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일치(祭政一致) 이동 사회의 중심장소 : 깃발 [巾건, 旄모]
오늘 의생활(衣生活)에 관한 글자들을 살피다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흔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巾은 흔히 ‘수건/건’ 이라고 알아와서 의류 혹은 의생활(衣生活) 쪽으로만 생각해왔는데, 뜻밖에도 시원(始原) 역사의 한 단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패건(佩巾)
巾 수건/건.
巾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패건(장식용, 의례용으로 늘어뜨리는 띠)의 모습을 본떳다고 합니다. 그러나 갑골문의 모양과 巾이 다른 글자내에서 깃발이나 베의 뜻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나무에 걸려있는 천(베) 혹은 깃발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巾이 깃발과 베의 뜻
① 帥 (수) [阜 언덕/부 + 巾 수건/건] (언덕 위의) 장수/수. 장수(將帥) 원수(元帥)
② 師 (사) [阜 언덕/부 + 币 깃발/잡] (언덕 위의) 스승/사. 사단(師團) 교사(敎師)
위에 든 巾의 예시는 유난히 언덕에 깃발이 있을 때 지휘부가 되는 것을 강조합니다. 초원에서 전쟁을 하게되면 언덕에 지휘부가 있는 것이 타당해보입니다.
전쟁과 관련한 것만이 아니라 ‘스승’의 의미도 언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언덕과 깃발이 조합되는 것에 무언가 비밀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담 ‘언덕’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丠 = 㐀 → 丘 언덕/구. 소전(小篆)
갑골문
구(丠)에 대해 설문해자는 소전체의 글자를 예시하면서, <一,地也 一曰四方高,中央下爲丘>
북(北) 을 등지고 "사방이 높고 중앙아래를 ‘언덕/구’라" 기술합니다.
평지나 초원에서의 구릉을 ‘언덕/구’로 인지했는데, 설문해자의 해석은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과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을 줍니다. 분지(盆地)의 느낌이 있습니다.
분지라고 생각하고 갑골문을 보니 ‘분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분지는 마을이 형성되기에 아늑한 지역이지요.
강희자전(康熙字典)은 丘(구)에 대해 <又前高後下曰旄丘..土之高者曰丘。因高以事天> “또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모구(旄丘)라 한다. 땅의 높은 것을 구(丘)라하는데, 높기 때문에 하늘의 일을 한다(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고 말합니다.
강희자전에서는 丘의 기능을 이야기해주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천의식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모구(旄丘)라고 부른다고 또 힌트를 줍니다. 모(旄, 깃발)가 꽂혀있는 丘라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모(旄)라고 부르는 깃발이 남아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모(旄)
당간지주 신라 정읍 금산사 (幢 깃발/당)
강희자전의 해설에 의하면 모(旄)가 있는 곳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신성한 곳이 됩니다. 모(旄)라는 깃발이 세워짐으로 어떤 지역이 신성한 곳이 된다는 것으로 미루어, 이는 정착생활을 하는 문화에서 신전의 느낌보다는 이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분위기를 강하게 풍깁니다.
<三國志 위지 동이전 韓조>에서 ‘긴 장대에 방울과 북을 달아놓고’ 라고 구절이 旄의 모양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는 곳을 ‘소도(蘇塗)’라 하며, 소도는 제의가 행해지는 신성지역이며 모든 도망자가 이곳에 이르면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旄를 불교에서는 당(幢)이라고 부릅니다. 오래된 고찰을 가보면 반드시 절 마당에 높은 깃대 모양으로 세워놓은 당간지주(幢竿支柱)를 보게 됩니다. 당간지주가 높을수록 그 절의 위상을 말해준다고 하는데, 당간지주는 불교 고유의 풍습이 아니라 모(旄)를 세우는 것에서 비롯된 풍습입니다.
현재 旄의 흔적은 몽골에서 중요한 손님이 올 때 또는 축복을 전할 때 손님에게 정중하게 전하는데, 그 천을 ‘하닥’이라 부릅니다. 예전 우리나라에서 서낭당 나무에 천이 걸려 있듯 나무기둥에 ‘하닥’이 걸려있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旄의 흔적이 무당집의 깃발로 남아 있습니다.
하닥이 걸려있음
서낭당에 걸린 천들
구(丘)가 하늘을 섬기며 백성을 교화하는 아주 중요하고 신성한 곳이었기 때문에, 丘(구)를 떠난 사람들은 丘로 돌아갈 날을 그리워한듯합니다.
여우가 구릉을 향해 머리를 향한다는 문자적 의미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여우보다는 ‘丘’를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 묘사한 것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