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 게시판

‘친미’에서 ‘친일’로, 이완용이 나라를 판 대가는 (펌)

작성자파랑새7|작성시간19.08.27|조회수931 목록 댓글 2

출처: https://www.msn.com/ko-kr/news/national/%E2%80%98%EC%B9%9C%EB%AF%B8%E2%80%99%EC%97%90%EC%84%9C-%E2%80%98%EC%B9%9C%EC%9D%BC%E2%80%99%EB%A1%9C-%EC%9D%B4%EC%99%84%EC%9A%A9%EC%9D%B4-%EB%82%98%EB%9D%BC%EB%A5%BC-%ED%8C%90-%EB%8C%80%EA%B0%80%EB%8A%94/ar-BBL9S2k

머니투데이

‘친미’에서 ‘친일’로, 이완용이 나라를 판 대가는

‘친미’에서 ‘친일’로, 이완용이 나라를 판 대가는© MoneyToday ‘친미’에서 ‘친일’로, 이완용이 나라를 판 대가는

을사오적(乙巳五賊)! 1905년 을사늑약에 서명해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도록 한 다섯 명의 대신. 정미칠적(丁未七賊)! 1907년 나라의 법령제정권과 관리임명권 등을 일본에 바치는 한일신협약에 찬성한 일곱 명의 대신. 경술국적(庚戌國賊)! 최종적으로 1910년 일제의 강제병탄 조약에 협조한 여덟 명의 대신.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은 구한말 나라를 망치고 일본에 팔아먹은 매국노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치욕스러운 명단에 모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인물이 있다. 이완용! 그가 매국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악역으로 등장하는 이완익은 바로 그 이완용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캐릭터다.

그런데 이완용의 행적을 뜯어보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그가 원래부터 친일파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에서 이완익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미국을 위해 역관으로 일하다가 전향하여 이토 히로부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와 달리 역사 속 이완용은 뼈대 있는 양반가 출신인데 그 족적은 드라마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이완용은 1882년 증광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규장각 시교와 홍문관 수찬을 지내며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로 떠올랐다. 덕분에 그는 나라에서 설립한 육영공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고 1887년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을 수행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박정양이 종주권을 주장한 청나라와의 외교 갈등으로 귀국하자 임시대리공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890년 귀국한 이완용은 친미파의 선두주자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우부승지, 공조참판 등을 거쳐 1895년에는 박정양 내각에서 학부대신의 자리에 올랐다. 곧이어 을미사변이 일어나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그는 친러파와 공모하여 고종의 아관파천에 관여했다. 물 만난 이완용은 외부대신, 군부대신 등 요직을 맡아 일본을 견제하는 데 앞장섰다.

“조선이 독립하면 미국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되겠지만, 합심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면 구라파의 폴란드처럼 갈가리 찢겨 남의 종이 될 것이다. 세계사에 두 본보기가 있으니 조선은 미국 같이 되기를 바라노라.”

1896년 11월 독립문 정초식에서 독립협회 창립위원장 이완용이 행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그는 독립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나라의 자주독립을 외쳤다. 하지만 독립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인데 그는 외세에 기대는 이율배반으로 일관했다. 미국, 러시아 등 열강에게 이권을 넘기는 등 매국의 조짐이 진즉 싹트고 있었다.

1905년 일본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이완용은 태세전환에 들어갔다. 오매불망 떠받든 미국은 여전히 대한제국에 곁을 내줄 조짐이 없었다. 그는 미국도, 러시아도 다 버리고 조국을 병탄하러 온 이토 히로부미에게 추파를 던졌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을 기꺼이 자임하며 나라를 판 것이다.

오늘날에는 ‘매국노’라는 표현이 널리 통용되지만 당시에는 이런 자를 ‘매국적(賣國賊)’이라고 불렀다. 적은 공격이나 응징의 대상이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의열단은 ‘칠가살(七可殺)’,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부류 가운데 하나로 매국적을 명시했다.

실제로 이완용은 대표적인 암살표적이었다. 1905년 이래 을사오적암살단이 호시탐탐 그를 노렸다.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 당하자 이를 건의한 이완용의 집이 백성들에 의해 불타기도 했다. 1909년에는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에 참석했다가 이재명의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었으나 운 좋게 살아났다.

그렇다면 신변의 위협이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팔아먹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완용의 사례를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판다는 것은 대가를 구하는 행위다. 나라를 파는 ‘매국(賣國)’이라면 어떨까? 위험부담이 큰 만큼 엄청난 대가가 책정된다.

이완용은 1910년 내각총리대신으로 일제의 강제병탄 조약에 서명하고 ‘은사금(恩賜金)’ 15만 원을 하사받았다. 1907년 고종을 억지로 퇴위시키며 한일신협약을 맺을 때도 10만 원을 수령한 바 있다. 금값을 기준으로 현재 가치를 환산해보면 어림잡아 수십억 원이다.

뒤로 받은 돈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구한말의 문인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1905년 을사늑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매수공작금 수백만 원을 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학부대신으로 늑약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이완용의 몫이 적었을 리 없다.

거금을 손에 넣은 그는 지방의 비옥한 논밭을 대거 사들였다. 일제강점기 초에 이완용이 가진 땅은 여의도 면적의 2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 시세에 따라 토지를 잘 팔아서 1920년대에는 경성 최대의 현금부자가 되었다. 세간에서는 현금 보유액만 300만 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는데 요즘으로 치면 수백억 원에 해당한다.

일제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이완용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일본은 강제병탄 직후 한국인 고관대작들에게 귀족 작위를 주었다. 그는 백작이 되었다가 후작으로 승작하여 막대한 특혜를 누렸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과 부의장을 지내며 1926년 사망할 때까지 떵떵거리고 살았다. 어찌 보면 분하고 약 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의 지탄에 남들보다 더 출세하고 더 잘 살려고 한 게 무슨 죄냐고 항변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조선은 쓰러지고 있었고 자신은 외세를 끌어와 부축케 했을 뿐이라며…. 악(惡)은 어떤 의미에서 평범하다. 그것은 뿔 달린 악마처럼 괴이한 존재가 저지르는 게 아니다. 주변에 가득한, 누구나 탐하는 욕망에서 악은 출발한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도 출세지상주의와 물질만능 풍조가 길러낸 괴물이 아니었을까. 남들도 다 그러는데 나 하나쯤, 하는 생각이 ‘삐딱선’을 타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부른다. 살아생전 거머쥔 부와 명예가 컸던 만큼 역사에 새겨진 이완용의 주홍글씨는 더욱 뼈아프다. 역사의 대가는 죽음보다 지독한,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다.



KBS 한국사전 - 독립협회장 이완용,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RF3S7DX2nk


이완용 - 그 친일 행각

출처: http://orumi.egloos.com/3641250


'매국노 이완용'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7가지
출처: https://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38859
2015-11-09 15:30  양원모 기자     


이하 wikipedia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을사오적'을 전부 읊어달라고 해보자. 

'을사오적'이란 1905년 한국의 외교권 박탈이 주 내용이었던 '을사늑약' 체결 당시 조약서에 서명한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 다섯 명을 일컫는다. 

5명 모두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2명만 말해도 대단하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거의 언급한다. 바로 '이완용'이다.   

이완용(1858~1926)은 '친일파', '매국노'의 대명사다. 하다 못해 옆나라 중국에서도 세계의 대표적 매국노로 '이완용'을 꼽았다.  

하지만 그 유명세와 달리 이완용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많다. 

이완용에 대한 의외의 사실 7가지를 소개한다. 


1. 일본어를 전혀 못했다 

 

일본어를 전혀할 줄 몰랐다. 대신 영어는 잘했다. 일본인과 대화할 땐 늘 영어나 통역을 썼다. 이완용은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졸업생이다. 여기서 영어 실력을 키웠다.  


2. 독립문 현판을 썼다 

flickr
 

믿기지 않겠지만,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독립문에 달린 '독립문(獨立門)' 현판을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이완용은 당대 최고의 명필 가운데 한 명이었다. 


3. 대한민국 최초로 의무 교육제를 도입시켰다 

이하 Pixabay
 

1888년 초대 주미공사관(현 주미 한국 대사관) 공사관원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간 그는 자본주의, 민주공화제, 신분 없는 평등 사회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근대적 교육제에 깊이 매료됐다. 이때의 경험이 대한민국에 최초로 의무 교육제를 도입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고 알려졌다. 


4. 전라도가 고향이 아니다 

 

풍문처럼 떠돌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완용은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 백현리(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서 태어났다. 


5.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친미파였다. 주미 공사관 공사관원으로 미국에서 생활한 게 그를 '친미파'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어 '친러(러시아)'파로 변신했다가 러일전쟁(1904~5)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둔 이후 '친일파'가 됐다. 


6. 성균관대학교 대사성(현 총장)을 지냈다 

wikipedia
 


'대사성(大司成)'은 지금의 '총장'같은 위치다. 조선시대 서열 '5위'인 정3품의 벼슬로 성균관을 총괄했다. 다만 조선 말기 대사성의 직위는 급락해 큰 의미가 없는 자리가 됐다. 

7. 관상이 상당히 좋았다
JTBC '이영돈 PD의 논리로 풀다'
 

일설에 따르면 이완용은 관상이 상당히 좋았다. '천재'의 상이었다고 한다. 재물도 많이 모을 팔자였다. 흥미로운 건 그와 정반대의 관상을 가진 동시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다. 한 사람은 친일파가 됐지만, 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됐다. 

3.1절 특집 - 이완용의 3.1 운동 경고문

출처: http://orumi.egloos.com/4680292

by 초록불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뒤에 이완용은 그 악명에 어울리는데로, 3.1운동에 대한 비난과 참여자들에 대한 경고문을 세 차례에 걸쳐서 매일신보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래는 그 전문.

제1차 경고 - 4월 5일

오호, 조선 동포여. 세상 말에 죽음 중에서 삶을 구한다는 말이 있더니 지금에 조선인민은 삶 중에 죽음을 구하니 이 어찌된 일이오. 얼핏 알아듣기 용이하도록 일언을 진하노니 제군은 잠깐 정신을 수습하고 잘 듣기를 바라노라.

독립운동이라는 선동이 허설許說이라 망동이라 하는데 대하여는 각 유지인사의 천언만어가 끊이지 않아도 일향자각치 못하니 근자에 여余(=이완용)가 다시 말해도 제군의 귀에 들어가지 아니할 줄 스스로 의심하여 췌언(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거니와 여余는 반대로 제군에게 일문하노니 조선독립이 작일昨日에 되었다 하는 말인지 일후에 될 희망이 유有하다는 말인지 알지 못하거니와 작일에 독립이 이미 되었다 할지라도 만세삼창한 후는 각기 돌아가 맡은 바 일을 수행할 것이요, 일후에 희망이 있다 할지라도 성사 전에 만세만 호창呼唱하여 과월부지跨月不止(한달이 넘도록 일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킴)하는 것이 무슨 의미리오. 

→ 해석 : 독립이 되든말든 너희 처지는 변하지 않아. 그러니 빨리 포기해라.

처음에 무지몰각한 아동배가 선동하고 그 후에 각 지방에서 역시 소문을 듣고 치안을 방해하는지라 당국에서 즉시에 엄중이 진압하려면 피해가 없겠냐마는 몰각자 부류를 돌아가게 하고 관대한 수단을 사용하여 일차 유고諭告와 이차 유고가 내려와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기자기질其子其姪(어린 것들)이 여전히 몰각한 행동이 있어 일차 효유하고 효유에 따르지 않으면 다음으로 그것을 책責하니 책한 후에 따르지 않으면 필경에 달지초지撻之楚之(매를 들어 때린다)는 어린 것들을 진심으로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어린 것들을 선도코자 함이요, 둘째, 다른 어린 것들에게 오염치 못하게 함이라. 
→ 해석 : 너희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사랑의 매를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빨리 포기해라.

이차 유고에도 따르지 않을 뿐만아니라 관청을 침범하여 난폭한 행동을 하니 당국에서 엄중이 조치함은 부득이한 것이니라. 근일에 모모처에서 듣기로는 많은 인민이 죽고 다쳤다하니 그 죽고 다친 인민 중에는 혹 주창한 자도 있겠지마는 그 다수는 부창부수한 자로 여余는 믿고 있노라. 농사 때가 임박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한 즉 안락이 있을 것이요, 망동을 따라하면 즉 죽고 다침이 목전에 있으니 이것이 바로 삶 중에 죽음을 구함이 아닌가. 자신이 삶 중에 죽음을 구할 뿐아니라 망동함으로 인하여 그 부근에서 횡액으로 죽고 다침에 이르는 자가 많이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눈뜨고 못 볼 일이오, 귀로도 듣지 못 할 일이로다. 
→ 해석 : 사랑의 회초리로는 사살까지 있으니까 빨리 포기해라.

안심하고 진정하라. 한때가 지나면 한때에 해가 있고, 하루가 지나면 하루에 해가 있을지니, 오호, 동포여. 여余의 말을 잘 듣고 일후에 후회치 말지어다. 이번 권고에 대하여 만약 이견이 있는 사람은 본인과 한번 만나 의견을 나누기를 희망하노라.
 
→ 해석 : 불만 있으면 현피 뜨자.

제2차 경고 - 4월 9일

지난번에 본인이 동포에게 경고한 목적은 단순히 인민의 사상이 없게하고자 함이라. 경고문을 열람한 제군 중에 회답함을 본즉 혹은 시세의 언론도 있으며 혹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단지 매국적賣國賊의 말이 이목을 더럽게 한다 하며 혹은 위협의 언어도 있으며 그 중에 혹은 경고의 의미가 유리한 줄로 용인하는 사람도 있으니 오직 원컨대 본인은 성심으로 경고함을 제군이 채납하여 생명의 다수를 구하면 본인의 목적은 가히 도달할지라 고로 다시 지난 말을 되풀이하노라. 
→ 해석 : 내 말을 듣고 정신 차린 사람이 있을 것이니 계속 말하겠다.

본인의 경고에 대하여 여하한 언론이던지 서신이 본인에게 직접 도래하니 마음에 심히 활연豁然하도다. 
→ 해석 : 난 비로그인도 안 막으니 다 달아라. 누가 나보고 벽이래?

소요 당초에는 당국에서도 관대한 수단을 사용할 방책이오 또 조선인 측에서도 인민에 위험함이 없게 조처할 뜻을 당국에 진정하였으나 한 달여 된 금일에 이르러서는 당국에 대하여 다시 용훼容喙할 여지가 없도다. 근일 각 신문지상으로 제군도 이미 살핀 바와 같이 각처의 언론이 더욱 엄중하니 본인도 조선인이라 책임상으로든, 인정상으로든 그 위험이 눈앞에 임박함을 아는 이상에는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음이라. 매국적의 경고라하여 자신의 안위에까지 유관함을 듣지 않는 것은 생각없음이 심하지 않은가. 
→ 해석 : 내가 매국노긴 해도 바른 말을 할 수도 있잖아?

본인은 천만인 중에 몇이라도 유리한 줄로 용인하면 이 경고의 효과가 적지 않다할지로다. 구구한 소망은 일반 동포가 용인하고 안심 진정하여 사상의 화를 피하게 하고자 하는 진심밖에 없음이라. 지성이면 감천이라하니 제군이 느낄 때까지 위협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경고하노라. 
→ 해석 : 누가 뭐라건 난 할 말은 하는 시크한 사나이. 그러니 빨리 포기해라.

제3차 경고 5월 30일

근래 각 지방의 소식을 들은 즉 소요가 점차로 안정한다 하여 혹자는 말하되 군대가 증파되어 그 위력에 기인함이라 하나 제군이 진심으로 지난 잘못과 오늘의 시국을 자각함에 주인함인 줄로 확신하고 상심을 흔쾌함으로 눌러버리노라. 소요 당시 본인의 양차 경고에는 단 조선독립지설이 허망하니 망동하여 생명을 사상하는 화에 스스로 빠지지 말라고 위급함을 구하려는 뜻으로만 설법하였거니와 오늘날 제군이 전 죄를 후회하는 때를 당하였기에 본인은 다시 일언을 진술코자 함은 독립지설이 허망함을 여러 사람에게 확실히 깨닫게 함에 즉 우리 조선민족의 장래 행복을 계획 도모함에 안전케하기를 위함이로다. 
→ 해석 : 봐라, 내가 한 말이 다 맞잖잖아 이제 까불지말고 잘 들어라.

이번 조선독립지설은 구주대전(1차세계대전)의 여파라 하리로다. 최근에 밖에서 수입된 소위 민족자결주의가 조선에 부적당하다는 언론은 본인이 다시 췌언을 하지 않거니와 대저 조선과 일본은 상고 이래로 동종동족同宗同族이며 동종동근同種同根임은 역사에 있는 바이라, 그런 즉 일한병합으로 말하자면 당시에 안으로는 구한국의 사세와 밖으로는 국제관계로 천사만량할지라도 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리하여 동양평화가 확보되는 것이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로 단행됨이요, 또한 지리상으로 말하자면 일한공동의 이해와 공동의 존립을 위하여도 순치보거의 접밀한 관계가 있어 양국이 흥망성쇠를 같이 하자는 정신으로 단행된 것인즉 아무리 세계에 여하한 신주의가 설혹 현실이 된다고 가정하기로 이를 다시 분리하여 양자의 자멸을 스스로 취할 이유는 결코 없으리니 제군은 이에 십분 깨달음 얻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 해석 : 민족자결주의는 개소리고 일본과 우리는 동조동근!

아아, 우리 조선이 국제경쟁이 과격하지 아니하던 시기에도 일국의 독립을 완전히 유지하지 못했음은 제군의 아는 바라, 하물며 오늘날처럼 구주대전으로 인하여 전세계를 개조하려는 시대를 당하였으니 우리가 이만천여 방리에 불과한 강토와 천백여만 정도의 인구로 독립을 높이 외침이 어찌 허망타 아니하리오. 
→ 해석 : 한마디로 조선인 개새끼론.

이는 필시 제군이 세계의 대세는 알지 못하고 단지 평일의 감정이 쌓였다가 풍문을 듣고 일시에 뿜어냄이라, 본인은 제군의 그 정신을 십분 헤아리노라. 제군이여, 다시 냉정한 두뇌로써 우리 조선민족의 장래와 동양평화의 영원한 대계를 깊이 헤아리고 숙고하며 현재 우리의 경우와 실력과 형세의 나아갈 바를 몰각치 말지어다. 만약 혹시 의연히 전후의 이해를 구분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는 도배가 있을지면 그것은 즉 조선민족을 멸망케하며 동양평화를 파괴하라는 우리의 적으로 봄이 마땅하리로다. 
→ 해석 : 힘도 없는 것들은 조용히 자빠져 있는게 현명하다.

본인이 들은 바에 의하면 내지인(일본인)이 항상 말하되 대화민족大和民族은 최후의 일인이 피흘릴 때까지라도 동양평화의 영원한 대계를 변치 아니할 것은 이미 지나간 일국의 존망을 목도하여 진력 교전한 갑오(청일전쟁), 갑신(갑신정변) 양 전역의 의의가 모두 동양평화를 위함에 있다 말하니 제군은 일체의 감정을 버리고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라. 우리 조선인이 동양평화를 위하여 이미 지나간 어느 때에 여하한 노력을 한 바가 있었는가? 동양평화에 대하여 노력한 공적은 고사하고 자국의 보유도 항상 남의 힘에 의지하다가 오히려 동양평화의 겁난을 야기하는 근본의 이유를 만든 역사가 있을 뿐 아니뇨. 제군이여, 이것은 우리가 기피치 못할 사실이라, 고로 본인이 지난번 경고문 중에 어떤 이유로 삶 중에 죽음을 구하고자 하느냐 함은 실은 동양평화의 대이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부지리를 획득코자 하는 자에게 피동하는 무지몽매한 도배에게 경고한 의미가 여기에 있노라. 
→ 해석 : 조선인 개새끼론 2.

상천上天도 이에 동쪽을 돌아보면 공동존립과 공동이해를 위하여 두 땅의 분립을 불허하실지니 우리 조선인은 반드시 일한병합의 의의와 그 정신이 유효케 실현할 방면에 향하여 노력함이 우리의 장래 행복을 도모 계획하는 최산의 양책인 줄을 깊이 믿을지어다.
→ 해석 : 해석이 필요한지?

병합 이후 근 십년에 총독정치의 성적을 보건대 인민이 향유한 복지가 막대함은 내외국인이 공감하는 바이나, 그때로부터 금일까지 방침을 일정불변함에 비하여 제군의 민도는 날로 나아갔으니 그 시종 일관한 방침에 대하여는 제국신민으로써 요구코자할 점이 필히 많았다 하리로다. 즉 제군이 항상 논하는 바, 지방차치의 문제, 참정권, 병역, 교육, 집회, 언론 등의 각 문제가 많으나 이는 제군의 생활과 지식 정도를 따라 정당한 방법으로 요구할진대 동정도 가히 얻을 듯하도다. 
→ 해석 : 일본에게 따지지 말고 구걸해라.

본인의 소신을 기탄없이 개진할지면 실은 당국에서도 수년 내로 연구 중에 있는 안건도 있으나 단 그 시행조치를 행할 시기의 빠르고 늦음이 있을 뿐이라 본인이 결코 당국을 위하여 변호하는 말이 아니라 각 신문 및 잡지 상에 내지인의 여러해 전부터 제군이 요구코자하기 이전보다 언론하여, 여하한 점은 급히 조선인에게 그렇지 아니함이 불가하다고 창도하였음은 제군도 살폈으리로다. 
→ 해석 : 니들이 하는 말은 우리도 다 알고 있으니 조용히 기다려라.

혹자는 일·조선인이 이번 소요를 야기하였으므로 내지인은 이에 따라 조선인 모두에게 반감을 가지리라 말하나 이는 자기의 지난 과거를 고쳐 깨닫는 동시에 나타나는 일상적인 심리이니 제군은 결코 의심하여 걱정할 바가 아니요, 제군의 최급무인 실력을 양성할 뿐이라 하겠노라. 왕왕 내지인 중에도 동양의 영원한 대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폐하의 일시동인一視同人하시는 성지를 망각하고 조선인을 대하면 일본인이 종족 우열한 다름이나 있는 듯이 표하는 태도가 혹 있다하나 제군이여, 우리가 내지인에 비하여 아직 실력의 차이가 없지 않다 못하리니 도량을 크게 하고 저들에게 가급적으로 반성을 촉구하며 이해를 구할 것이요, 결코 일시적인 감정의 부림을 받아 일시동인하시는 성지를 저들과 같이 오해치 말지어다. 
→ 해석 : 3.1운동 때문에 불리해지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천황폐하는 그렇게 쪼잔한 사람이 아니다. '일부' 일본인이 우리를 좀 무시하긴 하지만 그냥 우리는 천황짱만 믿고 가자!

해외에 있는 조선인 중에 혹자는 신정치 이후로 조선내지의 사정에 어두워 반대하는 자가 있어 약간의 금전으로 의외의 행동을 감히 지어내어 우리에게 화를 미치게 하나니 현명한 제군이여, 오늘 이후에 이와 같은 불의의 일이 혹 있을지라도 이번 일을 되돌아보고 십분 근신할 지어다. 제군의 영원한 복지를 증진케하며 전도의 광명을 개척하며 욕망을 도달케 하며 기 원동력은 위에 진술한 바 최급선무인 실력을 양성함에 있으니 제군은 더욱더 노력할지어다. 
→ 해석 : 니들은 현실 문제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이완용

출처: https://namu.wiki/w/%EC%9D%B4%EC%99%84%EC%9A%A9 

  

최근 수정 시각:




[ 펼치기 · 접기 ]
경술국치
이전
작위
수여자
민영린
김성근
민영규
민영소
이근명
이기용
* 이완용
김병익
김사준
김사철
김영철
김춘희
김학진
민상호
민종묵
민형식
박기양
박용대
윤용구
이건하
이근상
이근호
이달용
이봉의
이용원
이용태
이정로
이종건
이주영
정낙용
정한조
조정구
조동윤
조동희
최석민
홍순형
경술국치
이후
작위
수여자

계승자
후작
백작
박찬범
윤의섭
이달용
이덕룡
고희경
이영주
자작
김호규
민병삼
민충식
민형식
민홍기
윤강로
이규원
이창훈
이택주
이충세
이해국
이홍묵
임낙호
조대호
조중수
남작
김교신
김덕한
김세현
김석기
김영수
남장희
민건식
민영욱
민철훈
민태곤
민태윤
박경원
박서양
박승원
성주경
이규환
이기원
이능세
이동훈
이범팔
이병옥
이원호
이인용
이장훈
이중환
이풍한
이항구
장인원
정주영
정천모
조중구
조중헌
최정원
한상기
오등작일제강점기 조선귀족에 공작은 없었으며, 그에 준하는 작위와 관련한 정보는 왕공족
취소선 표시는 작위를 박탈당하거나 거절 및 반납한 사람을 뜻하고, 밑줄 표시는 작위를 반납하려 했는데 일제의 거절으로 반납하지 못한 사람을 뜻함.
※ * 1872년생 이완용(李完鎔)으로 1858년생 이완용(李完用)
※ ** 김가진

1. 개요[편집]

구한말~일제강점기친청, 친미, 친러, 친일 테크를 차례로 거쳐 민족 반역자(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 7조약, 기유각서, 한일병탄조약 체결을 주도하면서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의 3관왕을 달성한 매국노의 훌륭한 표본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서, 국민들로부터 평생까임권

아무리 젊은 시절 명석했던 사람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악행들친일파, 매국노을사오적나치, 아돌프 히틀러

이완용과 동시기에 똑같이 매국노 짓을 한 송병준[7]

2. 생애[편집]

3. 성품[편집]

처세술에 뛰어나고 영민했던 인물이어서 미국인 선교사의사호러스 뉴턴 알렌
이완용? 그는 한마디로 기계 같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영민하지만, 영혼이 없는 것 같은 인물이라는 뜻으로 근대 문물에 관심이 있었고 의외로 검소한 습관을 지향했다고 한다. 낭비가 심하기로 유명한 궁중식단[8]병폐를 비판하고 샌드위치[9]

아이러니하게도 생전 일본어육영공원에서 배웠지만, 서툴러서 미국조선총독부이토 히로부미데라우치 마사타케 같은 일본인등과 대화할 때는 영어를 사용했으며, 정사를 맡을 때도 이토 히로부미일본어[10] 시기에 공교육의 일본어 시간 도입을 추진하고, 가장 교육시간이 많은 과목으로 만들어 일본에서 "이완용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행적과 성격과는 관련 없이 서예

그의 자서전인 <일당기사(一堂紀事)>에 의하면 경북 김천 직지사의 대웅전 및 천왕문[11], 창덕궁독립문 현판의 '獨立門'이라는 글자는 그가 쓴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친일파 연구가 정운현은 "필체는 이완용이 아니라 동농 김가진

하지만 행적 때문에 글씨의 수준과는 별개로 가격은 바닥을 긴다. 물론 그가 원체 명필이었던 까닭에 가치가 아주 없는 건 아니고, 인사동 같은 곳에서도 40~50만원에 가끔씩 거래가 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지 않았다면 최소 수백만원에서 천만원은 했을 글씨라는 말도 된다. 서예는 글씨를 얼마나 잘 썼느냐도 중요하지만, 글쓴이의 인품도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글씨는 그 사람의 성품을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 실제로 안중근[12]김구의 글씨도 수천만원이고, 그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신익희똥값인 셈이다. 같은 원리로 똑같은 역대 조선 임금임에도 세종대왕의 글씨는 부르는 게 값인 반면 연산군

4. 재산과 호의호식[편집]


검약한 습관이 있었다지만, 그런 습관과는 별개로 자신과 자신 일가의 치부에 상당히 열심[14] 민씨 척족 수구파 관료출신인 민영휘친일파로 변신하여 일제강점기

친일인명사전에서 확인된 바로는 이완용의 재산은 당시 돈 300만원으로, 지금 돈으로 450억원 가량 된다.[15] 병탄 이후 벌어들인 돈이 현재 가치로 400억~450억 원이 넘으며, 이는 또한 병탄 전의 자기 일가의 재산에 비해 3배나 늘어난 것이다. 최근 그의 후손들이 땅을 찾는다고 난리법석을 부리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물론 몇몇 개념있는 일부 후손들은 자신의 성을 바꿔가면서까지 이런 땅 찾는 행태에 반대하기도 했다.

게다가 호의호식하던 이완용 일가는 당시에는 굉장한 사치품이던 자동차도 타고 다녔다. 그 시절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고종과 순종에게 아첨을 하기 위해 자신이 타고 다닐 차와 조선 왕실용 어차를 들여왔는데[16] 고종과 순종과 왕실을 위한 어차로는 캐딜락다임러[17]오버랜드[18]를 들여왔고 데라우치 자신은 위슬리[19] 차를 타고 다녔으며 그 외에 이완용과 송병준을 포함한 고관대작들도 뷰익이나 포드쉐보레덕수궁

자동차와 관련해서는 이완용 생전인 1912년에 그의 아들 이항구가 술에 취한 채로 사위 홍운표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지나가던 어린아이의 다리를 부러지게 해 놓고는 배상은커녕 안하무인격으로 무시하는 바람[20] 참고

물려받은 금액이나 은사금으로 받은 금액은 미미하고[21]경기도전라도 일대에 여의도참고), 집을 여러 번 옮긴 부동산 투기2(3천평 남짓)인데, 이는 그의 땅의 0.05% 정도다. 몰수원칙상 그가 받은 은사금과 이자를 고려한 금액만 몰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손들이 소송을 걸어 되찾았고, 이완용의 후손은 그 씨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소송으로 되찾은 땅을 최대한 빨리 팔아버린 뒤 캐나다#

5. 각종 논란[편집]

  •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꾀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정작 대한제국의 근대화 정책이었던 광무개혁
  • 평판이 나빠, 아들 이승구[22]가 요절하자, 이완용이 며느리와 간통해서 그걸 안 아들이 남 보기 부끄럽다고 자살매천야록해당기사
  • 순종 때인 1908년, 이완용은 조선시대에 간신윤원형처럼 '간신'도 있지만 붕당정쟁에 휘말려 역적 취급된 소론, 남인, 북인계 인사들도 있었고,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사람들, 여기에 고종을 시해하려 한 사람들, 세조 때의 이징옥, 광해군북인(대북)의 영수로 인조반정 때 처형된 정인홍최익현박지원, 정약용, 남이노론 음모론
    좌의정(左議政) 서흥 부원군(西興府院君) 한효순(韓孝純, 대북), 영의정(領議政) 정인홍(鄭仁弘, 대북), 좌의정 목내선(睦來善, 탁남)&, 이조 판서(吏曹判書) 문경공(文敬公) 이현일(李玄逸, 영남 남인), 영의정 문충공(文忠公) 이광좌(李光佐, 소론), 영의정 문정공(文貞公) 조태구(趙泰耉, 소론), 좌의정 문충공(文忠公) 조태억(趙泰億, 소론), 좌의정 충간공(忠簡公) 최석항(崔錫恒, 소론), 좌의정 충정공(忠靖公) 유봉휘(柳鳳輝, 소론), 대사헌(大司憲) 김일경(金一鏡, 소론 준론), 병조 참판(兵曹參判) 김중기(金重器), 회인 현감(懷仁縣監) 김도응(金道應), 예조 참판(禮曹參判) 정후겸(鄭厚謙, 영조 때의 외척), 이조 참판(吏曹參判) 김하재(金夏材, 정조를 모독한 노론), 좌승지(左承旨) 안기영(安驥泳), 우부승지(右副承旨) 권정호(權鼎鎬), 부호군(副護軍) 조중호(趙中鎬), 선천 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 김삿갓의 할아버지), 홍문관 시독(弘文館侍讀) 이희화(李喜和), 우의정(右議政) 민암(閔黯, 남인), 형조 판서(刑曹判書) 이의징(李義徵), 대사헌(大司憲) 한세량(韓世良), 승지(承旨) 신치운(申致雲), 절도사(節度使) 이징옥(李澄玉, 계유정난에 반대한 장군), 사옹원 판관(司饔院判官) 원용성(元用星), 감역(監役) 허욱(許煜), 군부 협판(軍部協辦) 이주회(李周會), 이조 참판 이진유(李眞儒), 승지 정해(鄭楷), 예조 참의(禮曹參議) 서종하(徐宗廈), 이조 참의(吏曹參議) 윤성시(尹聖時), 대사헌 박필몽(朴弼夢,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소론 준론), 대사간(大司諫) 이명의(李明誼, 소론 준론), 형조 판서 이사상(李師尙), 이조 참의 윤연(尹), 훈련 대장(訓練大將) 윤취상(尹就商, 소론 준론), 부제학(副提學) 이명언(李明彦), 보덕(輔德) 김중희(金重熙), 함경 감사(咸鏡監司) 권익관(權益寬), 교리(校理) 윤상백(尹尙白), 지평(持平) 윤지(尹志, 나주 궤서사건의 주모자로 소론), 목사(牧使) 이하징(李夏徵, 소론 준론), 동부승지(同副承旨) 유수원(柳壽垣), 대사헌 심악(沈), 판윤(判尹) 박찬신(朴讚新), 포도 대장(捕盜大將) 조동정(趙東鼎), 교리(校理) 이거원(李巨源), 정언(正言) 이명조(李明祚), 경무사(警務使) 권형진(權瀅鎭), 이조 판서 윤휴(尹鑴, 청남), 영의정 윤원형(尹元衡), 지평 이동양(李東讓), 정언(正言) 이범제(李範濟), 현감(縣監) 이공윤(李公胤), 승지 이중술(李重述), 진사(進士) 이하택(李夏宅), 승지 이보욱(李普昱), 승지 김호(金浩), 현감 박필현(朴弼顯, 소론 준론), 병사(兵使) 박태신(朴泰新), 감역(監役) 정권(鄭權), 부수(副率) 조현빈(趙顯彬), 부사(府使) 심유현(沈維賢), 감사(監司) 권첨(權詹,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노론), 이조 참판(吏曹參判) 이사로(李師魯),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垣), 승지 이재화(李在華), 정언 이우화(李宇和), 주서(注書) 권숭(權崇), 이조 참판 김정관(金正觀), 동부승지 김정리(金正履), 감사 정사효(鄭思孝, 이인좌의 난에 가담한 소론), 정언 권집(權䌖), 부사(府使) 김주태(金柱泰), 통제사(統制使) 김윤(金潤), 좌부승지(左副承旨) 채동술(蔡東述), 좌의정 박홍구(朴弘耉), 승지 박홍도(朴弘道).
  • 성균관대학교 홈페이지에 역대 총장 명단[23]컨트롤 + f키를 이용하여 직접 찾아보자. 참고로, 같은 을사오적인 박제순
  • 1984년에 동시대를 다룬 KBS 대하사극 독립문에서는 김진해명성황후
  • 억울하게 이완용과의 관계를 오해받은 사람들로는 같은 집안인 것뿐인 역사학자 이병도는 물론이고, 이완용의 고향이 아닌데 고향으로 잘못 알려진 전라도,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24] 루머의 마지막 피해자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25]아니다.
  • 배짱있고 침착한 인간이었다고 한다. 지인과 함께 마당에 나와있는데 갑자기 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져서 나무가 부러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놀라서 지붕 아래로 뛰어가는데 혼자만 태연하게 있으면서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것도 희귀한 일인데 같은 곳에 2번 떨어지는 건
  • 이덕일은 "이완용이 노론
  • 이완용은 어렸을 당시에 총명했고 똑똑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에초에 민족을 팔아넘길 정도면 똑똑함을 넘어선 머리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이완용이 만약 자신의 능력을 우리 민족을 위해 사용했다면 모를까... 민족을 팔아넘기는 짓에 사용했으니...

6. 관련 어록[편집]

구문공신 이완용은 사후 세계 염라국에 들어갔으니, 염라국의 장래가 걱정된다.[26]
1926년 2월 13일 동아일보, 이완용 사망에 대한 기사(#)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 갔다.
팔지 못할 것[27]아서 누리지 못할 것[28]누린 자[29],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부등켰던 재물은 그만하면 내놓와야지.
- 1926년 동아일보 전면 기사, 이완용의 사망 2일 후
우리는 미국 같은 부강한 근대적 국가를 건설해야지, 남의 나라 노예가 되는 폴란드
해가 아직 바다 속을 떠나지 않았을 때는 온 산이 어둡더니, 하늘로 떠오르니 온 세상이 밝아지는구나.(未離海底千山暗 及到天中萬國明)
- 이완용이 일장기에 써 넣은 글, 송태조 조광윤에게 바치는 영일시를 인용해 일본을 찬양한 구절
이토 히로부미: 甘雨初來霑萬人(감우초래점만인)
단비가 처음 내려 만사람을 적셔주고
모리 타이라이: 咸寧殿上露華新(함녕전상로화신)
함녕전 위에 이슬 빛이 새로워지니
소네 아라스케: 扶桑槿域何論態(부상근역하론태)
부상[30]근역[31]을 어찌 다르다 논하리오
이완용: 兩地一家天下春(양지일가천하춘)
두 땅이 한집을 이루니 천하가 봄이로다
- 1909년 덕수궁 함녕전에서 열린 연회에서 한일합방의 주역들인 통감 이토 히로부미, 궁내대신 모리 타이라이, 부통감 소네 아라스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기승전결 한 줄씩 돌아가며 지은 합작시[32]
오호, 조선 동포여. 세상 말에 죽음 중에서 삶을 구한다는 말이 있더니 지금에 조선인민은 삶 중에 죽음을 구하니 이 어찌된 일이오. 얼핏 알아듣기 용이하도록 일언을 진하노니 제군은 잠깐 정신을 수습하고 잘 듣기를 바라노라.
(중략)
독립운동이라는 선동이 허설許說이라 망동이라 하는데 대하여는 각 유지인사의 천언만어가 끊이지 않아도 일향자각치 못하니 근자에 여余(=이완용)가 다시 말해도 제군의 귀에 들어가지 아니할 줄 스스로 의심하여 췌언(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거니와
(중략)
처음에 무지몰각한 아동배가 선동하고 그 후에 각 지방에서 역시 소문을 듣고 치안을 방해하는지라 당국에서 즉시에 엄중이 진압하려면 피해가 없겠냐마는 몰각자 부류를 돌아가게 하고 관대한 수단을 사용하여 일차 유고諭告와 이차 유고가 내려와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기자기질其子其姪(어린 것들)이 여전히 몰각한 행동이 있어 일차 효유하고 효유에 따르지 않으면 다음으로 그것을 책責하니 책한 후에 따르지 않으면 필경에 달지초지撻之楚之(매를 들어 때린다)는 어린 것들을 진심으로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어린 것들을 선도코자 함이요, 둘째, 다른 어린 것들에게 오염치 못하게 함이라.
이차 유고에도 따르지 않을 뿐만아니라 관청을 침범하여 난폭한 행동을 하니 당국에서 엄중이 조치함은 부득이한 것이니라. 근일에 모모처에서 듣기로는 많은 인민이 죽고 다쳤다하니 그 죽고 다친 인민 중에는 혹 주창한 자도 있겠지마는 그 다수는 부창부수한 자로 여余는 믿고 있노라. 농사 때가 임박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한 즉 안락이 있을 것이요, 망동을 따라하면 즉 죽고 다침이 목전에 있으니 이것이 바로 삶 중에 죽음을 구함이 아닌가. 자신이 삶 중에 죽음을 구할 뿐아니라 망동함으로 인하여 그 부근에서 횡액으로 죽고 다침에 이르는 자가 많이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눈뜨고 못 볼 일이오, 귀로도 듣지 못 할 일이로다.
(이하 생략)
1919년 4월 3.1 운동#

7. 기타[편집]

중국에서도 매국노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중화민국 북경 정부 시절인 1921년, 안직전쟁으로 돤치루이안휘군벌을 몰락시키며 중국의 패권을 잡은 봉천군벌직예군벌장쭤린[33]진윈펑 내각의 사퇴 이후 자신과 친한 교통계의 수장인 량스이우페이푸는 이를 비난하면서 전보를 보내곤 과거 중국의 여러 매국노와 더불어 이완용을 같이 언급하면서 량스이에 대해 욕을 한다.[34]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량스이는 기회를 틈타 내각을 차지했다. 일본 대표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전일 의논한 것을 뒤집었는데 동경에서 주중국 일본 대사에 훈령한 것을 보면 외교부에 일본 차관을 요구토록 하고 일본이 추천한 사람을 쓰게 했다. 량스이는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여론을 고려하지도 않고 있다. 외직 경험도 없는 사람이 제멋대로 일본의 요구를 허락하고 철로를 되찾기 위해 마침내 차관을 일으키고 주미 각 대표가 이에 따르도록 훈령했다. 철로는 일본인 경영으로 귀속토록 하고 수천만 원의 채권을 일으켰다. 역대 내각이 하지 못했던 것을 서슴없이 그가 했다. 지난날 인민들의 통곡이 쌓여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고집스럽게 일을 저질렀다.
국권이 희생되고 운송권이 중단되는 데 어찌 외인을 후대하고 어찌 조국을 원망하지 않겠는가? 량스이는 끼리끼리 무리 짓는 것을 지원하고 조종하며, 외세에 아첨하는 매국으로 이완용, 장방창[35][36]

저렇게 전문에서 언급할 정도면 당대 중국인[37]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충격적인 사실은 이완용배향공신이 되어 최소 5년 간 종묘에 모셔진 대참사가 실제 일어났단 거다. 1928년 5월에 대한제국 시기의 고위 관료와 황실 인사들이 후보 추천과 투표를 거쳐 순종의 배향공신으로 송근수, 김병시, 이경직, 서정순 4인을 정한 후, 순종의 후사였던 황태자 이은[38] 그러나 며칠 후 이왕직 장관인 한창수[39]의 주장에 따라 김병시, 이경직이 보류되고 이완용이 추가되었고[40][41]

정식으로 창씨개명

이렇게 여러가지 의미로 유명하다보니 다른 동명이인대한민국 내에서 배신매국 다른 매국노들은 몰라도 이완용은 이름만 들어도 '아, 그 매국노?'라고 할 정도로 다른 방향# 심지어 컬투쇼 사연 중에는 친구 이름이 이완용, 그것도 한자까지 똑같아 어릴 때부터 고통을 받다가, 옆 반 친구 이름이 하필 이순신이라 둘이 싸우면 선생님이 항상 이순신 편을 들었던 사연도 유명한 일화. 동명이인이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42][43] 결국 이 이완용 후보는 뒤에서 1등으로 낙선했다. 물론 일부 방송 프로그램에 의하면 이름이 같으니 하도 놀림을 받아 해탈한 것인지 그 누구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듯 하다(링크의 마지막 이미지).#

2011년 5월 20일 이완용에 대한 김윤희의 <이완용 평전>이 출판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완용은 '합리적인 근대인'이었기에 ‘충군(忠君)’과 ‘애국’을 위해 용기를 내거나 분노하기보다는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었다. 그로 인해 을사늑약#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근대의 이성을 비판 없이 충실히 따라갔을 때 얼마나 가증스런 역적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바로 이완용과 근대에 대한 진짜 비판을 가하려고 한 것."이라고는 하는데 독자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듯 하다.

2013년 1월 중순경 위키피디아 한국어 버전 이완용 문서에 이완용을 매국노로 평가한 부분을 삭제하고 조선을 근대화시킨 위인이라는 류의 내용을 추가한 지속적인 반달이 행해졌다. (정보없음 부분)

전라북도 부안군에는 이완용을 칭송하는 공덕비해일전라북도천하의 개쌍놈이 됨으로서 이러한 공덕은 사실상 무의미해졌고, 자연스럽게 광복

의외로 관료로서의 이완용과 지식인으로서의 이완용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고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44] 실제로 이완용의 업무 스타일은 해당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실사구시를 내세우며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만약 이완용이 대한제국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인에게 진심으로 증오받고 욕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을사늑약적어도 역적으로 낙인찍힐 일은 없었다.[45] 오히려 그럭저럭한 일생을 보냈고 을사늑약 참여를 거부하거나이토 히로부미 또한 조선 통감이 되지 않고 을사늑약 그 이전에 정계를 은퇴하여 장기적으로 일본의 초대 수상이 되었고 성공한 인생으로 자국인에게 존경받고 유유자적하게 보냈으면 유신 동지인 기도 다카요시, 사카모토 료마, 오쿠보 도시미치의 유신지사로서 일본을 근대화시킨 중립적인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었고 안중근 의사나 이재명

일제강점기화장실 낙서당시 화장실 낙서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이름이 비슷한 이완영'이라고 까이고 있다.

의외로 효자였다고 한다. 공무로 바빴음에도 10리가 넘는 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며 양아버지 이호준을 문안하였고, 이복형[46] 이윤용[47]

8. 대중매체에서[편집]

GTA경성에는 플레이 가능한 3 캐릭 중 하나로 등장했지만[48] 게임 클래스와의 시너지기력 회복김첨지의 인력거를 뺏어 직접 끌고 가는 신세가 되고, 전투에 들어가서 무기를 준비하는데 자꾸 삑사리가 나서 깻잎과 불로초만 들다가 그 와중에 김춘삼[49] 그 다음부터는 기생과 어울릴 수 없게 되는 바람에 빡쳐[50] 악랄한 짓을 벌이다가 등장한 각시탈에게 총을 쏘며 저항하지만 쇠퉁소에 총알이 다 튕겨나가고,[51] 가뜩이나 없는 곳을 계속 가격하는 이크에크샷

GTA 3.1절편에도 최종보스로 재등장하는데 플레이어 캐릭터인 독립운동가가 버튼 액션에 실패하자 마구 패지만, 시간을 넘어 등장한 윤형빈의 주먹에 한방에 뻗는다.

친일파 암살작전을 다룬 영화 암살

네이버 웹툰 스페이스 킹

KBS 드라마 명성황후[52]

영화 덕혜옹주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올랜덤 인물전

다음 웹툰 왕 그리고 황제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다른 방면으로 싹수가 노란 모습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어 남산의 국정원에 다녀와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장모 민자영김구

9. 이야깃거리[편집]

10. 둘러보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최청년청년 | 작성시간 19.08.28 1! 제 의견, 친미파는 친일파와 다름 아니요, 개화파는 일루미나티와 같은 뜻입니다. 김구가 이재명의 총을 압수해서 이재명이 칼로 이완용을 테러했는데, 김구가 이재명이 의사(義士)인줄 못 알아봤다고 총을 빼앗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백범일지"에 썼습니다.
  • 작성자kbsns | 작성시간 19.08.28 우리나라에서 기득권층들 상층권층들은
    거의다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매국노후손들이라고 보면 될것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