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휴머니즘이 가족들끼리 치열한 갈등과 대치 속에 그려지고, 사회로부터 반영된 인간소외와 소박한 꿈의 파탄이 밀도 있게 짜인 작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A.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을 말하고 싶다.
작성자국제평론작성시간22.06.02
답글 문학부문 혹은 문단이라는 곳도 쪽파인지, 양파인지, 대파인지 무슨 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이미 분파주의로 고착된 성격이 강한데
예전 국정교과서 사태처럼 역사왜곡과도 같은 정신분열적 강박심리가 심한 것 같습니다.~.
작성자국제평론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2.06.02
답글 평론과 평론가들...
예전에 도종환,용혜원,이해인 시인들이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평론은 이들에게 야박하다시피 했던 것 같습니다. ㅎ작성자인향만리작성시간22.06.02
답글 평론은 그야말로 문학적 생산과의 관계에서 본연의 평(評)을 우선해야한다. 심지어 평론은 쓸모없다 해도 무리 없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가 가능하듯, 문학예술에 있어서도 구매자들은 그 어떤 감상을 느껴 응당 품평을 하기 때문이다. 굳이 평론가가 필요하다면 소수정예로 전문성을 갖춘 무소속의 전사들일 것이다.
작성자국제평론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2.06.02
답글 [나의 문학이론] 42
*<시대가 요구하는 평론가>
평론은 필요치 않다. 거의. 하나의 눈물겨운 시도와 표현을 부풀려 평가하고 혹은 애써 무시한다. 이것은 약방의 감초처럼 쓰임새는 있으나, 이따금 안정된 정족수가 필요한 기성집단들의 당연논리에 따라 덩달아 춤추기도 한다. 따라서 평론가는 엄격한 검열관인 동시에 곧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통관원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무분별한 개입과 판정에 따라, 싹은 자라 꽃피우기 전에, 예컨대 ‘문하’(門下)의 온실로 줄을 서거나, 그 일파의 위세를 위한 분재로 마구 진열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