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낙을 받았거나 혹은 받지 않고 물건을 가져가 썼다고 치자. 두 경우 모두 사용 후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달라하지 않았고 또는 그 사실을 일방이 모른다며, 반납하지 않고 주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성립되지 않으며,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곤란한 억지다. 하물며 그 도덕성과 사실관계를 부인한다든지, 착오나 우연의 습득으로 밀어붙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작성자국제평론작성시간22.06.05
답글 전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의의를 가진다. 한 순간을 대표할 수도 있고 하루를 대표할 수도 있고 한 달이나 한 분기, 한 시기를 대표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전술이다. 하나의 전략을 성공에로 이끄는 과정에는 열 가지 전술이 있을 수도 있고 백가지 전술이 있을 수도 있다. 하나의 전략을 위해 한 가지 처방만을 내세우는 것은 혁명에 대한 창조적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교조이다.
교조는 자기의 손발을 자기스스로 얽어매는 미욱한 자살행위이다. 교조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생동하고 박력 있는 정치를 볼 수 없으며 도도하고 활력에 넘친 혁명의 장강을 만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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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_ <세기와 더불어> 중
작성자국제평론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22.06.05
답글 만일 혁명이 혁신을 배제하고 기존방침의 고수만을 절대화하는 데로만 나간다면 그 혁명은 흐름을 멈춘 강물과 같이 된다. 혁명은 자기가 세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 맞게 전술을 부단히 갱신해야 한다.
이런 갱신이 없다면 혁명은 침체와 답보를 면치 못하게 된다. 한 방법이 50년 후에도 유효하고 100년 후에도 절대적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망상가가 어디 있겠는가. 이것은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성과 의식성을 무시하는 입장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