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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장기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인모 선생이 올라가시고
그 뒤 2차로 워커힐 호텔인가 어딘가에 대기들을 하시며
올라가신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답니다.
이 일들은 아마 문민정부 말_ 국민의 정부 시기일 겁니다.
선생님은 잘 올라가셨고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워커힐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못 갔습니다.
한 집에서 잠도 잤던 적도 있고, 식사도 하고
결혼할 아내와 찾아가 주례를 부탁도 했었죠.
선생님은 이랬습니다.
이념이나 정치, 역사 등에 말씀이 없으시고
식사는 손수 차려 드실 때도 있었지만 과식이 없으시고
술은 안 드시고, 대화를 해도 경청을 하시고
밤 10시면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작성자
시사평론
작성시간
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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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나는 지금도 북으로 넘어가셔 이미 돌아가신
그 선생님의 존함과 용모와 체격과 눈빛과 음성과 자세와 생활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어렴풋이나마 알며....... 잘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미 몸에 체현된 자기관리, 생활습관에서
나는 한 사람을 보았고 한 세계를 보았습니다, 청년시절에......!
작성자
시사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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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이른 아침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시어
새벽운동을 가시고
겨울철엔 냉수마찰을 하시더군요.
그러신 뒤, 배달된 신문을 두터운 돋보기안경으로 거의 정독을 하시더군요.
아침에 모시고 버스를 탔는데 만원이라 선 채로
몇 정거장 지나자 이미 고인이 되신 저명한 기독교계 원로 목사님께서
우연히 승차했습니다.
원로목사님은 무언가를 꾸준히 말씀하시는데
장기수 선생님은 계속 경청만 하시더군요.
혁명가는 저렇구나, 청년시기 때 직접 느낀 점입니다.
작성자
시사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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