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한반도 전문가 찰스 암스트롱의 한국인 어머니
등록 : 2005.10.18 18:25수정 : 2005.10.18 18:25
41년전 국제결혼해 도미한 김예자씨 방한
통일부와 외교통상부 등 국내 정부 관료들이 미국을 방문할 때면 꼭 만나고 싶어하는 한반도.동북아시아 국제정치 전문가인 찰스 암스트롱(43) 컬럼비아대 교수.
그는 강경책을 선호하는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과는 달리 북.미간 협상을 통한 한반도 핵문제 해결 등 온건 방안을 강조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17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리는 제1회 국제결혼여성 세계대회에 참가한 김예자(63.미국명 리아 암스트롱)씨는 바로 암스트롱 교수의 어머니이다.
김 씨는 18일 "장남인 찰스는 나의 영향 탓인지 유엔 본부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을 아내로 맞았고,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2년 간 배웠으며 손녀를 한국에서 출생시킬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한반도 문제를 온건하게 보도록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경북여고 시절 이화여대 영문과 입학준비를 위해 미국인 교사(남편)에게 영어를 배웠던 김씨는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1기로 입학해 공부하다 1964년 미국에 건너갔다.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 소재 패시픽 루서런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푸젯사운드대에서 국제 사업경영과서 석사 과정을 밟은 그는 보잉 컴퓨터 서비스사에서 10년 간 근무했다.
김 씨는 1976년부터 재미대한부인회 회장을 비롯해 이사장 등 18년 6개월을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1994년 부인회를 떠나 간병서비스회사를 설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직원 2명으로 시작한 암스트롱 홈인케어사는 현재 본사와 11개 지사에 1천700여 명이 근무하는 회사로 성장했고, 매출액도 2천700만달러에 달해 워싱턴 주 최대의 간병서비스사로 발돋움했다.
재택 간병서비스란 노약자, 신체장애자 및 사고나 질환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의 가정에 간병인들을 보내 일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하는 것을 말한다.
리아암스트롱 장학재단(LASCO)을 설립해 매년 10명 정도의 학생에 각각 1천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하는 그는 "국제결혼 여성을 차별하던 지난 시기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며 "세계화 교육이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러나 인식이 바뀌긴 했어도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더 있다"며 "국제결혼 여성이 모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왕길환 기자 ghw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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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찰스 암스트롱 미 컬럼비아대 교수 “북한 대학과 교환 프로그램 추진”
2012.08.21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이 북한의 대학들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추진 중입니다. 현재 북한 관계자들과 세부사항을 논의하고 있는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교수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 했습니다.
문) 암스트롱 교수님, 두어 달 전에 컬럼비아대학교 학생들이 북한을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뭔가 장기적인 교환 프로그램의 일환인가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We had a group of Columbia graduate students…”
답) 지난 5월 대학원 학생들이 김일성 대학과 김책공업종합 대학을 방문하고 돌아온 건 맞습니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미국에 학생을 보내는 걸 상당히 조심스러워 합니다. 학생들을 감시.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컬럼비아대학은 뉴욕에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근처에 북한 유엔대표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측이 걱정을 좀 덜 수 있죠. 그래서 현재 북한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추진 중입니다.
문) 학교 차원에서 북한 대학과의 결연 계획을 갖고 있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We are trying various ways to create channels of…”
답) 예. 컬럼비아대학 당국의 지원 아래 이뤄진 계획입니다. 현재 종합계획을 갖고 있기 보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북측과 소통채널을 쌓기 위해서 말이죠.
문) 가까이 있는 북한 유엔대표부가 아무래도 소통채널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 쪽과 연락하고 계신 거죠?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I’ve talked to a few people and…we’ve had a visit from…”
답) 맞습니다. 북한 유엔대표부의 몇몇 인사들과 얘길 나눴습니다. 또 작년엔 김책공업종합대학 당국자가 컬럼비아대학을 방문해 가능성을 타진했구요. 이렇게 서로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결국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문) 지금 당장 어려운 점은 뭘까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The obstacle really is on the North Korean side…”
답) 역시 북측 사정입니다. 컬럼비아대학은 이미 준비가 다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북한 당국과 제대로 연결이 되고, 그쪽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문) 컬럼비아대학이 마련한 프로그램은 어떤 것들인가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The School of International and Public Affairs is very…”
답) 우선 국제관계학과에서 북한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데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문학 강의도 준비돼 있구요. 순수과학과 기술 관련 학과들도 북한 학생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북한 학생들을 계속 초청하고 있지만 현재까진 성사가 잘 안 됐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쓰고 있죠. 바로 컬럼비아대학 학생들을 북한에 보내는 겁니다.
문) 그럼 지난 5월 이뤄진 컬럼비아대 학생들의 북한 방문도 그런 차원에서 이뤄진 건가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Well, they went for a visit but I’m talking about sending…”
답) 그건 성격이 좀 다릅니다. 일회성 방문이었으니까요. 컬럼비아대가 지금 계획 중인 건 저희 학생들을 실제로 북한에 유학 보내는 겁니다. 가령 김일성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북측에서 여기에 대한 답을 주진 않았습니다.
문) 결국 북한이 동의한다면, 북한에 가겠다는 학생은 있습니까?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Oh, the students are extremely interested and I have talked…”
답) 학생들은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얘기도 직접 나눴죠. 국제관계학과 학생들이 많습니다. 또 지난 5월 북한을 다녀온 학생들도 그렇구요. 이들 모두 북한과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북측과 소통채널을 넓히는 중입니다.
문) 얘길 듣고 보니까 교수님도 뉴욕채널을 이용해 북한과 대화를 하시는 군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Yes, and it’s very good to have them here and it makes…”
답)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북한 유엔대표부가 컬럼비아대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북한과 소통할 창구가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건 아닙니다. 최종 결정은 평양에서 내립니다.
문) 컬럼비아대가 북한과 추진 중인 교환 프로그램은 그럼 학생에만 국한된 거군요. 교수진이 서로 방문하는 게 아니구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The one idea that we recently discussed is taking…”
답) 그렇습니다. 그런데 컬럼비아대학은 베이징에 ‘글로벌 센터’라는 학술협력기구를 두고 있는데요. 북측이 학생들을 뉴욕에 보낼 수 없다면, 베이징에 있는 컬럼비아대 부설기관으로 보내면 어떻겠는가, 이런 문제를 최근 북측과 논의했습니다. 저흰 그 곳에서 북한 학생들에게 경영학, 무역법 등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최근 금융 관련 업무, 경영, 무역, 국제경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문) 앞으로 긍정적인 결과 기대해 보겠구요. 최근 북한에 다녀 오신 걸로 아는데요. 현지 분위기에 대해서도 좀 듣고 싶네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I was there from June 30th to July 7th. I went with a group…”
답) 예. 6월30일부터 7월7일까지 북한에 다녀왔습니다. 대부분 미국 학계 인사들과 동행했습니다. 우드로우 윌슨 센터의 제임스 펄슨 연구원도 그 중 한 명이었죠. 함께 북한 대학도 방문했고 평양 외에 함흥, 원산, 사리원, 개성 등 지방도 돌아봤습니다.
문) 작년에도 북한에 가셨었죠? 1년 만에 다시 찾은 북한, 변화를 좀 느끼셨습니까?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There is very strong atmosphere of a leadership change…”
답) 지도자가 바뀐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이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권력을 쥐고 있다는 신호들 말입니다. 거리 곳곳에 있는 구호들을 비롯해서요. 작년에 갔을 땐 뭔가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우려 같은 게 느껴졌었거든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 2012년 태양절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감, 그런 것들이요. 그런 점에서 지난 4월 15일 행사는 이후 평양 분위기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중요한 행사를 마쳤다는 안도감,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확신감 같은 게 생겼다고 할까요.
문) 지방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That made the contrasts with the rest of the country…”
답) 평양은 자동차라든지 고층 살림집이라든지, 물질적으로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진 듯 보였지만, 지방 모습은 대조적이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함흥은 상황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함흥은 원래 북한 산업의 중심지였던 곳인데, 심지어 비날론 공장마저 닫혀 있더군요. 함흥을 겨우 2년 전에야 외부인들에게 다시 공개하기 시작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90년대부터 최근까지 외국인들은 함흥에 접근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함흠이 그만큼 90년대 기아 사태에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원산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더 나아 보였습니다.
문) 혹시 북한에서 개혁개방을 조심스럽게라도 언급하는 걸 들으신 적은 없습니가?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They never talk about reform explicitly. You cannot use…”
답) 북한에선 여전히 개혁이라는 말 자체를 꺼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 상황 개선에 대한 바람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음식, 주거환경, 의복 등에 대한 기대 말이죠. 이걸 개방을 통해 실현시켰으면 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제재를 탓할 뿐이죠. 하지만 북한인들도 스스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요. 그게 결국 지도부 정책에 대한 `간접적 비난’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 최근 해외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가 북한에도 일부 흘러들어갔다는 보도가 있어서요. 이번 북한 방문 중에 그걸 짐작해 볼만한 경험은 없으셨는지요?
[녹취: 찰스 암스트롱 교수] “In fact, one of our members last year had a TV drama…”
답) 한류로 불리는 한국 대중음악과 TV드라마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북한에 갔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컴퓨터에 드라마를 저장해 갔는데요. 그걸 북한 사람들과 함께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반응이 좋았습니다. 또 한국 음악에 익숙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갔을 때 ‘아이 팟’에 담긴 한국 노래들을 북한 사람들과 함께 듣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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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 찰스 암스트롱 석좌 교수 단독 인터뷰
[2005/08/25, 03:00:52]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학교(1996년-현재) 역사학 석좌 교수는 1962년 한국에서 출생, 워싱턴주 공립 켄트-메리디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암스트롱 간병인 서비스 기관 암스트롱-홈케어 리아 암스트롱 대표의 장남인 그는 예일대학교 동아시아 학사, 영국 런던대 국제관계학 석사를 거쳐,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스승인 브로스 커밍스 교수가 재직 중이던 시카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암스트롱 교수는 북한 혁명, 한국사회, 중심에 선 코리아 등 다수의 저서를 내 놓았다. 그는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시애틀을 방문, 어머니 암스트롱 대표와 도 현재 집필 중인 북한 외교 관계사(North Korean Relation) 탈고 등으로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 바쁜 와중에도 미디어한국을 위해서 단독 인터뷰에 응했다.<편집자 주>
미국에서는 요즈음 하루가 멀다하고 대북 매파들이 쏟아내는 강경 발언으로 인해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한국, 북한 등이 참여하는 6자 회담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 핵문제 유엔 회부, 경제 제재, 무력 사용 등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그 근저에 자리한 북한을 전체주의 국가이자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스탈린 독재 국가라는 인식 또한 굳게 자리잡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수제자이며, 미국 내에서 북한 연구의 차세대 선두 주자인 찰스 암스트롱 교수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이렇게 단독 취재에 응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드린다. 먼저 북한 문제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시애틀을 찾은 목적에 대해서 말해달라.
-이곳에 어머님과 동생이 거주하고 있고, 이곳이 내가 성장한 곳이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왔다. 지금 집필 중인 저서 북한 외교 관계사(North Korean Relation) 탈고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사양했는데, 어머니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 없지 않은가?(웃음) 이렇게 미국 내 한국 언론사 기자와 공식적인 인터뷰를 갖게 돼 기쁘고, 또 코리안 커뮤니티를 위해서 무슨 말이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기쁘다.
-한인 1.5세, 2세들 가운데 명석한 학생들이 많다. 세계의 석학으로 알려진 선배의 입장에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리안 커뮤니티 자녀들 가운데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학자이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인도 많이 배출되어야 하겠고, 또 변호사나 의사 등도 많이 배출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후학을 양성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순수한 2세 가운데 아직은 미국 고등교육 기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없어 약간은 아쉬움이 있다.
-북한에 갔다 온 줄 안다. 언제 북한을 방문했으며, 느낀 점은 무엇인가?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스테펜 린튼이란 친구가 있다. 그는 전남 순천에서 성장했는데, 현재 북한에 식량이나 의료품 등을 지원하는 유진 벨 재단(Eugene Bell Foundation)에 관계하고 있다. 그가 지난 1997년 11월초 북한 방문을 제의해서 이루어졌다.
당시 북한 사람들은 경제가 좋지 않은 관계로 상당히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호텔에서 일하는 종업원을 만났더니 “미국인이 어떻게 북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오게 됐느냐?”고 물었다. 내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미제국주의자들을 적으로만 생각했는데 너무 고맙다”며 거의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 종업원과의 만남을 통해서 한국과 북한도 그렇게 서로 마주보고 대화하는 가운데 접근해야 보다 더 서로를 이해하기 쉽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남과 북, 미국과 남북도 그러한 관점에서 서로 대화하면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과 접촉한 것은 북한을 방문한 1997년 이전에는 없었나?
-아니다. 내 부전공이 중국사인지라 1986년부터 1987년까지 1년 간 중국 장춘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이때 많은 조선족들과 북한 유학생들을 만났다. 당시에도 북한의 경제는 좋지 않았는데, 북한 유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단편적이나마 북한의 경제와 정치 등에 관해서 알 수 있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대에서 북한을 바라보면서, 한국과 북한의 분단의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지난 6월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마련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북한과 희망의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논문의 주요 취지는 무엇이었나?
-북한 사회를 바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하면, 강제와 강압으로 움직이는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겉보기와는 달리 보통 사람의 자발적 참여 또한 높다. 물론 북한 체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도 중요하다. 북한이 문제와 위선을 많이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체제에 불만을 느끼거나 적극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은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능력 면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기능해온 정치 체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북한이 1980년대의 동유럽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더라도 북한 사회가 통제와 동원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사회라는 데 대다수가 공감한다.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북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들 수 있겠다.
첫째, 북한체제는 일제 식민 통치에 기원을 두고 출발했다. 북한은 비록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했지만, 이같은 경험은 북학 체제 형성과정에서 무의식적으고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사소한 예이지만, 북한의 군가에서도 그건 드러난다. 김일성의 ‘주체성’ 또한 일제 전시체제의 용어 ‘슈타이세이(主體性)’에 뿌리가 있다. ‘자력갱생’도 1930년대 일본의 군사 훈련에서 비롯한 것이다. 북한은 또한 체제 형성기 초반에 소련의 영향도 받았다. 하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 북한은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갈라져 나갔다. 따라서 북한은 진정한 의미의 스탈린 국가가 아니다. 한국전 이래 유지되어 온 끊임없는 전쟁동원 체제도 북한 체제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이다. 이는 북한에서 집단 행동이 강조되고,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불안해 하면서 전쟁을 준비하고, 고도로 불안정한 국가를 만들었다. 특히 지난 10년 간이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은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가 아니다. 노동당의 권력은 현저하게 약해졌다. 북한은 오히려 군사 독재 체제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정치와 경제 모두 군대식으로 하지 않았나? 북한의 이같은 과거 전력이 현재의 북한 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통할 수 있는지 의문인데...
-북한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북한 사회 내부에서도 상당한 토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록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과거의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진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정치 체제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변화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최악의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경제 체제에 손질하면서도 통제력을 확보할 것인가이다.
북한의 경제 개혁파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경제 개혁의 핵심과제로 꼽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여전히 체제 안보와 국방이다. 경제는 2차적이며, 정권이 불안하다고 느끼면 북한은 더 이상 경제 개혁 조치를 진전시키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을 둘러싸고 아직도 6자 회담 등의 문제로 인해 국제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암스트롱 교수의 핵문제에 관해서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내가 낙관하는 것은 북한 체제의 내적인 측명에서다. 가장 큰 문제는 핵문제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핵 문제가 북한의 경제 개혁에 중대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핵문제는, 북한 체제 내 군부와 보수파에게 개혁을 막는 좋은 구실이 되고 있다. 나에게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답은 없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 간의 핵 협상에서 북한이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미국측의 요구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북한은 이문제에 관해 확실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현재 북한 정책의 기조가 군사력 사용이 아님은 분명하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 없으며, 미국 당사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진짜 미국의 정책은, 북한이 행동을 더 할 경우, 대북 경제 봉쇄 등 가혹한 경제 재제 조처를 동원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북한의 정권 붕괴를 노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미국의 이같은 믿음은 북한 상황에 대한 대단한 오해에 기초해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붕괴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북한은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내부 안정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을 둘러싼 한반도에서의 한국의 역할, 더 나아가 한국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이 한반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땅은 크지만 경제적으로는 떨어지는 중국, 땅은 작은 것 같지만 경제적으로는 부강한 일본에 비해 한국은 땅도 크지 않고 경제적으로 부강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전을 치루고 오늘날 여러분야에서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은 한마디로 파워플하다. 내가 한국민에 바라는 것은, 오랫동안 일제 지배하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 피해의식에서 벗어났을 때, 한국은 더욱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다.
-올 해가 8.15 광복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그렇지 않아도 히스토리 채널(History Channel)에서 한국의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인터뷰를 해갔다. 아마 14일이나 15일 그 채널을 청취하면 내가 생각하는 한국 광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시간에 걸쳐 인터뷰에 응해준 것에 감사한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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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경제 2012.11.19 기사 ]
"독도는 한국 땅… 日 이해할 수 없다"
[특별 인터뷰] 찰스 암스트롱 美컬럼비아대 교수(한국학연구소장)
"오바마, 한국에 對北정책 주도권 주지 않고 적극 개입할 것"
뉴욕=이학인특파원 leejk@sed.co.kr
6자회담 보단 남북·북미·한미 접촉 강화 예상
'퍼주기' 아닌 개성공단식 개방 유도 바람직
영토분쟁 아시아서 미국 평화 수호 역할 중요
독도문제 日 이해안돼… 한국 지지로 결론 기대
"지난 4년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취했지만 이는 북한 문제를 한국에 맡겨놓은 채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중동 문제 해결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2기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다룰 '여유'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한국학연구소장)는 2기 오바마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한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태생인 암스트롱 교수는 미 국무부 고문을 지내는 등 미국에서 손꼽히는 북한 문제 전문가다.
서울경제신문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뉴욕 컬럼비아대 연구실에서 그와 인터뷰를 갖고 2기 오바마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의 아시아 정책 변화, 북한 문제에 대한 해법 등을 들어봤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남북 간, 북미 간 대화 등 다양한 차원의 대화가 재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암스트롱 교수는 현재진행 중인 한국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남북관계 개선을 표명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이는 바람직하지만 북한에 대한 접근은 과거 햇볕정책처럼 일방적인 지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는데 한국이 관리하고 북한과 함께 일하는 방식을 통해 북한의 경제를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집권 2기의 미국 외교정책이 아시아 중심(pivot to Asia)이라고 한다. 의미는 무엇인가.
▦중동 문제에서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반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역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며 중국은 경제적인 파트너인 동시에 지역 팽창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견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당면한 미국의 과제는 북한의 핵 문제 해결과 중국과 일본의 충돌을 막는 등 역내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중일 사이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드러나듯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나.
▦중일 사이의 군사적 충돌도 상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그렇게까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미국은 역내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평화 수호자(peace keeper)'로서의 역할을 확대하려 한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노골적이다.
▦독도 문제는 센카쿠 문제에 비해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민족주의를 빼고는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미국도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두 동맹국이 분쟁을 지속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지난 9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의 입장표명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난 4년간 오바마 행정부의 북한 핵 문제 대응을 평가하면.
▦지난 4년간 미국은 한국 정부에 북한 문제를 '아웃소싱'했지만 그 결과는 실패였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 남북 간 충돌이 이를 증명한다. 북미 사이의 '2ㆍ29 합의'도 북한의 로켓 발사로 수포로 돌아갔다. 이런 사이 북한은 핵개발을 진전시켰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수명을 다한 6자회담이 재가동될 가능성은 없다. 미국은 직접적인 대화를 포함한 북한 접촉을 강화하며 적극적인 개입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남북 간, 북미 간, 그리고 한미 간의 다각적인 대화채널이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돌파구는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과거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만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이 앞으로도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더 이상 핵개발을 진전시키지 않고 점진적으로 핵능력을 줄이면 미국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단계적으로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 1년 가까이 됐다. 정권의 안정성은 어떻게 보나.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늘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증거는 없다. 6월 평양ㆍ원산ㆍ함흥 등을 둘러봤는데 표면적으로 북한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물론 정권 핵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 수는 없다. 내가 본 느낌으로는 북한 체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양과 그 이외 지역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김정은이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일부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일종의 제스처인가, 아니면 실질적인 변화의 조짐인가.
▦김정은 혼자서 북한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군과 당 등이 함께하는 집단지도 체제라고 봐야 한다. 김정은이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이는 매우 제한적이며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이러한 변화의 신호를 포착, 대응해야 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부분적이나마 개방을 추구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게 될 것이다.
-한국 대선에서 주요 3명의 후보가 남북 간 관계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야당의 문재인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것이다. 최근 수년간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특히 지난 2년간은 한국전쟁 이후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차기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이 더 이상 한국에 대북한 정책 주도권을 주고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한국 정부는 북한 문제를 어떤 방향에서 접근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지켜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북한을 도와야 하고 인적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이는 통일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처럼 북한 지도부에 대한 일방적인 퍼주기는 좋은 방식이 아니다. 개성공단 모델처럼 한국이 개입하고 관리하며 북한과 함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또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한국인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어서 매우 슬펐다. 주민과 주민 사이의 만남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북한의 대외관계를 다룬다. 북한은 주변국에 비해 경제적ㆍ군사적인 면에서 약자지만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독립적이면서도 자신들이 필요한 지원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억압정책을 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약자의 폭정(the Tyranny of the Weak)'이라고 정했다. 내년 봄에 출간한다.
■암스트롱 교수는
한국 태생의 동북아시아 전문가
균형잡힌 시각으로 美서도 신뢰
찰스 암스트롱 교수는 한국 현대사와 동북아시아 문제에 정통한 학자다. 그는 지난 1962년 대구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성장했다. 그는 예일대 졸업 후 중국에서 체류하며 조선족을 만난 뒤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이것이 계기가 돼 한국학을 연구하게 됐다. 시카고대학원 시절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서 사사했다.
그는 과거 조지 부시 정부 시절 네오콘들과 달리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정책이 대화를 통한 온건노선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북한에 대한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 미국 내에서 큰 신뢰를 받고 있다.
북한 관련 다양한 저술로도 유명하다. 특히 미군이 한국전쟁 중에 노획한 자료를 토대로 북한 정권의 탄생과정을 그린 '북한의 혁명'은 냉전적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한 저서로 평가 받고 있다.
◇약력 ▦1962년 대구 ▦1984년 예일대 졸업(중국학) ▦1988년 런던정경대 국제관계학석사 ▦1994년 시카고대 역사학박사 ▦1996년 컬럼비아대 교수 ▦2001년~ 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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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탄생
‘북조선식 사회주의’ 건설 과정
2006 09/19
국제사회에서(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주도하에) ‘악의 축’으로 낙인찍힌 북한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한 나라인가. 김일성 정권은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우리가 배운 대로 김일성 개인의 야욕과 구소련의 정책이 합세해 숙청과 폭력으로 탄생한 독재정권인가. 전 세계는 물론이고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는 우리조차 북한의 형성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난 군사독재정권의 감시와 통제의 영향이 크다.
냉전이 허물어진 이 시대, 북한 연구는 무척 자유로워졌다. 비록 북한을 직접 방문하는 일이 수월치는 않지만 관련 자료를 구하고 인공기를 들여다보며 당당히 북한을 연구할 수는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 미국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찰스 암스트롱의 ‘북조선 탄생’은 1945년부터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5년간 북한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5년간 북한에서 일어난 변화를 ‘북조선 혁명’으로 정의한 저자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주장을 한다. 구소련의 영향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구소련의 이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조선의 제반 여건에 맞게 바꿨다는 것, 즉 ‘조선의 소비에트화’가 아니라 ‘소비에트의 조선화’라는 것이다.
찰스 암스트롱 지음, 김열철, 이정우 옮김, 서해문집, 2만2000원
유교 전통과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도 북한 사회주의의 특징이다. 이 점이 북한 사회주의와 여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차이점이다. 북한 인민들에게 남아 있는 유교적 관점, 북한의 주체사상 등이 이와 관련된다. 저자가 북한의 사회주의자들을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아닌 ‘급진 민족주의자’라고 하는 것이나 ‘민족이 혁명의 본질적인 주체로서 노동계급을 대체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두 가지 특징을 요약 정리하자면 북한 사회주의는 토착성, 내부적 역동성이 매우 강한 ‘북조선식 사회주의’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위기와 비상상황에서도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르고 있던, 혹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북한의 탄생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준다. 지금껏 접근이 용이하지 않던 분야까지 ‘북조선 혁명’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북한의 정권과 사회주의의 탄생과정, 그것의 의미가 그렇다는 것일 뿐 그것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북한의 정권이 “위험하며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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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정희 딸 아닌 독자인물로 평가돼야"
[인터뷰③]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대학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12.04.29 15:40l최종 업데이트 12.04.29 1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