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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후기(국외)

[스크랩] 중국 노산 태산 등정기

작성자이종호(노원)|작성시간10.11.30|조회수188 목록 댓글 1

 

중국 노산 태산 등정기


태산(泰山)은 영산(靈山)이요 노산(魯山)은 명산(名山)이었다. 이번엔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갔다. 청도까지 750km, 16시간 걸렸다. 현지시각 아침 8시 15분에 도착, 오랜 기다림 끝에 입국수속을 마치고 청도에서 40km 거리의  노산으로 향했다. 산동성 청도는 중국의 4대 항구도시로 과거 독일의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도시 속에 19C 유럽식 건물들이 공존하며 오히려 역사적 가치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가는 도중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날씨가 흐려지면서 10월 중순(17일) 치고는 춥게 느껴진다. 시내를 벗어나자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왼편으론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노산산맥이 뻗어 내려온 것이다. 갈수록 점점 더 그 위용을 드러내는 산세가 마치 금강산과 월출산을 합쳐 놓은 듯 하다. 12시 36분 노산거봉주차장에 당도했다. 전면에 바로 보이는 큰 산이 어른처럼 버티고 서 있다.


신선들이 산에서 바다를 굽어보는 도가의 발상지 노산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해발 400m의 산행들머리로 이동한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포장도로 아래쪽 산자락에 빼곡히 들어찬 유럽풍 붉은 지붕의 전원주택단지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길 양편으로 산을 깍은 벽면에 각종 글과 문양을 새기고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자연석이 아니고 시멘트를 뿌려서 만든 짝퉁 이라고,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다. 노산은 진시왕이 불로초를 찾아다닌 산으로 유명하고 중국 도교의 발원지인데 이와 관련한 내용들이 벽면에 계속 이어진다.


오후 1시 06분 노산입구 너른 공터에 도착했다. ‘天地淳和’라는 글이 쓰여진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의 정문이 앞을 막고 서 있고 그 뒤로 운무에 반쯤 가려진 노산의 자태가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시야에 들어왔다. 단체사진부터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

 

 

날씨가 꽤 쌀쌀하다. 정문을 통과, 포장길을 따라가니 잠시 내리막 계단길이다. 그저 평탄한 돌길이 이어지고 대숲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얼마쯤 올라가다 머리를 들어 보니 기기묘묘한 암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우측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계곡이지만 수량이 그리 많지 않고 설악산만은 못한 것 같다.


이후부터 가파른 계단길이다. 가능한 천천히 산을 음미하며 걷는다.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보인다. 일행들 대부분 케이블카(편도 40위엔)를 타고 올라갔다. 산을 온전히 느끼려면 내발로 걸어서 올라야 한다는 신념(?)으로 끝까지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처음엔 춥더니 땀이 나기 시작한다. 얼마쯤 가다 뒤돌아보니 저 멀리 황해가 희미하게 보인다. 바다에 면해 솟아오른 노산은 그래서 명산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가을 산엔 제법 단풍이 물들었다. 대부분 소나무 등 침엽수 사이에서 울긋불긋 수를 놓은 듯하다.


 

오후 2시20분 케이블카 종점에 도착하니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에 붉은 리본을 잔뜩 매달아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리라. 오를수록 점점 더 멋진 바위를 보면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른다. 이어서 커다란 바윗돌이 포개어 이루어진 이문(離門)을 지나고 왼편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碑)에서 불끈 솟는 힘을 느낀다. 그 주변에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마치 암석전시장 같다. 월출산이 연상된다.

 

전망대를 지나 오른편에 종처럼 생긴 암봉을 지나면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손문(巽門)이다. 조선족 가이드가 오이를 건넨다.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길 위엔 기와지붕이 덮여있다. 다 오르니 선천교(先天橋) 이정표가 보인다. 바위틈 사이로 좁은 돌계단의 석문을 빠져나오자 시야가 탁 트이면서 노산 봉우리들이 운무에 휘감긴 채 선경(仙境)을 연출하고 있었다.

 

                                       (위 두 사진은 퍼온 사진임)

 

두개의 거대한 암벽 사이 협곡 끝에 아치형 다리가 놓여있는데 선천교(일명 허공다리)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선천이란 생과 사의 경계 없이 고요한 상태로 어머니의 뱃속 즉 모태 같은 곳이다. 정상 아래에는 육합정(六合亭)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낮에는 구름 속을 거닐고 밤에는 별을 따는 곳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보니 올라왔던 길이 한눈에 보이며 전망이 최고다.

 

오후 3시 드디어 정상(영기봉:1,080m, 1,133m의 거봉은 군사시설)에 올랐다. 높지는 않지만 깊고 넓은 노산은 용 수백 마리가 꿈틀거리면서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이며 바다와 바위의 기운이 합쳐 신묘한 에너지(氣)가 발산하여 신선들이 놀기 좋은 곳이라는데, 추워서 그럴 여유도 없이 바로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계속되는 돌계단 길은 오를 때보다 지루했다. 왼편으로 사람 얼굴 닮은 바위가 보인다. 올라올 때 못 본 바위다. 서산위로 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오후 4시 20분 하산을 마쳤다. 약 3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바위 산행은 기를 내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어 그런지 별로 피곤하지가 않다. 명산은 높고 큰 산이 아니라 바위와 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산이다. 노산의 물은 천연광천수로 유명한 청도맥주를 만들고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내일 태산에 가기위해 옛날 제나라(강태공이 초대 왕) 땅의 수도였던 임치로 이동했다. 멀고먼 밤길을 달려 11시가 다되어 호텔에 도착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중국인의 영혼이 숨쉬는 태산


우리에겐 양사언의 시조로 더 잘 알려진 태산은 평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이 시조를 노래로 부르는 가곡을 취미로 배우면서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 노원구등산연합회에서 단체로 가게 되어 동참한 것이다. 이튿날 아침 태산의 거점 도시인 태안(泰安)으로 출발했다. 태안은 공자가 태어난 곳(곡부)으로 인구 150만의 드넓은 평지라 복숭아와 생강, 마늘 생산지로 유명한데 마늘 1톤이 삼성핸드폰 1대 값이라고. 태안으로 접어들자 날씨는 더 흐려지고 태산 진입로 포장공사와 가로수 식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오전 10시30분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어제의 노산에서와 달리 복잡하고 혼잡한 관광지 분위기다. 저 멀리 태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관문인 듯 문주가 넓은 도로 양편에 서 있다. 그리고 상징조형물, 사진 등이 장식되어 있다.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셔틀버스 주차장이다. 태산은 해발 1,545m로 800m 지점까지 셔틀버스가 올라간다. 실제로는 그리 높지 않은 태산이 높은 것으로 인식된 것은 주변이 평야지대라서 더 높아보였던 것이리라. 11시14분 태산입구에 도착하니 여기도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매표소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돌계단 길이다. 기념품상점들을 오른편에 두고 좌측에 커다란 고목을 지나 향나무 숲길을 지나는데 산 위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절벽마다 붉은 글씨로 새겨진 글(문학과 시화에 등장하는)들이 눈길을 끌기 시작한다. 영천문(迎天門)을 통과, 좌측에 계곡을 끼고 우측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보며 걷는다. 아치형 돌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가파른 계단길이다. 중국인들이 계단을 꽉 메우면서 내려와 잠시 대기. 五大夫松앞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보이는 협곡이 절경이지만 운무와 가스로 시야가 흐려 주변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더 위로 올라가니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望人松이 있었다. 이어서 안개 속 돌계단 길을 계속 오르며 龍門을 통과했다.  

 

 

오후 1시 정각에 南天門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 이르는 문이란 의미와 달리 주변엔 온통 음식과 기념품을 팔고 있어 시장을 방불케 한다. 가이드가 산장휴게소로 안내한다. 여기서 점심을 먹게 되어 있다. 원형테이블에 둘러앉아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정상을 향했다. 天街門을 지나니 너른 거리인데 여기까지 상점들이 들어와 있다. 升門을 지나자 기온은 더 내려가 춥고 바람이 세차다.  

 

 

주변은 온통 희뿌연 운무상태. ‘登泰山, 小天下’ 라고 했는데 지금은 ‘登泰山, 望雲霧’다. 거의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구름을 헤치고 정상부에 도달하니 갈림길로, 남천문에서 750m 지점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60m만 더 올라가면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이다. 남은 힘을 다해 오르다 보니 우측으로 비석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에 세로로 새긴 글씨가 눈길을 끌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오후 1시50분 드디어 태산의 정상에 올랐다. 거기엔 산봉우리 대신 옥황상제를 모시는 건물이 있었다. 앞마당엔 거북 형상의 바위에 비석이 세워져 있고 ‘泰山極頂 1545米’라고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주변 난간엔 연인들 언약의 상징물인 자물쇠가 수없이 걸려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옥황상제의 금동좌상과 ‘玉皇大帝’라고 세로로 쓰여 진 위폐와 제단이 모셔져 있다. 묘한 신비감이 느껴져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소원을 빌어본다.


 

돌아 나오며 양쪽에 위치한 관음보살 모신 곳과 재물신 모신 곳을 들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운무 속을 가르고 내려오니 東神門이 있고 그 안 쪽에 “벽하사”라는 절이 있었다. 밖에서만 보고 곧바로 百神門을 통해 내려왔다. 가파른 돌계단길이 길게 이어진다. 望異聖蹟門으로 나오니 공자묘 가는 갈림길이다. 孔子廟는 아주 가파른 돌계단을 한참동안 올라야 닿을 수 있는데 등산으로 단련된 나도 힘들 정도다. 공자님 만나 뵙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노릇인가? 공자님 상이 모셔진 사당에서 합장을 했다. 이곳 역시 촬영금지 라지만 관리인에게 돈을 내면 가능하다고 한다. 나오다 보니 벽면에 ‘儒’ 자가 선명하다. 유교의 본당인 것이다. 유교 이전에 도교인데 순서대로 어제 노산부터 보길 잘 했다.  

 

 

 

이제부터 본격 하산이다. 약 10km에 이르는 길을 되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 번에도 케이블카를 안 타고 7,412개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내려갔다. 올라올 때와 같이 젊은 연인들이 향과 열쇠(자물쇠)를 들고 힘든 고행 길을 마다않고 오르는 모습이 대견하다. 사랑의 힘이 아니겠는가. 천천히 내려오니 오후 4시다. 총 산행시간 4시간 40분 걸렸다. 13억 중국인의 정신적 고향 태산, 중국 5악(岳) 중 하나로 역대 중국의 황제들이 자신의 즉위를 하늘에 고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봉선”이란 의식을 올렸고 백성들에게는 수천 년에 걸쳐 민간 신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성스러운 산이다.


비록 운무에 가려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오히려 마음속으로 상상하며 그려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었다. 오래 전 백두산과 황산에서도 그랬고 얼마 전 일본 북알프스 에서도 그랬다. 훤히 드러난 모습보다 감추어진 모습들이 더 진한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은 사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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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병협(서울용산) | 작성시간 10.12.02 좋은 곳 다 다니시네요. 덕분에 즐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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