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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1.24 할머니는 옛 이야기를 하는 도중 목소리를 낮췄다. ‘따님을 좀 만날 수 있느냐’고 기자가 묻자,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대며 ‘쉿!’ 하며 조심스러워 했다. 오래된 집이라 자물쇠가 고장나 문이 자연스레 열리곤 한다. 그녀는 바로 옆방에 있는 딸 미란(47)이 들을까봐 방문을 다시 걸어 잠그곤했다.
“어릴 때 앓은 병도 다 나아 국제기구에 취직했고 루마니아 사람과 결혼까지 했어요. 하지만 딸 아이의 상처가 여전히 깊어요. 공부를 잘했는데도 아버지가 없어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했고, 늘 차별대우를 받았죠. 저도 지금 연금혜택도 못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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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1.24 딸은 요즘도 아버지 이야기, 코리아라는 말만 나오면 그게 남한이든 북한이든 싫어하고 사람이 찾아와도 만나지 않으려 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9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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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은 당시 국제결혼에 부정적이었던 루마니아와 북한 정부의 허가를 받아 1957년 4월 12일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함께 평양으로 이주해 그 사이에 태어난 딸 미란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http://yanbianforum.com/board.html?include=&mode=view&id=76438&lc=&sc=&mc=&gid=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