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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소련에서 있었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작성자보리밭| 작성시간19.10.29| 조회수97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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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허행민 작성시간19.10.29 중앙일보에 이런 글이... 아쉬운 것이 많은 듯...
  • 작성자 피양박치기 작성시간19.10.29 우에 땅에 가보면...아니 우리 이산가족 사연...아...ㅆㅂ...
  • 답댓글 작성자 피양박치기 작성시간19.10.29 눈물먼저나와 댓글을 못달겟네...
  • 작성자 kbsns 작성시간19.10.29 2차세계대전
    이 대전은 세계대전이라고 하지만
    어찌보면 쏘련과 독일의 전쟁이였고 대격돌이였지요
    주변의 유럽국가들을 모두 집어삼킨 독일은
    그 나라들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군대를 조직하고
    그걸 독일군 휘하에 통일적으로 개편하고
    190개 사단을 들이 밀어 쏘련침공을 개시
    쏘련군은 후퇴 후퇴 또 후퇴하였지요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등지에 까지 후퇴하였고
    거기에서 결사전을 준비하고 포위를 역포위하고
    안팎에서 반격전을 개시하였고
    결국은 독일연합군을 패배시키면서 진격하여
    베를린함락으로 쏘독전쟁의 승리를 가져오지요
    2천만명이 넘는 쏘련군대와 인민들이 희생되였고
    그 피와 눈물의 대가로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였지요
  • 작성자 주원 작성시간19.10.30 당시 레닌그라드는 나치독일과 핀란드군의 포위와 폭격,굶주림,추위로 수백만의 시신이 나뒹굴었다고
    하죠.공식적인 사망자는150만명 이라는데 마침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는 그 도시에서 근 200만명이 죽어나갔다네요.그 혹독한 봉쇄로 식량이 없어 굶어 죽어 가던 와중에도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 음악연주회와 도서관에서 악기연주회와 책을 읽어가며 죽어가는 일이 많았다고 그래서 그들은 인간적 가치를 지키고 끝내 승리했다고 소개했네요.
  • 작성자 주원 작성시간19.10.30 나치독일의 마지막 전투인 베를린 시가전에서도 독일은 끝까지 끈질긴 저항으로 소련군 10만여명이 전사하고
    남은 병력들이 미국,영국군 점령지역으로 가서 거기서 항복합니다.나치독일이 소련에서 행한 엄청난 학살과 잔혹행위로
    보복을 두려워 해 미군,영국군에 투항하러 가는 것.나치가 소련군 300만명도 학대와 굶겨 죽이는데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는 떠들어도 이런 대량의 소련 포로 학살극은 지금까지 서방에서 별 말이 없네요.
    이것은 히틀러의 공산주의와 슬라브인에 대한 증오와 무시도 한몫하고 영국,미국에 소련보다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태도와 연관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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