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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문학이론] 73


    *<작품해설과 마주치기까지>

    작품해설. 이처럼 난감한 것이 또 있을까. 독자로서- 문학이든 비문학영역이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을진대- 각자들이 특정작품을 읽어내려 감상의 느낌과 언질을 얻는 쪽을 권장하면 옳은 일이다. 예전엔 작가자신 혹은 편집인 또는 문우들이 출판기념과 아울러 독자들을 위한 작품개괄 및 독서안내 비스름한 취지의 촌평을 책머리를 통해 밝혀주며 거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평론가라는 뚜렷한 영역이 있어 형식적이라도 이들의 사전심사나 감정을 통과하거나 받아야한다. 필요를 뛰어넘는 독자일반에 대한 친절한 편의제공이라 할 수 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시간 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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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이든 인간사든 두루두루 아울러 놓여야할 자리에서 해석되어, 쓰던 달던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면 얼마나 큰 다행이며 축복이 아닐까. 이따금 쓸 만한 해설들이 눈에 띄어 돋보일 때면 부랴부랴 앉을 곳을 찾아 펼쳐보기가 그 얼마나 좋던가.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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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필자는 작품해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지만 불가피하게 왔다갈 수밖에 없다. 종주는 있지만 혼재된 다국적 이념이나 사조들이 검증 없는 유령의 거죽을 쓴 채 그럴싸한 흥정과 개입에 발맞추며 너나없이 다투어 한마디씩 거든다는데 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평론가나 작가, 독자들이 자신들과 서로를 위해 할일들이 있겠다. 각자가 자기사명과 역량을 갖추며 있어야할 위치에서, 배워 듣고 새기며 처지에 맞는 실천을 동반하면 좋다. 그러자면 걸러지는 것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이를 통해 적절히 교반할 수도 있고 용도에 따라 요긴한 모양새로 일굴 수 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6.27
  • 답글
    힘의 논리로 볼 때 침투하면 약한 쪽은 뚫려야한다. 요즘은 거추장스러운지 복면도 벗어던지고 활개 치며 다닌다. 한술 더 떠 난감한 게 있으니 정작 우리들 자신이다. 이렇듯 조바심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는 환경은 어디가나 <댓글>이라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정체불명의 몇 마디로 말미암아 국가나 지자체의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 이외에 사생활 및 인격과 명예가 훼손 붕괴되고 법정에까지 이어지는 현실이니 암담한 먹구름 밑 구절양장 아닌가.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6.27
  • 답글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들끓게 요청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무슨 모니터니, 문화해설가니, 한 시대 창궐했다 점포정리한 자유기고가들 까지....... 상황이 이리 돌아가는데 기존 문단과 학계, 문학지나 유명무실한 잡지들까지 가세하여 가만있지를 않는다. 이해관계에 민감한 출판계와 대형서점은 또 어떤가. 가히 일 년 내내 춘하추동 전국시대다. 거기다 아무 연관 없을 것 같은 작품 간섭에 대한 보이지 않는 막후들이 있다. 먹고 먹히는 국제역학 속의 첨병역할은 열강들의 총성 없는 산업계와 포화 없는 문화계라는 두 교두보가 십분 수행하고 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6.27
  • 답글
    우선 이것은 작가와 작품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이래서 이렇다.>라는 해설로 품평을 해야만 하는 업은 물론, 그런 책임과 임무를 감행할 도리밖에 없는 길잡이라는 두 가지 점 때문이다. 법조로 보면 상황에 따른 검사의 검문이고 변호사의 변론이며 판사의 판결로 나타난다. 물론 유익한 면들은 인정하고 수용해야한다. 시류에 맞추어 작품해설에 나서는 집단은 또 있다. 대개 언론(신문방송)의 문화부기자다. 게다가 인터넷시대라서 사이버논객에다, 객원기자, 통신원....... 어디 그뿐인가.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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