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가능성의 원칙의 무미건조함에 대하여|자유 게시판
불휘|등급변경▼|조회 315|추천 7|2015.07.10. 23:18 http://cafe.daum.net/sisa-1/dqMu/14211
미제국주의자들의 브레인 중에 브레인들은
워낙에 아이큐가 높은새끼들이 많아서
누가 누구의 머리 꼭대기에 와 앉아있는지를
확인해봐야겠다는게 어불성설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 최첨담 대가리들 중엔
칼 포퍼라고 반증(반박)가능성의 원리를 편 사람이 있습니다.
과학(학문)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얘기하는 핵심은
그냥 아주 차갑게 이겁니다.
"너의 주장이 과학적(학문적)일려면 반증(반박)가능하게 주장하믄 되"
실험실에 있던 사람들은 환영하죠.
"아, 드디어 실험실 밖에서 나의 주장이 환영을 받겠구나"
이래서 과학(학문)활동은 사회적인 안전장치를 보장받습니다.
워낙에 똑똑한 대가리들이라 이 반증가능성의 원칙으로
자유주의 사회는 만개했습니다. 지난 반세기의 이 사실을 부정할 순 없겠죠.
애초에 이 주장은 과학적인 명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내쳐버리고 싶었던 맑스주의나 진화론같은 반증불가능한 명제와 거의 동격의 주장입니다.
반증(반박)가능성의 원리를 어떻게 반증(반박)할 수 있겠습까?
미제국주의자들의 브레인 중에 브레인들은
워낙에 아이큐가 높은새끼들이 많아서
누가 누구의 머리 꼭대기에 와 앉아있는지를
확인해봐야겠다는게 어불성설인 경우가 많지요.
미제국주의자들의 브레인들이
워낙 아이큐가 높은 자들인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정론직필로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우리 카페의 짧은 역사에 있어서도
정론직필을 가지고 놀며, 카페 파괴적인 행위를 시도했던 자들이
더러 있었음은 사실이지요.
그 때마다 정론직필이 언급해 온 말이 있습니다.
즉, 자기들이 마치 정론직필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정론직필은 그들을
단호히 내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우리 카페에 대한 파괴공작이나
정론직필을 우습게 알고 가지고 놀고자 하는 자들은
적어도 정론직필의 지능지수 보다 훨씬 높은 자들이어야만
아마도 그것이 가능할 것인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그들 스스로는 아마도
정론직필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겠지만....
그러나 반대로 정론직필의 눈에는 마치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는 손오공"처럼
그들의 행동과 수작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훤히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럴 경우, 정론직필은 어느 정도까지는 못본 척 하고 참아줍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오만함이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될 경우
즉시 [활동중지] 처분을 해왔습니다.
그런 하찮은 인간성의 소유자는....우리 카페에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정론직필이 카페지기로 있는한
철저한 카페운영 원칙들 중 하나로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갈 것입니다.
그런 최첨담 대가리들 중엔
칼 포퍼라고 반증(반박)가능성의 원리를 편 사람
이글루스 블로그 시절부터 정론직필의 게시글들을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아마 다들 아실 것인데....정론직필은 이상하게도
소위 "석학"이라는 사람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거만을 떨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왜냐면....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석학"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의 주장들을 해대야만 그래도 뭔가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구나
라고 착각하는 무지랭이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되는데....
그러나 정론직필은 그런 "석학"들에 대해 아는 바도 없거니와
실제로 정론직필 스스로가 별로 "유식하거나 박학다식"한 사람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론직필이 아는 것은.....
석가, 예수 등도 별로 "학문"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닌데도
오늘날 "성인"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 오늘날까지도 소위 "명저"로 불리어지는 많은 책들에는
다른 유명한 학자들의 논문 등이 전혀 인용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자신의 주장들만을 설득력 있게 기술한 책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죠.
즉, 진짜 "석학"이라고 불리어지는 사람들의 책들에는
놀랍게도 다른 "석학"들의 논문 내용 등이 전혀 인용되어 있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주장들만을 기술한 책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쨌든....
오랫만에 그 유명하다는 "칼 포퍼"라는 이름이 등장했군요.
물론, 정론직필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들어 알고는 있으나
그에 대해 자세히는 전혀 아는 바도 없고, 관심 자체도 없습니다.
당연한 귀결로서.,...우리 카페는
정론직필이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칼 포퍼의 이론이나 주장에 따라
운영되는 곳이 아님도 아주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만일 우리 카페가 마치 칼 포퍼의 주장이나 이념에 따라
운영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면....그건 "사실관계" 자체를
명백히 왜곡한 어불성설로서 매우 곤란한 일이겠지요.
그리고 위 불휘님 주장이.....우리 카페와 도대체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군요. 정론직필이 얘기하는 "합리적 반론" 또는
"학문적 반론"의 의미는....결코 칼 포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단지 현대의 세계에서 소위 "학문적 방법론"이라고 가르쳐지는 내용을
의미할 뿐이지요. 오늘날에도 하버드 대학 등 모든 대학들에서
학문적 논문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내용들이 있지요.
그런 기준을 어길 경우엔 각 대학들은 가차없이 징계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정론직필이 얘기하는 것은 그런 정도의 내용이거나
또는 지극히 "상식적" 수준에서의 일반론적인 얘기일 뿐이죠.
정론직필이 제시한 그런 "기준"과 토론방법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카페에 있다면....그건 매우 곤란하겠지요.
정론직필의 눈에는....그런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요즘의 "학문적 방법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궤변들만을 일삼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정론직필이 알지도 못하는 "칼 포퍼"에 대해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그저 인터넷 세상이 좋다는게 무엇이겠습니까?
관련 정보를 몇초만에 찾아 알아보거나 소개할 수는 있지요.
그래서....현대 "학문적 방법론"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칼 포퍼의 소위 "반증주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위키백과
포퍼의 반증주의(Falsifiability)
포퍼는 "귀납이 아닌 연역만으로 과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반증이다."라고 주장하며 '반증주의'라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았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절차를 따른다.
예를 들어 원앙새를 보니 알을 낳았고 이에 따라 '새는 알을 낳는다'라는 가설을 세운다.
물론 여기서는 경험적 일반화를 시도하지 않고 가설을 만들었다.
그런데 만약 타조가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하자(물론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게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가설에 대한 반증사례가 생겨나는 것이고
'모든 새가 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혹은 '알을 낳지 않는 새도 있다'라는 반증이 일어난다.
그는 반증이 가능한 진술과 불가능한 진술을 구분하여
반증이 가능한 진술만 '과학적 진술'로 보았다.
반증가능성은 '경험적으로 반박 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귀납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였지만
반증사례를 무시하고 연구하여 성공한 명왕성 발견의 사례, 음파의 속도 문제 해결의 사례 등은 반증주의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
반증주의를 곤란하게 만드는 또다른 문제중 첫 번째는 반증 불가능하지만 과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이 1/2이다'라는 확률적 진술 등은 반증이 불가능하다.
또한 과학에 중요한 이론이지만 반증이 불가능 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사이의 '원거리 작용'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내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반증은 불가능하다.
또한 반증되는 것은 이론의 전체이기 때문에 그 전체의 일부를 수정해서라도
이론 전체를 살릴 가능성이 늘 생긴다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특정한 가설을 반증하는 결정적 실험이나 관찰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다.
포퍼의 과학관
포퍼와 논리 실증주의
포퍼는 인식론과 과학철학에서 두 가지 근본 문제라고 생각한
"구획 기준의 문제"와 "귀납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그는 비엔나 모임을 주도한 학자들과 입장이 달랐다.
그는 실증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포퍼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입장이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과학철학자로서 포퍼의 명성을 높여준 《탐구의 논리》에서 그는
논리실증주의의 학문적 노선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다.
노이라트는 포퍼를 논리실증주의의 '공식적 반대자'라고 불렀다.
포퍼는 귀납의 이념과 검증 사이에는 실제적인 차이가 없으며,
과학은 귀납적이 아니며, 귀납은 흄이 그 정체를 폭로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는 검증가능성을 의미 기준으로 내세워
검증불가능한 언명을 무의미한 언명으로 분류하였다.
그들은 이 기준을 사용하여 과학은 의미 있는 언명으로,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의 명제들은 무의미한 언명으로 분류하려고 하였다.
경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명제 가운데
과학적인 언명만이 검증가능한 언명이기 때문에 유의미하다는 관점이다.
포퍼는 검증주의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논리학의 구조 안에서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과학 법칙은 보편 언명이고 이 언명이 언급하는 영역은 시공간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이다.
보편 언명을 지지하는 언명을 아무리 많이 모은다 하더라도
그 언명들은 검증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못하다.
자연 법칙은 보편 언명이며, 관찰 결과를 보고하는 언명은 단칭 언명이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단칭 언명을 수집하였다고 할지라도
보편 언명이 논리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포퍼는 검증가능성 대신에 반증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가설은 단칭 언명에 의해 검증될 수는 없지만 반증될 수는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희지 않은 한 마리의 백조"를 관찰하였다면 "모든 백조는 희다"는 언명은 거짓이 된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을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분하는 구획기준으로 제시하였다.
그의 구획 기준은 의미 기준이 아니라 단지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짓는 기준이다.
포퍼는 논리실증주의의 의미 기준은 귀납적 과학관의 연장이라고 보고
귀납법에 대한 비판과 동일한 맥락에서 그것을 비판한다.
논리실증주의는 흄이 제기한 '귀납의 문제'를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귀납법이 과학의 방법으로 유용하다고 믿기 때문에
귀납법의 전통 위에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귀납주의
포퍼의 관점에 따르면 과학자들의 과제는 가설을 제시하고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연구가 '과학적 발견의 논리' 곧 '과학의 방법'에 대한 연구이며,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 대한 연구이다.
이 문제는 '과학이 무엇이며', "경험 과학에 속한 언명(이론들,가설들)과
다른 언명 특히 사이비 과학적 언명, 전과학적 언명, 형이상학적 언명, 수학과 논리학의 언명을 구별하는 기준"인 구획 기준의 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포퍼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모범 답안을 제시해 온 전통적인 귀납주의 과학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포퍼에 따르면 귀납주의 과학관은 과학을
'귀납적 방법'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며
과학자들은 귀납적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귀납적 방법은 많은 논리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결코 정당한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과학자들과 일반인들이 과학의 징표로 생각해온 귀납적 방법을
과감하게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과학을 해석할 수 있는 통찰을 부여한 개념이 바로
'반증가능성'이다.
반증가능성은 포퍼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가 인식론의 근본 문제로 설정한 '귀납의 문제'와 '구획 기준의 문제'를 해결하고
추측과 반박을 새로운 과학의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과학은 추측과 반박을 통해 끊임없이 진리에 접근한다는 지식의 성장 이론은
반증주의 과학 이론의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구획 기준의 문제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의 문제가 '구획 기준의 문제'이다.
포퍼는 한 명제가 반증가능한 경우 그 명제는 경험 과학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진리의 문제와 무관한다. 그는 "구획의 문제는
더욱더 중요한 문제인 진리의 문제와 구별된다. 거짓으로 밝혀진 이론도
거짓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가설, 과학적 가설의 성격을 지닐 수 있다."라고 하였다.
반증가능성은 가설이 진리인가 그렇지 않은가와는 무관하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은 논리적 반증가능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반증가능성은 명제의 논리적 구조와 관계가 있을 뿐이다.
구획 기준으로서 반증가능성은 반증이 실제로 행해질 수 있거나 혹은
행해지는 경우 반증이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나의 기준에 따르면 한 언명 혹은 이론은 적어도 하나의 잠재적 반증가능자
곧 적어도 그 언명과 논리적으로 상충할 수 있는 가능한 기초 언명이 존재하는 경우
오직 그러한 경우에 한해서 반증가능하다. 관련된 기초 언명이 참임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백조가 희다."와 같은 명제는 반증가능하다.
희지 않은 백조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행동은 자기 이익에서 나온 이기적 행동이다."와 같은 언명은
반증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은 심리학, 지식 사회학, 종교학에서 널리 주장되고 있지만,
어떤 이타적인 행동도 그 행동 뒤에는 이기적 동기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퍼는 반증가능성에 의해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이 기준을 사용하여 우리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포퍼의 이러한 제안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과학을 높이 평가하는 시대 정신에 편승하여
저마다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이라 주장하는 상황에서
구획 기준이 있다면 이것을 사용하여 사이비 과학의 기만을 폭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퍼가 구획 기준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도 이러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당시 과학을 표방하고 나온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가 비과학적임을 입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두 이론에 대해 어느 정도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러주의자들은 순종하는 아들과 반항하는 아들 모두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포퍼는 아들러의 이론은 반증불가능하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르크스주의도 이와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비과학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많은 예측을 하였지만 그 예측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결정적인 반증을 피하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포퍼는 과학으로 위장하여 학문적인 위상을 높이려 한 이론들의 정체를 폭로하였다.
합리주의
포퍼는 과학의 합리성의 근거를 비판과 토론에서 찾음으로써 합리성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포퍼의 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 전반에 확대 적용될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철학의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동일하게 본다. 철학과 과학에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토론의 방법이며, 이 방법은 "문제를 분명히 진술하고 그에 대해 제출된 다양한 해답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과학 이론은 단지 비판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비판의 빛 아래에서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신화와 구별되고 비과학과 구별된다. 합리주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그는
'열린 사회론'으로 응용하여 사회 철학에까지 확대하였다.
비판과 토론의 방법은 폭력이 아닌 이성을 통해 우리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진적 사회 공학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포퍼는 "과학 또는 철학으로 나아가는 길은 하나뿐이다. 문제와 만나고,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 문제와 사랑에 빠져라.만일 더 매혹적인 문제와 만나게 되지 않거나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죽음이 그 문제와 당신을 갈라놓을 때까지 그 문제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였다. 주례사같은 이 말은 철학과 과학에 대한 그의 생각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인문계 학생을 위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제 5판 (제 3부 3강 포퍼, 라카토슈, 파이어아벤트의 과학철학)
포퍼가 말하는 합리주의
포퍼가 말하는 합리주의란 데카르트 같은 철학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라는 철저하게 비이성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이성이나 합리주의를 논할 때는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수와 오류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통해, 그리고 나아가 자기비판을 통해 '학습'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합리주의자는 한 마디로,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는 것보다 다른이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나아가 남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에 대한 남의 비판을 쾌히 받아들이고 남의 생각을 신중히 비판함으로써 타인에게서 기꺼이 배울 의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판, 더 정확이 말하면 '비판적 논의'이다.
진정한 합리주의자는 자신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판만 가지고 새로운 관념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반면 인간의 관념에 한해서는 오직 비판적 논의만이 찌꺼기에서 낟알을 가려낼 수 있다.
사상의 수용 혹은 거부가 결코 철저하게 이성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관념을
다각도에서 검토하고 타당한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성숙함은 오직 비판적 논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비판적 논의에 대한 분석에는 인간적 측면도 포함된다. 합리주의자들은 비판적 논의가
사람 사이의 유일한 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비판적 논의는 우리 삶에서 매우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합리주의자는 비판적 논의의 근본이 되는 주고 받기(Give and Take) 태도가 철저히 인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비판적 논의에 임하려면 이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비판적 논의 태도는 오직 다른 이들의 비판을 거쳐서만 생길수 있으며, 다른이들의 비판을 통해서만 자기비판에 이를 수 있다.
합리주의적 태도란 다음과 같다.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 진리에 가까이 가는 것이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논의가 끝날 때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전보다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자.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둘 때에만 우리는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옹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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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VS 토마스 쿤 : 역사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과학자들
칼 포퍼는 마르크스는 철저히 비판했고, 진화론은 사회진화론으로 어느 정도 수용했다.
반면, 토마스쿤은 과학이론에서의 진화는 불신했고, 마르크스가 주장한 <변증법>은 어느 정도 인정했다.
토마스 쿤이 주장한 <패러다임 이론>은 사회현상이 일반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혀 새로운 사회나 문화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자 그럼 이 두 과학자를 왜 역사 이야기에서 다루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의 이론이 과학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역사, 사회 전반에
너무나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역사철학에서도 이 두 학자의 이론을 완전히 배재한 채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기가 버겁다.
- 칼 포퍼와 <과학적 검증>
하지만, 역사가 무엇을 밝혀야 하고, 어떤 방법을 활용해야 하는지는
역사학자들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칼 포퍼>의 과학 법칙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칼 포퍼>는 <논리주의> 또는 <경험주의>와 과학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면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예를 들면, 근대인들은 점성술을 믿거나 신에 대한 믿음, 별자리와 같은 것을 통해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었다. 칼 포퍼는 말한다. <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인간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는가? 당연히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의 존재>는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되려면 제일 먼저 그것이 아니다라는 <반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은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반증가능성>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신>이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 신을 믿는 사람은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한다. <교회에서는 불경이 아니라 찬송가를 부른다>는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신>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신의 존재가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논리나 경험만을 따지는 <논리학, 경험주의, 실증주의>에서의 신은 과학도 아니고, 의미도 없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신이 과학은 아니라고 해도 <의미>는 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건전한 보수주의자이자, 서구학자인 포퍼의 <도덕적 논리>인 것이다.
반면, <앞으로 비가 올 것이다> 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건 <과학>적인 것일까?
<논리주의>에 따르면 이것은 맞는 명제이다. 비는 언젠가 올 것이니까....
하지만 포퍼는 이것이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첫째, 이것은 과학을 모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도 비온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단지, 그게 장마철에 올지, 3년 뒤에 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둘째, 이것은 <반증>이 안된다. 앞으로 천년간 비가 안왔다고 해서
저 명제가 틀릴까? 아니다. 만년 뒤에, 혹은 백만년 뒤에 비가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증명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은 과학이 안되는 것이다.
즉, 포퍼에게 과학이란 <100% 완벽하게 검증>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럼 검증이란 어떻게 해야 과학이 되는 것일까?
결국, 칼 포퍼는 자연과학이든,사회과학분야에서든, 역사에서든 변화와 발전에는 법칙이 있으며, 그것의 결과로 사회는 발전해나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포퍼의 과학연구가 <과학이 역사적으로 전개해 온 방식>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학자가 있다. 그는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았더니 변화나 발전이라는 말보다 <전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에서 법칙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양한 <다른 세계>들이 공존한다고 말하였다.
토마스쿤은 이런 주장들을 묶어 <패러다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 용어는 과학사 뿐 아니라 모든 인문사회과학과 역사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럼 다음장에서 토마스쿤의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http://historia.tistory.com/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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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 VS 토마스 쿤 제 2부 : 진보와 다른 관점의 패러다임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 등장하다.
포퍼가 제국주의 시대의 위대함을 보고 자란 보수성향의 인물이라면, 토마스 쿤은 세계대전 속에서 실존주의와 사회주의적 사고 방식을 접하면서 자란 인물이다. 그는 과학적 업적이 계속 쌓여가며, 과학은 진보한다는 포퍼의 이론에 의구심을 보였다.
먼저 그의 초기작인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적 이론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라고 주장한 그의 업적이 얼마나 혁명적이면서도, 또한 보수적인지에 대한 사상 검증을 시도했다. 그리고 과학혁명의 구조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역사라는 것이 연대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때, 그 이미지는 ... 주로 고전적 서적들이나 연구자들 자신에 의해 그려진 것이다. 본 논문은 그것들이 우리의 이해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과학이 객관적 지식이며,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발전하고 있다는 포퍼의 과학관을 부정했다. 과거의 업적들이 쌓이고, 진화한다고 믿는 것, 누군가를 <계몽하고 교육할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기 오류일 뿐이다. 아울려 기존의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 가는 것이 <사명>이라고 믿는 것은, 기득권자들이 가진 가장 위험한 발상의 한 단면인 것이다.
그는 과학의 역사에 <패러디임>이라는 것을 도입했고, 그 후 그의 이론은 과학사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큰 파급을 주었다. 그럼 토마스쿤이 주장한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무엇일까?
원래 패러다임(paradigm)은 <다양한 관념을 묶어주는 체계>를 말하는데, 그리스어로 패턴, 모델, 전형 등을 의미하는 파라테이그마(paradeigma)을 영어로 바꾼 말이다. 토마스 쿤은 이 단어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즉, 문제를 보고, 문제를 접근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모두 묶어 패러다임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토마스쿤은 이 문제풀이 방식이 모든 인문, 사회, 과학에 적용되는 연구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약, 기득권을 가진 하나의 이론에 심각한 오류가 생긴다면 기득권자들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론의 문제점을 더 크게 부각시키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는 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교대하면서 하나의 과학 혁명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만 과학의 역사란 일관적으로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진보하는 역사가 아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해서 패러다임이 교대한다. 역사로 본다면, 하나의 공동체에 심각한 균열이나 오류가 생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그 새로운 대안은 <혁명적 이론>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대세>가 될 수도 있다.
이 이론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된 것은,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은 역사를 발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의 어떤 자료를 발견하고 그것을 진리로 여기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텍스트(문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는 그 문서를 가지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역사이다. 역사가가 100명이면 100개의 역사가 나와야 정상이다. 또한 그 100개의 역사를 100명의 독자가 읽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부정하는 것, 또한 저자의 숨은 의도를 알거나,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즉, 역사는 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역사는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과학에서의 패러다임은 역사로 넘어와서
역사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포퍼의 자본주의적 윤리정신과 맞선 토마스 쿤의 사회주의 이론
그렇다면, 새로운 이론은 낡은 이론에 비해 우월한 것일까? 토마스쿤은 기존의 이론과 새로운 이론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념 사이에 우열을 비교할 기준이 없는 것을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라고 하는데, 이전 기득권과 새로운 기득권은 공약불가능성을 갖는다.
- 변증법 패러다임의 역사적 활용
토마스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를 변증법으로 설명하였다. 어느 한 과학이 체계를 잡기 전의 전과학의 단계에서 기득권을 잡은 과학이 정상과학이 된다. 그런데, 정상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한다. 즉, 정상과학(정) - 위기(반) - 새로운 과학(합)의 구조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론도 영원히 완벽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위기에 의해 새로운 과학으로 변하게 된다.
역사에서는 <시대 정신>이라는 것으로 패러다임 이론을 수용하였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곤 한다. 그것을 넓게 보면 이념(이데올로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이념은 수많은 이론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 개인이나 지도자의 신념도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 무엇도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없으며, 악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포퍼와 토마스 쿤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논쟁이 되는 부분이다. 그 논쟁은 <현대과학철학 논쟁>이라는 책에 잘 나와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둘의 생각의 차이점과 역사관의 차이를 중심으로 다른 점을 나열해보았다. 역사에서의 법칙을 찾고, 건전한 정신을 강조한 포퍼와 패러다임이라는 관점을 통해 역사의 변화를 강조한 토마스 쿤.... 이 둘은 과학을 넘어 역사철학에서도 큰 영향을 준 인물들임에는 틀림없다.
http://historia.tistory.com/3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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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ifiability
From Wikipedia
검은 백조들
Are all swans white?
Falsifiability or refutability of a statement, hypothesis, or theory is an inherent possibility to prove it to be false. A statement is called falsifiable if it is possible to conceive an observation or an argument which proves the statement in question to be false. In this sense, falsify is synonymous with nullify, meaning not "to commit fraud" but "show to be false". Some philosophers argue that science must be falsifiable.
For example, by the problem of induction, no number of confirming observations can verify a universal generalization, such as All swans are white, yet it is logically possible to falsify it by observing a single black swan. Thus, the term falsifiability is sometimes synonymous to testability. Some statements, such as It will be raining here in one million years, are falsifiable in principle, but not in practice.
The concern with falsifiability gained attention by way of philosopher of science Karl Popper's scientific epistemology "falsificationism". Popper stresses the problem of demarcation—distinguishing the scientific from the unscientific—and makes falsifiability the demarcation criterion, such that what is unfalsifiable is classified as unscientific, and the practice of declaring an unfalsifiable theory to be scientifically true is pseudoscience. The question is epitomized in the famous saying of Wolfgang Pauli that if an argument fails to be scientific because it cannot be falsified by experiment, "it is not only not right, it is not even wrong!"
Kuhn and Lakatos
Whereas Popper was concerned in the main with the logic of science, Thomas Kuhn's influential book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examined in detail the history of science. Kuhn argued that scientists work within a conceptual paradigm that strongly influences the way in which they see data.
(참고)
우연히 아래의 기사를 발견하여 읽어보고 느낀 점이 있어
아래 부분을 추가합니다.
[허핑턴포스트 클리토리스 프로젝트] 2. 사라진 클리토리스
The Huffington Post | 작성자 Carina Kolodny and Amber Genuske
게시됨: 2015년 06월 24일 18시 03분 KST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06일 10시 43분 KST
1948년
‘그레이 해부학’이 클리토리스를 버리다
1858년에 런던에서 초판이 출판된 이래 ‘그레이 해부학’은 인체 해부학의 권위있는 책으로 인정받아왔지만, 1948년에 나온 25판은 클리토리스를 슬쩍 삭제했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 24판에서 클리토리스를 심도있고 정확하게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부 일러스트레이션에 등장하기는 했다. 25판에는 클리토리스는 온데 간데 없다.
2014년
질 오르가슴은 근거가 없다는 새 연구가 나오다
이탈리아 연구팀 푸포+푸포가 ‘임상해부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논란을 일으켰다. 질 오르가슴과 G스팟은 둘 다 근거 없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07/03/story_n_7651782.html?1435914367
오늘날의 학문적 결과들이 무슨 대단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착각이지요.
위 기사를 읽어보아도 알 수 있지만...
비교적 최근세사에 있어서 조차도.....인체 해부학 문제에 있어서 조차도
상당히 엉터리 부분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지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1. 오늘날의 인간이 가진 학문적 지식들이라고 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의외로 매우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입니다.
2. 그리고 또다른 의미는....오늘날 현대 학문적 결과물이나 지식이라고
하는 것 자체도....아마도 세월이 조금만 더 지나면....어쩌면
매우 엉터리 이론들이나 주장들이 되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현재의 "학문적" 결과물이나 지식이라고 해서....그것들이 모두
반드시 절대적으로 "옳은" 무엇이라고 확신할만한 것이 못된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현대 학문적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들은
현재라는 시대에만 통용되는 이론, 또는 현재적 패러다임에 맞는
이론이나 주장들에 불과한 것들일 뿐.....
만일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이론 등이 나온다면...
현재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학문적 주장들이 모두 엉터리가
되어버릴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학문적 이론"들이나 가설들의 본질이자
운명이지요.
하물며....학문적 이론이나 가설이 아닌
"개인적 생각"이나 주장들의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에 있는 것들인지를
우리 개인들은 명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도....자신들의 주장이나 의견들만이 무조건 옳다고
우겨대는 사람들이....현재 한국사회에도 매우 많지요.
그래서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하지요.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안다면...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을 것이라고 우겨대는
무지몽매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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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빨간불 작성시간 15.07.11 카폐관리에 수고 많으시네요 난 과학 철학자 이니 하는것은 알고 싶지 않으네요 우리나라 인물만 해도 얼마나 훌륭한 사람 많은데요 난 머리가 아무리좋아도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그 사람에게 올바른 가치관이 없으면 맹탕이고요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어서면 후대 까지 젯사 지내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려말에 정몽주 조선조에 성삼문 이숭신장군님 고려조에 최영 장군님 등 죽는줄 알면서도 블가항력인줄 알면서 바른 가치관 위해서 생명 걸었던분 더 나아가서 일제 식민지에서 목숨 걸고 구국운동 하신분들 이런분들 존경 합니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도 합리적인 생각 바른가치관 지녀기에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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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7.11 정론직필도 위 내용과 같은 문제에 대해
솔직히 관심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누군가 "석학"을 들고 나온다고 해서
그런거에 정론직필은 기죽는 사람이 아니라는거....
어쨌든, "반증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간단히 검색을 통해 알아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따위에 관심있는 분은 읽어볼 것이고
관심없는 분들은 그냥 게시글을 뒤로 클릭해서 나가면 될 것입니다. -
작성자꼬마야 작성시간 15.07.14 잘봤읍니다. 절대적으로보지 말아야하는데 말이죠. 쿤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글은 간만에보는듯하네요. 포퍼는 비트겐슈타인에 한참 밀리죠 . 그래서 불쌍함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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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꼬마야 작성시간 15.07.14 아무리 서양철학이 싫어도 최소한 과학혁명의구조는 읽어봐야한다고봅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