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어도 가을날이어도 좋다. 그날들의 조용한 산책길이라면 더욱 좋다. 살갗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바람과 햇볕이 동행하면 더욱 좋고. 그 속에 섞여있는 가벼운 적막과 고적....... 거기서 멀어지려는 싸늘한 습도와 회색빛 우울은 아주 털어라. 일상의 맥없는 굴절까지. 세상은 무언가 뒤틀렸어도, 생명의 씨앗은 어김없이 곳곳에 내려 고통의 시간을 채운 뒤 싹틀 것이니. 얼음장 물살 밑일지라도. 그러니 어림잡아 두어 시간 신열이 다가와도 산책의 시간을 가져라. 여름날이어도 겨울날이어도 좋다. 그대에게 여유만 있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독자이면서 작가라 할만하다. 독서를 하고 습작을 하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신과 육체노동이면서 외로운 소호벤처다. 이 창조대열로의 노크는, 정말이지 아무나의 선택과 결정으로 될 수 있는 관건이 아니다. 함부로 발 디딜 수 없는 캄캄한 세계다. 하물며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작가라는 공인은 필요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무관하다. 문학예술은 이미 여타의 분야와 달리 세계의 영역과 차원을 총괄하며 갈 길의 구별을 독특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불을 다스려 뜸들이고 익힌 뒤, 세상의 평가는 응당 받아야 한다. 그때부터 작가정신을 어떻게 세워 펼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작성자국제평론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2.05.21
답글 [나의 문학이론] 25
*<나의 벗(문우)은 있는가>
글이 되지 않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자리를 박차고 술이라도 한잔 마시며 즐겨라. 다만 술도 음식이니 잘 삭여야하고, 심령과 정서가 재충전되면 정색하고 책상을 잡아당겨야한다. 왜 고통스러울 때가 없겠는가. 그러니 붓을 든 자는 찢어진 그물을 함께 보망(補網)할 벗(문우)을 필히 두어야 한다. 그 아스라한 술잔의 허정(虛靜)에서 간혹 실마리가 풀어지기도 하고, 차디찬 무관심의 갈급 속에서 방황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