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고 단단한 성곽이 능선을 따라서
산으로 기오 올라가는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산을 구름속에 솟아 있는 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서울의 마을들이 주로 산 및에
모여있는 것을 주목 했습니다.
그리고 쌀을 좀 더 많이 재배하기 위해서
넓고 좋은 땅은 농토로 삼았고
집은 비좁은 산 비탈에 잡았다고 분석했습니다.
베버 신부는 한국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하루종일 자연과 함께하다가
석양을 뒤로 하고
말은 미소를 머금은체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고,
자연을 정복하기 보다
그 찬란함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버 신부는 한국의 문화를 존경 했습니다.
독일 민족이 아직 숲에서 뛰어 다닐때 한국은
이미 고도의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 여겼습니다. 그에게 감동을 주었던 한국
'문화' 그 중에 하나는
'효도' 입니다.천년 이상 지속된 유교전통에 따라
복종과 순종 그리고
권위에 대한 인정은 한국인들이 때어나면서
배워오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조상과 어른을 대한
감사와 존경이 삶의 일부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깊은 감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은
그를 사로 잡았습니다.
베베 신부는 한국의 농경 문화에 주목하면서
특히 품앗이 라는 노동 형태에 매료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어디어서도 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공동체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노동을 통해 성숙된
공동체문화' 이는 카톨릭 공동체에 거대한
뿌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베버 신부는 인본의 신민지 폭력성 앞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한국의 공동체 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1925년 금강산 장안사,
6?25 전쟁때 완정히 불에 타 사라지고
지금은 축대, 비석 등만 남아 있다.
1925년 금강산 장안사 승려들의 모습
1925년 금강산 장안사 대웅전
베버 신부일행은 1925년 6월초 약 열흔간의
일정으로 금강산을 여행합니다.
그리고 금강산 장안사의 가람의 배치와
명칭에 대해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화려한 장식을 보고
마치 마법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제단을 덮고 있는 우아한 지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