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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문학이론] 92


    *<인문학의 몸부림을 지켜보며>

    벌써 십여 년 전후의 일이다. 작가 OOO의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소신 있는 문제제기. 국회의원 허화평의 좌파(?)에 대한 이유 있는 그럴듯한 이의제기. 그 본질을 나는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 그 한편 음울하게 위치하며 울렁이는 모자이크와 일군의 프리즘을. 이들의 불만에는 약간의 자기신념과 불순성도 있지만 민주화운동과 좌파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날카로운 훈시(?)가 있음을 좌시해선 안 된다. 그것을 거부할 때, 고려하지 않고 결연하게 대치할 때 서로에게 다가설 필연적 후과를 제고하라는 뉘앙스였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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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연재> 조미대결, 일상의 단상들 [2771]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lt;대하연재&' 글에 포함된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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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O, 그가 지금 마침표를 찍기나 찍었나. 그의 문학적 결산은 끝나지 않았다. 내 자신 존경해 마지않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도 그렇다. 이 땅엔 귀한 예술인들이 무수히 많다. 막 자라나는 싹들은 어떤가. 척박한 민둥산을 푸르게 덮고 있다. 보이지 않는가. 작가와 독자와 예술애호가들로서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며 성장하기를 눈물겹게 바라고 또 지켜봐야 한다. 먼 옛날 ‘문인(文人)들은 서로 경멸한다.’라고 했던 위 문제(魏文帝)의 말이 결국 허담(虛談)만은 아닐지라도, 좋은 방향이라면 작가는 작가들의 성공을 빌어야한다. 창작이 만만한 게 아님을 해본 사람은 안다. 창작주체들이 자신들의 분야를 모욕하고 성과를 혐오한다면 그 뒤가 어찌 되겠는가. 어서 읽고 쓰기를 다그치자.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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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OO, 그와 포옹할 자 나와라. 없다면 그가 가는 길 막지 말자. 막고 막지 않고를 막론하고 그래서 그를 딛고서든 그가 문학의 발판이 돼주든, 서로 경쟁과 화해든 어쨌든, 그 선상이라야 비로소 마주앉을 원탁을 마련할 수 있다. 작가들이여, 그대들도 그대들의 문학 예술적 과제물을 내오면 된다. 그러면 그만이다. 당대와 역사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아라. 그 검증을 거부하고 소홀히 치부하거나 경솔하게 희화화시키면 끝장이며 파국이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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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의 텃밭을 갈아엎어 작가들은 작품을 거두는데, 그 밭이 뻗어 펼쳐진 공간은 작가들이 발 딛고 있는 여기로부터 우주까지 맞닿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작가들에게 부여된 시간이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무한대로 시계 침을 끌어야하는 천부의 기한이다. 거기에 문학과 예술의 범주와 용적이 있다. 제대로 된 작가의 지적유산과 사색의 문턱으로 어떤 개별단위 전문분야(학문)일지라도 쉽게 범접할 수 없음을 나는 확신한다, 태생적으로! 그 만큼 문학과 예술에는 총체성과 포괄성을 탯줄삼아 운명적으로 기발하여 달고 나온 이 세상에 혹은 인간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신성한 권위의 세계가 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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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여기로부터 겸손한 모색과 치열한 출발을 준비해야한다. OOO을 살려야한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어야 한다. 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그의 작가로서의 창작과, 사유의 정열과, 정치적 허상을 뛰어넘으려는 각성과 긴장을. 서로 친구가 되지못해 적대적이어도 과연 그에게 배워야 하고 존중해야 할 가치가 전혀 없단 말인가.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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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제는 조직과 조직, 집단과 집단, 민족과 민족단위가 충실한 독창력과 실력에 의해 선의의 충돌과 발전의 변증을 일궈야한다. 부끄럽지 않고 천박하지 않은 공정한 법칙 위에서 말이다. 그래야 합리적인 보편성과 균형적인 객관성이 조화롭게 번져 간다. 어쩌면 시대의 지성이라 떠벌이는 자들의 한계는 자신들이 어느 위치에 서있건 사고의 중심자리에 이분논리를 못 박아 놓고 언제나 1과 1/2을 주도하고 있다는 자가당착을 반복하는데 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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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처의 위기와 파멸의 구덩이에 동반추락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최소한의 도의적 연대와 혁신의 시도마저 구차한 변명으로 무마하며 통과시켜서는 되지 않을 시점이다. 인식의 폭과 깊이를 형성해낼 바탕과 저변을 스스로 마련할 때만이 ‘처음처럼’ 우리는 희망의 탑을 다시 쌓을 수 있다. 어느 구석에도 이성과 감성, 지성이 평화롭게 어울리며 서로의 견제와 보완을 원활히 촉발시키는 통제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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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애써 인정하거나 모두 싸잡아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허락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회운동진영의 일부를 비판하는 일은 남이 나를 탓했을 때 즉각 맞설 수도 있지만, 우선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기본이고 설령 나에게 비판을 넘어 고의적 때리기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런 개연성이 있나 없나 찾아보는 일이 당연하며 선차적 수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왜 우리사회는 서로 적대적이어도 장점을 배우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을 종일토록 정당화하며 은폐시키는 지를, 어째서 모든 것은 악이고 그 어떤 모든 것은 선이라며 병적으로 부유하는지 알만하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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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민주화운동진영은 인간성과 도덕성을 다시 한 번 생명처럼 받들지 않고 무능력과 오도된 민중개념을 극복하지 못하면, 또한 대중의 상식 밖에서 배회하며 후진적 발상과 피동으로부터 깨어나지 못한다면, 아니 더 이상 상상하기 싫다. 아무튼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운동진영과 혹은 그 주변에서 나는 서성이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여전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더욱 허전하고 서글프다. 이게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런 모습으로 가망 없이 전락해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 말이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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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안에 따라 점검하고 재고하면 도덕과 상식 쪽으로 귀화할 수 있는 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천연덕스런 관성으로 역사의 뒤안길 늪에 보란 듯이 발을 들여놓는가. 안이하게 정체되어 근엄하기도 하고 또는 시대의 주류라고 자처하는 자들처럼 어떤 때는 너무 경박하거나 오만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 모든 양심들이 그러할 리 만무지만은. 그래 그렇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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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과 상식의 영역이 끝나고 부도덕과 몰상식의 경계가 겹쳐지는 합류지점부터 이미 크든 작든 죄악의 개념은 본질상 같다. 이 폐쇄 된 길의 답답함과 건조함은 언제쯤 가서야 끝날 것인가. 다른 편에서 날아오는 비판의 포성에 왜! 저들이 좌파라 말하는 민주화운동진영은 자체진단과 자기순화에 그렇게 소홀했던가. 어째서 자신들에게 그렇게 너그럽고 관대할 수 있는가.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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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에서 끈질기고 집요하게 역설적 프로포스와 냉혹한 결별선언을 반복하여 발표했다. 때로는 우회의 밀어와 경멸의 손짓을 동시에 띄우면서 말이다. 그 내용의 대강은 드러나 있는 치부를 수용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애정 어린 조언과 전투적인 선전포고도 함께 장전되어있었다. 묘한 암시였다. 이것을 터득해야 하는데 과연 그랬나. 그렇지 못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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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적 공세에는 거기에 준하는 세련미와 논법으로 출장해야 하는데 결정적으로 무기다운 대체무기가 없었다. 대개 공감하지만, OOO과 허화평은 다르다. 분명 그렇다. 종자가 다르고 줄기가 다르다. 나는 OOO의 문학적 사고와 성과를 인정한다. 사람과 일에 대한 평가는 적절한 격이 있고 수준이 있어야한다. OOO에게 물리력과 험담을 들고 나온다면 그 자체가 패배다. 더 큰 문제는 대안과 논리 없는 피해의식 아래 돌출적인 언어폭력이나 정제되지 않은 감정적 야유로 다짜고짜 밀어붙이는 저돌성과 긴 시간 사려 깊은 성찰 없이- 성능시험도 거치지 않은 인증 없는 생소한 무기를 들고 나와- 무책임한 총구를 들어 급급하게 격발한데 있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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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허화평 유의 확인사살에는 그에 걸 맞는 방식으로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넘어 단식과 분신 등의 대응이 있었다. 하지만 OOO의 경우, 그가 날린 화살이 몸통의 어느 부위에 꽂히든 의연한 과녁으로 서 있었고 그 화살의 향방에 따라 수많은 방패가 덩달아 등장했을 뿐이다. 여기에는 그를 능가할 대항능력의 부재가 도사리고 있지나 않았는지.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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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어떠했나. 직접충고를 해도 통하지 않고 도대체 귀담아 듣고 알아채지 않으려한다는 판단을 내린지 오래인 듯했다. 허화평 유의 정치적 경고가 도를 넘어 민주화운동진영을 숱하게 징역살이시키며 때려죽인 것에는 목청을 높여 스크럼을 짰는데, OOO 식의 문화적 화살에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분위기였다. 다만 웅성웅성 들떠 서로들의 표정만 살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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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그 결과가 어떤 형태인지 몰랐으나 불행한 쪽의 모습일 공산이 커서 유동적 요해 밖에 무엇 하나 해낼 수 있는 역량과 처지가 아니었다. 아니 다가설 국면을 감당할 수 없었다. OOO과 허화평의 조소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지만 너무 당당하기에 놀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들의 현실인식은 무엇이었나. 민주화운동진영이 원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기강 없는 뚝심과 규율 없는 집단적 한계를 너무나 잘 안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울했다.



    작성자 국제평론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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