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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義士)관한 글들 읽다가 의문이 들어서,,,
혹시 자세히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설명 부탁드립니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을 하려는 목적 무엇인지,,,하얼빈에서...
작성자
강어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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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귀한 내용이,,,저에겐 큰 밑거름이 될 거라보며,
나름,,, 좀 더 찾아 공부하려고 합니다,,^^
안 중근 의사에 대해,,,
이등방문에 대해,,,
고맙습니다,,^^
작성자
강어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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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아무리힘들어도님,,
감사합니다,,^^
작성자
강어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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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부언하자면]
에비쿠로스 님의 지적도 대단히 맞는 지적입니다.
러일전쟁(1904-05) 이후, 일본의 만주-간도 등 북방진출 정책에 대해
미국의 강력하게 견제하고 감시하고 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러일협약, 만주문제 처리에 관한 러일의 협약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윌리엄 태프트도 미 의회에서 일본의 진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적도 있었습니다.
작성자
아무리힘들어도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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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세종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석화정 교수가 주로 연구했습니다.
2004년에 발표한, "러일협약과 한국병합"이라는 논고가 짧으면서도 읽을만 합니다.
작성자
아무리힘들어도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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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머드 강화조약에서, 청국 만주국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를 확정짓지 못했는데
러시아 측 강화전권대사 위떼가, 실질적으로, "한국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러시아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즉, 일본의 대한정책을 변경할 때 반드시, 러시아측의 동의를 구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은 한국을 보호국 지위에서 자국에 직접적으로 병합하려는 정책을 실행할 때
러시아로부터 "자유재량권"을 전적으로 보장받고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일병탄"의 중요한 보장장치가 1907년과, 1910년의 러일협약입니다.
즉, 한일병탄은
간도협약
러일협약
카쓰라-태프트 밀약..
세 협약으로 보장된 셈이죠
작성자
아무리힘들어도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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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협약은 1907년에 시작된 네 차례의 회담인데
1905년에 시작된 대한제국의 침탈에서
대한제국을 보호국에서 병합단계로 넘어가는 1905~10년의 과정에서
대한제국을 병합하는 최종적인 안정장치 역할을 하는 것이 러일협약의 근본목적입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합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즉, 청국, 미국, 러시아의 양해를 얻어야 하는데
이 중 러시아와 타협을 보는 것이 러일협약(1907~10)년이죠.
즉, 안중근 의사는 당시 러-일 외교와 국제역학관계의 심장을 저격하여
한국민중의 의사를 표명한 것이죠.
작성자
아무리힘들어도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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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스님,,
감사합니다,,,^^
작성자
강어
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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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제1차 러일협약(1907년)을 보완할 목적으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협약 보완 사유 :
미국이 만주를 나눠 먹자고 끼어드니까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러일공조가 필요했음.
제2차 러일협약 1910년 체결됨.
* 비사 :
미국이 끼어든 것은
만주철도를 탐내면서
세계철도 지배를 꿈꾸던 미국 철도왕 해리먼의 로비로 인한 것이었음.
그러나 부도덕했던 그 자도 1909년 사망했음.
작성자
에비 쿠로스
작성시간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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