 평 남짓했지만 따뜻한 방에서 맘껏 발을 뻗고 잠을 잤다. 편하고 좋았다. 호젓한 새 삶이었다. 그러나 혼자 덩그라니 밥상을 대할 때면 불현듯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아 먹던 밥상이 그리웠다.
어둠이 잦아들고 웃음소리와 함께 창호에 비치는 주인집 가족들의 그림자를 보면 한 방에서 형제들이 오글거리던 집이 그리웠다. 비 오는 날이면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헤며 비가 새던 그 집이 그리웠다. 가끔 감상에 젖으면 조그만 트랜지스터 턴테이블로 비숍의 <홈 스윗 홈>을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즐거움과 호화로운 집을 찾아 어디든 돌아다녀 봐도/ 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 같은 곳은 없어라/ 하늘의 보살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니/ 세상 다 둘러봐도 그 편함 어디에도 없어라/ 집 떠난 이에겐 그 어떤 호화로움도 덧없나니/ 오! 초라한 내 집 내게 다시 돌려다오
내 부름 따라 즐겁게 노래하는 새들 모여드니/ 돌려다오 더할 수 없이 깨끗한 마음의 평안을/ 아- 다정한 집. 내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어라
우리나라는 이제 핵가족화되었다. 겨우 둘 아니면 셋, 많아 봐야 넷, 더러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덩그러니 늙은이 홀로 외톨이로 살고있는 집들로 변해 간다. 많은 가족이 붐비적거리며 사는 모습은 어디서든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 간의 진득한 정은 엷어지고 가끔씩 언론에서는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나라에서 집이란 말은 영어를 빌리면 House와 Home의 개념을 겸하고 있다. 거주공간으로서의 집은 생활의 편리를 제공해 주지만 가정으로서의 집은 최후까지 의지할 마음의 보금자리다. 가정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집도 지옥으로 변한다. 집은 안락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필요 요건이다. 집을 장만하기 위하여 젊은이들은 거의 청춘을 바쳐야 한다. 결국 집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집은 존재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깊은 정과 따뜻한 사랑 그리고 위로와 평화로움이 깃든 집.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떠나면 비싸고 편리한 좋은 집이 아니라 다정하고 위로받는 가족이 있는 따뜻한 좋은 집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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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지|2014년 《에세이 문예》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파색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