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유대인입니까?/아슈케나지 유대인 카자리아 기원설(The Ashkenazi Jews/Khazarian origins theory)
작성자정론직필작성시간18.04.22조회수1,551 목록 댓글 4B-1. 누가 유대인입니까?
August 22, 2017 johnchang Off Uncategorized, 교육자료실
지금의 유대인은 3 계파의 유대인으로 크게 나누고 있습니다.
1. 아쉬케나지(Ashkenazim) 유대인

“아쉬케나즈”라는 말은 그 당시 히브리어로 “독일”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슈케나짐”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독일계 유대인(German Jews)”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기간 동안 많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헝가리, 폴란드,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을 포함한 동유럽 국가들로 이주하여 비독일어권 지역에서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이며, 북아메리카 특히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대다수의 유대인들로써, 우리가 유대인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자르 계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이 시오니즘 운동을 전개하였던 유대인들이었고, 독일(Germany)과 동유럽 등지에 많이 살고 있었으며,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었던 볼셰비키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유대인입니다. 이들은 세계 금융자본을 점령하고 있는 유대인들이며, 전 세계에서 수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전쟁 부로커들이 바로 카자르 계 유대인들이 많습니다.
인종적으로는 투르크 계에 속하는 카자르(Kahzar) 족은 중국 북부로부터 흑해까지 펼쳐진 광대한 초원을 방랑했던 유목민족으로, 7-10세기에는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카프카즈 산맥,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의 지역을 통치하였던 민족이었으며, 그들이 세웠던 나라가 카자르 제국입니다.
카자르 제국의 지배계층은 8-9세기에 모두 유태교로 개종하여 강대한 유태 제국을 세웠던 민족이며, 역사상 혈통적으로는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유대교를 국교로 삼았던 유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카자르 제국의 수도 이틸(Itil)은 기원 10세기말에 러시아에 정복되었는데, 이틸(Itil)의 유적은 2008년에 카스피 해(Caspian Sea) 아스트라한 항구의 서남쪽 습지에서 러시아의 고고학 발굴단에 의해서 그들의 주거 유적지들이 발굴되었습니다. 발굴된 성채 주변에는 몽골 유목민의 천막집인 유르트(Yurt)와 흡사한 거주지가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카자르 제국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빠르게 유대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며 유대인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카자르 제국이 러시아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면서 그들은 동유럽과 러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아쉬케나지 유태인, 즉 카자르 족은 각지에 Synagogue(회당)를 세우고 유대교의 신앙과 유대인의 공동체를 유지하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을 비롯하여 서방세계로 많이 넘어왔는데 이들이 러시아에서 살고 있었던 러시아계 유태인들입니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땅의 유태인도 아니고, 러시아 사람도 아닌, 즉 카자르 족의 후예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종적으로 따지자면 훈족(투르크족)의 핏줄이 코카서스 백인과 혼혈되어 생겨난 종족이며,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1천 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곳에 살고 있었던 백인들과 혼혈된 결과 외형상으로는 백인에 가깝게 보이는 유대인들입니다.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의 직종이 한정되어있었으며, 기독교인들은 높은 이자와 관련된 금융활동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슈케나짐유대인들이 무역과 금융에 관련된 직업을 맡았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많은 유대인들이 포도밭을 소유했으며 포도주를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였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전 유럽에 살고 있었던 약 8백만 유대인들 중 대다수가 아슈케나짐이었는데, 학살당한 6백만명의 희생자 역시 대부분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폴란드에 살고 있었던 330만 유대인 중 약 3백만 명(91%)의 유대인들이 희생을 당하였으며, 폴란드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 110만 명 중 90만명의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82%)들이 희생당하였습니다. 독일, 프랑스, 헝가리와 발칸 반도 출신 유대인들은 약50~90%가 학살당하였습니다.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의 관습들은 세파르딤 유대인들과 여러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예를 들면,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의 유월절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중에는 전통적으로 콩과식물, 옥수수, 쌀과 조를 먹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반면에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은 자유롭게 생선을 섭취하고 우유를 마실 수 있었지만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이런 음식들을 금하기도 하였습니다.
2. 세파라디(Sepharadim) 유대인 : 셈(노아의 장남, Shem)족
우리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의 후예인 셈족 유대인, 성서상의 유대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마사다에서 마지막까지 로마에 대하여 항전하였던 유대인들과 같은 족속들입니다.
이들은 AD 2세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부터 완전히 몰아낼 때 유럽으로 디아스포라 했던 유태인들입니다. 이들은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이주하여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전통을 이어오며 살아왔던 유대인의 후손들이며 전 세계에 약 4,500,000명이 현재 이스라엘, 중동, 서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살고 있습니다.

“세파르디 유대인”는 스페인을 뜻하는 히브리어입니다. 이들은 AD 600년에서부터 AD 1500년까지 스페인에서 번성하였다가 기독교도(가톨릭) 가 이슬람교도들을 이베리아반도에서 몰아내고 다시 기독교 국가로재통일시킨 이후 그들에 의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쫓겨난 유대인의 후손들을 의미합니다.
1490년대에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1492년, 포르투갈 1497년)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무어(Moor) 족이 이베리아 반도(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었던 이슬람 문화와 혼합된 유대인 관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파라디 유대인은 유대교 정통파(正統派)의 한 갈래로서, 전체 유대인의 20%를 차지합니다. 지금 그들은 남유럽, 중동, 남미 등에 흩어져서 많이 살고 있습니다.
1949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한 이후, 600,000명의 세파라딤 유대인들이 유럽과 중동의 여러 지역으로부터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들어 왔으며, 약 250,000명은 유럽의 각처와 미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유대인의 대부분이 세파라딤 유대인들입니다.
3. 팔라샤(Falasha) 유태인 : 흑인인 이디오피아계 유태인들을 말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흑인 유태인들이 많이 있는데 바로 동북 아프리카 이디오피아계의 팔라샤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이란 원래 특정 유전자를 공유하는 민족 집단을 말하는 것이 더 이상 아닙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도 유대인이지만, 유대 율법 상, 유대교를 받아들이는 순간 유대인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오늘 유대교를 믿고 신앙고백을 하는 순간, 우리는 조선 민족에서 유대인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란 민족 개념이 아니라 종족, 언어, 문화, 국적을 막론하고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그 밖의 유대교 종족들
미즈라히 유대인 또는 미즈라힘(히브리어: מזרחים) 유대인 : 이들은 중동(서아시아·캅카스)에 기원을 가지는 유대인 집단을 말합니다. “미즈라히(Mizrach)”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동쪽”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에 이들의 대부분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지에 각각 1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고, 미국에도 약 25만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아슈케나짐과 세파라딤 사회와 구별되려고 하고 있지만, 보통 세파르디 유대인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http://haeunchurch.org/archives/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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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케나지 유대인 카자리아 기원설(The Ashkenazi Jews/Khazarian origins theory)
후후
2013. 12. 29. 17:08
https://m.blog.naver.com/beneys/140203651449
다음은 위키피디아의 '아슈케나지 유대인/카자리아 기원설' 항목을
본인이 번역한 글임을 밝힙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The_Ashkenazi_Jews/Khazarian_origins_theory
2013. 12. 26 (09:00)
아슈케나지 유대인/카자리아 기원설
(The Ashkenazi Jews/Khazarian origins theory)
카자르인들(그리스어 : Χάζαροι, 히브리어 : כוזרים[쿠자림], 터키어 : Hazarlar)[1]은 터키민족들의 집단으로서, 남부 러시아에서 코카서스, 그리고 동부 유럽에서 중앙아시아 서단(西端)에 이르는 반(半)유목 제국을 형성하였다. 8~9세기의 어느 시점에 지배계층이 유대교로 개종하였다고 전해진다. 왕국 전체의 개종범위 자체는 논의되고 있다.
19세기 말,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을 선두로하는 몇몇 학자들은, 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카자리아의 붕괴 이후 카자리아에서 피난하였던 디아스포라에 그 뿌리를 둔다고 추론하였다. 이 이론은 유대교 안팎에서 복잡한 역사가 있었다. 주요 학자들은 그것을 옹호하기도 하였고, 순전한 공상으로 일축해버리기도 하였다. 반유대주의자들은 간혹 다양한 목적으로 이 이론에 달려들었다. 즉, 유럽의 유대인들이 야만적 아시아 인종에 기원함을 시사한다거나, 유럽의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의 연관성을 반증한다거나, 혹은 반유대주의를 지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역사
에르네스트 르낭은 카자르-아슈케나지 이론을 공개적으로 설명한 최초의 인물로 명성이 높다(1883년 1월 27일 파리(Paris), 성 시몬 재단(Cercle du Saint-Simon) 앞에서 행한 강연). 그는 개종이 유대민족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자르인들의 왕국(카자리아-역주)의 이러한 개종은 다뉴브강과 남부 러시아의 국가들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기원에 관하여 상당한 중요성을 갖는다. 이 지역들이 수용하는 유대인 주민들의 대부분은 십중팔구 인류학적으로 유대인적인 요소를 전혀 혹은 거의 전혀 갖고있지 않다.'[2]
살로 위트마이어 바론(Salo Wittmayer Baron) -그의 전기작가는 그를 '유대역사의 건축가'로 부른다-[3] 은 그의 책 '유대인의 사회.종교사(Social and Religious Hisory of the Jews;1957)'의 한 장절의 대부분을 유대인 국가 카자리아에 할애하였다. 그의 책 '유대인의 사회.종교사'에 따르면, (카자리아의 유대인-역주) 공동체는 동유럽 유대인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유대인의 직접증언의 부족은 바론을 당황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예상한 바였는데, 중세 유대인들은 '그들의 주요한 교육의 중심부를 벗어나면, 보통 말이 어눌하기' 때문이다.[5] 그의 판단에 따르면, 카자리아의 유대교로의 개종은 '최대이자 최후의 집단 개종'이었으며, 왕실과 대부분의 주민들을 포함하였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에 대한 되풀이되는 비관용과, 그 지역의 만성적 전쟁(비잔티움, 사산조 페르시아, 아바스 왕조, 우마이야 왕조 간의)이 주는 지정학적 격변 -이것은 종종 소아시아 북부에 대단히 파괴적임이 드러났다- 을 피하여 그곳으로 이주하였다.[6]
바론에게 있어, 유대인의 카자리아라는 사실은 서구 유대인들에게는 '붉은 유대인(red Jews)'의 이미지를, 이슬람 국가의 유대인들에게는 희망의 불빛을 불러일으키는데 있어 활발한 역할을 하였다. 바론이 보기에, 카자리아의 소멸 이후 디아스포라는, 북쪽으로는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로 향하며, 서쪽으로는 파노니아와 발칸 국가들로 향한다.[7] 그곳에서 그들의 세련된 영혼은 유대공동체를 설립하였고, 역설적으로, 슬라브인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의 길을 닦았다.[8]
11~12세기에, 이 동부 유대인들은 프랑스와 독일의 유대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동부에서의 교육의 소홀을 한탄하며, 유럽의 발버둥치는 신생 공동체들 내에서의 유대인 교육의 영구보존(永久保存)에 희망을 걸었지만, 바론이 결론짓기로, 유대민족 자체의 지도자적 위치를 점유하게 될 번성하는 공동체들이 바로 동유럽에서 몇세기 내로 흥기함을 본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한다.[9]
유전학
2001년에 발견된 바로는, 유대인들은 아랍 이웃국가 주민들 보다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북부 집단들(쿠르드족, 터키인, 아르메니아인)에 더 가까웠다.[10] 베하르(Behar), 스코렉키(Skorecki), 하머(Hammer) 등은 아슈케나지 레위인들에게서 발견되는 원형(原形) 하플로타입(modal hapoltype) -이것은 동유럽 도처에서 매우 자주 발견된다- 에 관해 논평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한가지 매력적인 원천은 카자리아 왕국일 것인데, 그 지배계층은 8세기 혹은 9세기에 유대교로 개종했다고 여겨진다 (던롭 1967)… 비록 아슈케나지 유대인들 다수의 NRY 하플로그룹 구성과, 아슈케나지 레위인들 내의 R1a1 하플로그룹을 이루는 미소부수체(微小附隨體) 하플로타입(microsatellite haplotype) 구성이, 몇몇 저자들에 의해 추정되었듯이(바론Baron 1957; 던롭Dunlop 1967; 벤사슨Ben-Sasson 1976; 키스Keys 1999), 주요한 카자르 혹은 기타 유럽 혈통과 일치하긴 하지만, 현대 아슈케나지 레위인들 사이에서의 단일한 혹은 몇몇 창시자들의 중요한 공헌을 배제할 수는 없다."[11]
2010년에 아츠몬(Atzmon) 등은, 그들의 저작이 아슈케나지 유대인 형성에 있어서의 중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슬라브 주민들의 대규모 유전적 공헌을 반박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 즉 유럽/시리아 유대인 주민들의 일부가 서로간의, 그리고 프랑스, 북부 이탈리아, 그리고 사르디니아 주민들과의 유사성을 지녔다는 것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카자르인 혹은 슬라브인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이론과도 양립불가하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슬라브 혹은 카자리아와의 어떤 혼혈이 서기 2,000년에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인정하였으며, 언급하기를, R1a1 하플로그룹의 출현율(prevalence) 7.5%는 -이것은 중앙아시아 주민들과 아슈케나지 유대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그리고 소르브인 사이에서 일반적이다- 슬라브 혹은 카자르와의 혼혈이 가능하다는 해석을 야기하였다고 한다. 비록 이 혼혈은 카자르인과의 혼혈이 아닌,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혹은 러시아인과의 혼혈만을 원인으로 갖긴 하지만 말이다.[12]
2012년에 해리 오스트러(Harry Ostrer)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모든 아슈케나지 유대인 남성 혈통이 중동 유대인 남성의 이주와 연관될 수는 없다. E3b, J1, J2 다음으로, 가장 흔한 아슈케나지 유대인 Y 염색체 유형은 R1a1과 R1a1이다. R1a1은 중앙아시아 주민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인(R1a1의 기원이라고 여겨진다), 러시아인, 소르브인(독일의 슬라브어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아주 흔하다. 이는 사실상, 혼혈이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혹은 러시아인들과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카자르인들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과의 혼혈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13]
존스 홉킨스 대학의 유전학자 에런 엘하익 박사(Dr. Eran Elhaik)[1]는 카자르 가설이 정확하다는 유전학적 저작을 제시하였다. 엘하익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카자리아 가설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는 고대 카자리아의 반대편 끝에 거주하는 주민들(아르메니아인, 그루지야인, 아제르바이잔 유대인들)과 유럽 유대인들의 군집화(clustering)이다. 코카서스 주민들은 코카서스 지역 내로 비교적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카자리아의 몰락 이전에 코카서스 주민들이 동유럽과 중(中)유럽으로 대량이주하였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발라노프스키Balanovsky 등, 2011), 이러한 발견들은 유럽 유대인들과 코카서스 주민들이 혈통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14]
엘하익 박사의 저작과 연구를 논한 글들이 더 있다.[2][3][4] 이 특정한 저작들의 일부는 또한 오스트러 그 자신에게 직접 이의를 제기했다.[5]
2013년 10월 부로 '아슈케나지 모계(母系) 혈통 중에 유럽의 굉장한 선사(先史) 조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영향력 있는 카자르인들이다.[15][16]
비판
오늘날의 역사가들과 과학자들은 카자리아설이 좀 더 정확히 신화라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17] 오늘날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했던 카자르 제국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 이론은 인터넷 상에서 널리 확산되어 왔으며, 종종 반유대주의 집단들 뿐만 아니라 반이스라엘 친팔레스타인 집단들과 연관되어 진다.[18]
2013년의 아슈케나지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는, 카자르 가설이 예측하였듯이, 아슈케나지 유대인 DNA에 미친 카자르의 공헌에 대한 어떠한 의미있는 증거도 발견하지 못하였으며[19], 비록 카자르 견해를 지지하는 어떤 역사적 혹은 DNA적 증거가 없지만 그것은 아랍 국가들에서 여전히 인기가 있다.[20]
일반적으로, 그 이론은 추측과[21] 반대주장들 -그것을 지지하는 정당한 증거가 없다는[22] 여러 과학자들의 주장[23]- 을 야기하였다. 그 이론의 또 다른 모순은, 문헌들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독일에[24][25][26] (그리고 기원전 139년 로마에[27]) 기원전 321년 또는 혹자가 주장하는 카자르 개종이 있기 대략 500~700년 전에 정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고대 히브리인들 및 중동과 강력한 DNA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이 발견되었으며,[28] 대략 3000년 전의 다른 유대인들과 다수의 공통유전자를 보유하였다.[29][30] 그러므로 이것은 "그러한 [카자르 개종의] 견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31]
하나가 아슈케나지인 4개의 유대인 집단을 사용하여, 코플먼(Kopelman) 등의 연구는 카자르설에 대한 직접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며[32], 또 다른 연구는 그 발견들은 "가장 미심쩍지만 여전히 집요한 가설들 중의 하나가 틀렸음을 밝힌다고 결론지었다. 그 가설이란, 대부분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9세기에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의 지역에서 번성하였던 신비한 카자르 왕국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는 것이다."[33] 어떤 과학자들은 생각하기를, 비록 그 이론이 맞다고 하더라도, "단지 극소수의 카자르인들만이 유대교를 채택하였을 것이다"라고 한다.[34] 또한 그들은 생각하기를,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의 혈통에 카자르의 공헌이 있었는지, 혹은 정확히 몇 퍼센트의 미토콘드리아 변이형이 유럽에서 나오는지의 문제는 현재의 유전학적 지리학적 자료를 사용해서는 확실히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35]
잡지 모멘트(Moment)의 편집자이자 중역 출판인인 나딘 엡스타인(Nadine Epste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아서 쾨스틀러(Arthur Koestler)의 '13번째 부족'을 읽었을 때, 나는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이 카자르인들에게서 기원하였다는 그의 이론을 믿었다... 하지만 1997년, 하이파의 칼 스코렉키(Karl Skorecki in Haifa), 투손의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 in Tucson) 그리고 몇몇 런던 연구가들은 유대인 남성 사제(司祭)계열 즉, 코하님(Kohanim)의 증거를 발견함으로써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아슈케나지 남성들의 절반과, 코하님이라고 주장했던 세파르디 남성들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숫자는, 그들의 Y 염색체에 유전학적 표시들의 독특한 묶음을 가지고 있음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그들이 대략 모세와 아론의 시대인 기원전 1180년과 650년 사이에 살았던 친인척 남성들의 개인 혹은 집단의 후손일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35]
2000년에, 니콜라스 웨이드(Nicholas Wade)의 기록 -'Y염색체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증언한다'는 제목임- 의 분석은 "이러한 [유대인] 공동체들이, 상당한 정도로, 그들의 숙주 개체군과 별도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유전학적 증거를 제공해주는데, 이는 비교적 적은 내혼(內婚) 혹은 유대교로의 개종이 몇 세기 동안 일어났다는 증거이다... 이 결과는 유대인의 역사 및 전통과 부합하며, 유대인 공동체들은 대부분 다른 종교로부터의 개종자들로 이루어진다거나, 그들이 유대교를 채용하였던 중세 터키계 부족인 카자르인들로부터 기원하였다고 주장하는 그러한 이론들을 반박한다."[35]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cibies 작성시간 18.04.22 http://m.cafe.daum.net/sisa-1/dqMu/3029?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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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내사랑천사 작성시간 18.04.22 그냥 소수민족중 하나인 유태인놈들이 경제 패권 차자한 힘으로 자신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네요.
유태인은 그냥 집시처럼 유럽에 흩어져살던 기반이 없던 소수민족이지 윗글처럼 그럴싸한 족속들이 아닙니다.
윗글만 잘봐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네요. -
작성자강촌인 작성시간 18.04.22 툭하면 글 지우는데 지우지 마세요.
투탕카멘의 아버지 "아케나톤"이
태양신 "아텐"을 유일신으로 하고
16계명을 만들었는데
"모세"가 이를 모방하여 일신을
만들고 계명도 10개 만들었지
4갠가 6갠가 아케나톤의 16계명과
일치하지
즉 유대교의 교리란게 다 이집트
지성의 산물이지
이집트 지성은 "수밀"문명에서 왔고
태양신 "아텐"은
"아"는 하나(한아)의 아(我)로 나을
"텐"은 열로 "열다(開)로 혹은 막인 것을 "터다" 인데
뜻은 같은데 음은 교류불가로 후에 ten으로 됨
즉 아텐은 "나을 열다"인데
블렉홀의 전단계로 자신을 태워
이 우주 생명의 고리를 이어지게
하는 점을 신격화 함
모세는 뜻도 모르면서
머리허연 놈만 신격화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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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키왜구믿지말자 작성시간 18.04.22 정리가 잘된 유대족 얘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