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승기 박사의 손녀 리옥 교수
<연재> 정창현의 ‘북녘 여성을 만나다’ (11)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06.06 10:05:44
리옥 교수의 할아버지인 리승기 박사(1905~1996)는 북에서 ‘비날론 박사’라 불리며 ‘의복혁명’을 주도했던 세계적인 화학자였다. 리 박사는 전라남도 담양 출신으로,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교토대학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하고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합성섬유 1호’인 비날론을 발명했다. 그는 광복 후 서울대 공대 학장을 지내다 6.25전쟁 때 월북해 과학원의 화학연구소장과 함흥분원장을 지내며 노력영웅, 인민과학자 등의 칭호를 받는 등 최고 과학자의 예우를 받았다. 그가 월북할 때 상황을 강호제 박사의 연구를 통해 재구성해 보자.
1947년 어느 날,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국대안)’ 파동으로 인해 경성대학 교수직을 던지고 고향인 전남 담양에 내려와 있던 리승기에게 북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리 선생, 이번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생과 같이 유능한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후학 양성에도 힘쓰지 못하고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제 능력과 신망이 이 정도뿐인 것을….”
“리 선생, 그래도 계속 이곳에 남아 계실 겁니까? 북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편안하게 연구하면서 제자를 길러냅시다. 그리고 선생이 개발한 비날론을 공업화해서 우리 인민들이 따뜻하고 예쁜 옷을 부족함 없이 맘껏 입을 수 있게 만들어 줍시다.”
“저를 높이 평가하여 이런 큰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는 여기서 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제자들이 이곳 담양으로 내려와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연락도 받았습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제자가 아직 많습니다. 게다가 제 식구들이 모두 이곳에 있습니다.”
“그래도 과학기술을 홀대하면서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미군정을 어떻게 믿습니까? 우리 북에서는 인민위원회 차원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갑시다.”
“북도 남도 모두 제 조국입니다. 여기서도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일들이 많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벌여놓은 일들도 아직 많습니다. 제가 갈 생각이었으면 저번에 려경구(화학자로 몽양 여운형 선생의 5촌 조카) 선생이 올라갈 때 벌써 따라 나섰겠지요. 미안합니다.”
“리 선생, 우리는 선생의 재능과 이상을 높이 삽니다. 그리고 선생의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조선이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선생의 식솔은 물론 제자들도 함께 오세요. 과학기술적 재능을 가지고 우리와 이상이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누구라도 환영입니다. 여건이 안 되는 이곳에서 선생과 제자들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합시다.”
“미안합니다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생각을 충분히 해보시되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들어 드릴테니….”
1945년 해방 당시 남북을 통틀어 대학을 졸업한 고급 과학기술자는 400여 명 밖에 되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이북에 남아 있던 고급 과학기술자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1946년 10월 김일성대학이 문을 연 후 북한은 남쪽의 과학자를 초청하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1947년에는 흥남화학공업대학을 새로 설립하기까지 했다. 이 대학의 초기 교수진 중 상당수는 월북 과학기술자로 채워졌다.
당연히 리승기 박사도 주요 초청 대상 중의 한 명이었다. 1946년부터 시작된 북한의 집요한 초청에도 계속 거부하던 리승기 박사는 결국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에 서울에서 남으로 피난 가지 않고 월북 대열에 끼었다. 게다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까지 함께 데리고 월북했다. 강호제 박사는 “‘리승기 세력’의 월북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학공업 분야의 최고 엘리트 과학기술 집단의 월북은 일제가 건설해두었던 각종 화학공업 설비들을 제대로 가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리승기 박사를 특별대우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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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패망 직후의 한국사회에서 당시 지식인들이
남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당시 지식인 엘리트들은 사실상 무슨 자본주의니,
또는 사회주의니 하는 정치적 이념에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어쩌면 민족주의에 더 큰 관심이 있었을런지도 모를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