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산행기
오후가 되어서야 맘먹었던 인왕산 산행에 나섰다. 얼마전 ‘송현 열린 광장’에 설치된 겸재의 인왕재색도 영상을 보면서 불현 듯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그림에 나타난 전체적인 인상은 북촌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닮았는데 세세한 모습을 비교하면 산세의 굴곡과 바위의 모습등이 달라보인다. 그런데 실경과 그림을 차례로 보여주며 자막으로 나타난 설명글이 특별히 눈에 들어왔다. 인왕재색도에는 겸재가 인왕산을 수없이 올라다니면서 축적된 경험과 실재의 모습이 함께 투영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거기서 보여준 실제 모습들을 찾아보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복궁역에서 7022번 버스를 타고 창의문에서 내려 1시 30분 산행을 시작했다. 길 입구의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니 ‘볕뜨락’이라는 작은 도서실 안에 윤동주 시인의 시집 및 문학서적과 책을 읽으며 그의 시를 필사할 수 있는 책상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한 가족이 그 책상에 오붓하게 앉아 비치된 종이에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비춰졌다. 그 위쪽 언덕에 오르니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새겨진 시비가 보였다. 그 언덕이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명명되어 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질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윤동주
어릴적 교과서에서 이 글을 처음 대하며 마음속에 아픔이 일어남을 느꼈었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시인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과 그의 맑고 순수한 영혼이 느껴졌다. 시비의 글을 읽으며 자료를 검색해보니 “윤동주의 좌우명격 시인 동시에 절명시에 해당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시인의 언덕
김석환
옛 시인이
거닐던 언덕에
솔바람이 스쳐간다
산길로 이어지는
언덕을 거닐때
떠오르는 상념
멀리 트여나가는
시선 끝에 닿는
세상의 고뇌를 삭이고
붙잡힐듯 떠오르는 시상을
가다듬으며
시절 시름을 잊으려
이 언덕을 거닐었을까...
그가 거닐던 언덕
시비에 새겨진
'서시'의 여운이 저며올때
시비 너머로
시인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20250302
그 위로 오르다 보니 전에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을 준비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장면들이 나타났다. 특히 한양도성을 그릴 때는 석축의 축조방식을 그대로 나태내고자 성곽 돌의 크기와 개수에 맞춰 세세히 묘사하느라 시간이 많이 결렸다. 오르는 동안 날씨가 흐리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오전에 내렸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다 다시 흐려지고 있었다. 오후에 다시 비소식이 예보되어 있었다.
13시 58분 등성이 가까이 오르다 보니 인왕산 정상의 치마바위 경사면이 거대하게 바라보였다. 우측 끝에는 겸재의 인왕재색도에 그려진 바위 모습과 비슷하게 생긴 바위들도 눈에 띠었다. 평소 유심히 보지 않고 스치듯 지나가던 모습들이 관심을 갖고 보니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왕재색도의 표현이 조금 더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그 곳에 멈춰 그림을 그리다 보니 맞춰논 알람소리가 들렸다. 바위결과 근경의 나무들을 세세히 그리려다 보니 시간이 금새 지났다. 오늘은 돈의문로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3시 55분 시작하는 관람권을 예약해서 늦지 않으려고 알람설정을 해 놓았었다.
서둘러 화구를 챙기다 보니 빗방울리 한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림이 비에 젖지 않도록 미리 준비한 종이를 접어 바인더를 감싼후 올라갔다. 그림을 그리며 바라보았던 정상부 바위 앞에 다다라 철계단을 딛고 올라섰다. 평소 그 구조물을 빨리 지나치려는 의식으로 지나가다보니 그 주변 바위들을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철계단 위로 오르니 백악산(342m)과 북한산 비봉 능선 등 주변 산세가 넓게 펼쳐보였다.
2시 48분 인왕산(338.2m)정상에 도착했다.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내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우산을 펼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그림이 비에 젖게 될 것 같았다.
돈의문터를 목표로 산길을 내려섰다. 많이 오르내린 길이라 지나는 길 주변 지형이 숙지되어서 발디딜 지점이 눈에 잘 들어와 빨리 지날 수 있었다. 정상부를 지나 내려서며 안산쪽을 바라보니 급경사지에 쌓은 성곽이 촘촘한 계단처럼 보였다. 그리고 앞쪽에는 멀리서 작게 보이던 범바위가 기세 있게 암릉미를 떨쳐보였다.
사직터널 건너 이회영 기념관을 지나 다가구 주택들이 촘촘히 서 있는 골목을 지나다 보니 건물 피로티 안으로 한양도성 성곽 돌이 드러나 보였다. 지금 같으면 집을 지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연이은 집들이 그렇게 버젓이 서 있다.
점차 빗방울이 많아지고 있었다. 비를 피하려고 쏜살같이 지나다 보니 3시 16분 월암근린공원이 나타났다. 오래전 TV에서 그 곳을 배경으로 한양도성에 관한 인터뷰 요청을 받고 촬영했던 장소여서 그 때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옆에 보이는 성곽은 여러시대에 걸친 다양한 축조방식이 마치 조선시대 천을 잇대어 만든 보자기처럼 짜깁기 하듯 나타나 있다. 초창기에 자연석으로 쌓았던 것을 세종때 작은 사각형 돌로 반듯하게 쌓았고 전란을 겪으며 파손된 곳을 보수하면서 점차 성곽돌이 커지게 되었는데 이 곳은 그 여러시기의 다양한 축조방식이 함께 드러나 있다.
잠시 후 기상 박물관 옆을 지나 3시 20분 돈의문터 옆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지나 돈의문길로 나와 산행 일정을 마쳤다. 전에 한양도성 당일종주 등 여러차례 걸었던 길이지만 다시 걷다보니 새로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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