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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통행세를 공동 사업 형태로 거둘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놓았으나, 현재까지 공개된 정황만 놓고 보면 트럼프의 일방적(혹은 국내정치용) 제안에 가깝다. 백악관 대변인은 같은 날 “통행세를 포함한 어떤 제한도 없이 해협을 즉각 재개방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사실상 거리를 뒀고, 이란 측 공개 발언은 ‘미국과의 공동 징수’가 아니라 ‘이란의 통제·승인’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백악관과 이란, 모두 트럼프 구상과 거리
로이터는 4월 8일 백악관 브리핑을 전하며,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이 “통행세든 다른 형태든 어떤 제한도 없이 재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와중에 트럼프가 “미국과 이란이 공동으로 통행세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레빗은 누가 해협을 통제하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했다. 정책으로는 통행세는 없다고 못 박아놓고, 대통령이 별안간 공동으로 돈을 걷자고 말을 바꾼 것이다.
미국 내에서 이 발언은 정부 공식 방침이라기보다 트럼프가 즉석에서 던진 '아무말 대잔치'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미외교협회(CFR)도 트럼프가 ABC 기자에게 해협을 미국과 이란의 합작 사업처럼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곧이어 백악관 대변인이 ‘통행세 없는 재개방’을 강조했다고 정리했다. 즉, 대통령의 허언에 백악관이 서둘러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반면 이란 측에서 공개적으로 부각되는 메시지는 ‘미국과 함께 돈을 걷자’가 아니라, ① 해협 통과는 이란과의 조율이 전제, ② 미국의 공격 중단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중단 같은 정치·군사 조건이 달려 있다. 유로뉴스는 이란 측 인사가 “미국이 중동에서 공격을 끝내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격을 멈추면 국제 규범과 국제법에 따라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말한 ‘공동 수익사업’과는 결이 한참 다르다.
현장 운항 조건도 ‘공동 관리’보다 혁명수비대와의 사전 조정에 가깝다. ABC뉴스는 이란 측 공지를 인용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은 혁명수비대 해군과 조율해야 하며 기뢰 위험을 피하기 위한 대체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행료가 있든 없든, 이제 배가 지나가려면 이란 군사조직의 ‘허가’부터 받아야 하는 쪽으로 판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국제법도, 지리적 조건도 ‘공동 징수’에 불리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공동 징수’는 성립 조건이 불분명하다. 호르무즈해협 남쪽 연안에는 오만이 있다. 그런데 유로뉴스에 따르면 오만 교통장관은 호르무즈해협은 자연 통로이므로 국제협정상 수수료를 부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만이 통행료 부과 자체에 선을 긋는 상황에서, 이란과 오만의 공동 징수는 불투명하다. 하물며 미국이 징수 주체로 참여할 여지는 더 좁다.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시각에서도 통행세 구상은 취약하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국제해협 통과에 통행료를 도입할 수 있다는 국제적 합의는 없으며, 이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통행세 자체의 합법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여기에 미국이 ‘공동 징수’ 주체로 들어서겠다는 트럼프의 망언은 더욱 논란을 키울 수밖에 없다. AP도 통행세가 ‘평화적 항행의 자유’라는 오래된 원칙과 충돌한다고 짚었다. AP는 이란과 미국이 유엔해양법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관습국제법상 국제해협 통과권은 여전히 인정된다는 법조계와 학계의 견해를 전했다. 트럼프 구상은 이란의 동의를 얻는 문제를 넘어, 국제규범과도 정면으로 부딪힌다.
현장에서는 통행세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선박 중개인과 브로커들의 말을 인용해, 이란이 비용을 암호화폐나 위안화로 받는 것은 제재를 우회할 결제 경로를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로이터가 선박 데이터를 토대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은 평소의 10% 이하로 줄었고, 이란은 라라크섬 주변 자국 연안 항로로 선박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고, 이에 대응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상황이 굳어지면 통행세의 유무 관계없이 세계는 유가와 물가 압박, 생필품 공급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고통받는 국가 목록에는 당연히 미국도 포함된다.
통행세 논란만으로는 사태 본질을 설명할 수 없어
통행세의 불법성만 앞세우는 접근은 사태의 핵심을 가릴 수 있다. 그보다 앞선 문제는 미군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민간인 희생과 기반시설 파괴, 제재 강화라는 참상을 먼저 낳았고, 그 결과 해협 자체가 협상의 지렛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통행세 논란만 부각되면 전쟁 책임과 배상 문제는 뒤로 밀리고, ‘해협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군사적 재개입의 길만 다시 열릴 수 있다.
이번 전쟁은 ‘비확산’의 이름으로 포장됐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이스라엘이 약 9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핵 보유를 공식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핵 모호성’ 정책을 유지해 왔다는 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상 비핵보유국으로 가입·비준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체계 아래에 있다. 핵을 가진 이스라엘은 예외로 두고, 비핵보유국인 이란을 폭격하면서 비확산을 내세우는 이중잣대는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호르무즈가 드러낸 미국 패권의 균열
결국 트럼프의 ‘미국-이란 공동 통행세’ 구상은 현실성도, 정책 일관성도, 국제법적 근거도 빈약하다. 트럼프는 ‘통행세 없는 즉각 재개방’을 말하면서도 곧바로 ‘미국과 이란의 합작 통행세’ 같은 구상을 흘렸다. 이런 오락가락은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번 전쟁이 미국에 남긴 전략적 변화, 곧 호르무즈의 실질적 통제력이 더 이상 워싱턴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숨기려는 말장난에 가깝다. 로이터는 전쟁 이후 이란이 해협 통과 여부와 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위치에 섰다고 전했다. ‘항행의 자유’라는 구호를 실제로 관철하려면 강제력이 필요하지만, 그 강제력은 곧 또 다른 침공과 확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다.
이번 사태는 1956년 수에즈 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력으로 이집트를 압박했지만 끝내 철수했고, 그 뒤에는 파운드화 위기와 국제통화기금 지원이라는 경제적 굴욕이 뒤따랐다. 어제의 수에즈가 영국의 중동 패권이 더는 유지될 수 없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면, 오늘의 호르무즈는 전쟁으로도 미국의 중동 패권 몰락을 되돌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 될 것이다.
더 큰 균열은 패트로달러, 곧 달러 중심의 에너지 결제와 금융 질서에서 나타난다. 알자지라는 세계 원유 거래의 상당 부분이 달러로 결제돼 왔고, 미국이 이 지위를 제재와 금융망을 통해 ‘폭력’처럼 활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호르무즈 국면에서 이란이 위안화 결제를 밀어붙이는 흐름을 ‘달러 패권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해석했다. 포춘도 1970년대 이후 미국이 걸프 왕정국가들에 안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달러 중심 결제 질서를 유지하면서 달러 우위가 굳어졌다고 짚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그 질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통행세 액수가 아니다. 전쟁과 제재가 에너지 결제와 보험, 운임에서 달러를 대체할 수단을 찾도록 세계를 떠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트럼프가 말을 바꿔가며 “합작 통행세” 같은 환상을 던져도, 미국의 선택지는 좁다. ① 군사력으로 ‘자유항행’을 다시 강제하면 또 다른 침공이 되는데, 그 전쟁의 대가를 감당하기 어렵고, ② 제재로 결제를 틀어막으면 탈달러화를 촉진하며, ③ 협상에 나서면 이란의 영향력과 새로운 중동질서를 사실상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이는 1956년 수에즈에서 영국이 결국 철수를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미국 역시 중동에서의 영향력 축소와 달러 특권의 잠식을 관리할 수는 있어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제국주의 전쟁이 오히려 제국의 기반을 갉아먹는다는 오래된 역설이 지금 호르무즈에서 재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