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하봉호의 북한 방문기①이데올로기 넘어 같은 한국 사람들
두만강 건너 도달한 동토의 땅
입력일자: 2014-01-10 (금)
민간인이 밟아본 북한땅,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지난 9월 북한 나진 지역에 건립된 동명 유치원 개원식에 참가하기 위해 5박6일 동안 북한 땅을 밟고 온 하봉호(퀸즈 거주)씨의 북한 방문기를 통해 알아본다.
북조선에서 마련한 중국산 밴을 원정리세관에서 타고 북측 여행사 안내원의 환영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교육, 거주, 의료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도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발전의 길목에 서있습니다”라고 자랑하던 북한 안내원은 가동이 중단된 나선 정유공장을 지나가다가 “미국의 횡포로 석유를 수입 못하여, 북조선 전체 소비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연간 30만 배럴의 생산규모의 정유공장이 멈추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자동차 운행과 전력 사용 등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안내원은 일행에게 우리가 현재 우리나라 최북단인 교통과 지리적 요충지인 나선지역에 있다며 기억이 가물거리는 50년 전에 공부한 지리를 복습시킨다. 들판에는 잘 자란 옥수수, 벼 등 농작물이 눈앞에 들어왔다. 가난한 나라선 흔히 보이는 노상 거지나, 동냥하는 아이들,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실직자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볼 수 없었다.
나진 동명유치원
약 1 시간의 지리공부를 끝내자 우리의 목적지인 나진시 동명유치원을 방문 할 수 있었다. 뉴저지 메이플우드 성당이 주축이 되어 건축한 유치원은 콘크리트로 견고하고 웅장하게 세워진 3층 건물로 약350명의 유치원생이 다니고 있었다. 유치원생은 낮은(만4살)반과 높은(만5살)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각 교실에는 학업실, 세면실과 취침실이 있었으며, 취침실의 침상은 이층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각층에 12개의 침상이 있어 24명이 어린이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세면실은 커다란 유리가 있어 교실에서 선생님이 세면실을 처다 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세면실에는 4개의 세면대와 1개의 수세식 용변기가 구석에 있었으며 24명을 위한 욕실용 슬리퍼가 있었는데 전부 중국제품이었다. 어린이들은 아침에 유치원에 와서 교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교실로 들어와 학습을 하고, 점심식사를 한 후 낮잠을 자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하는데, 이때 선생님들은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유심히 보아서 음악, 체조, 미술 등에 소질이 뛰어난 학생을 발굴하여, 각자의 개성을 살려, 가야금, 바이올린, 피아노, 체조, 노래 등의 특별반을 구성하여 개인지도를 하고 있었다.
또한 강당에서는 유치원을 설립하고 멀리 미국에서 찾아온 우리 일행을 위한 공연이 있었는데 4살, 5살짜리 아이들의 가야금, 드럼, 장구, 피아노, 연주와 연주기법, 무대의 입장과 퇴장 등이 너무나 세련되어서 일행 모두는 감탄의 박수를 치며 격려하여 주었다. 5살짜리 아이가 피아노 체르니 50번을 쳐서 놀라기도 하였으며, 한 어린이는 빠진 이빨을 보여 가며 활짝 웃음을 띠고 가야금을 연주하는데 키가 작아 버팀목을 놓고 올라가기도 하였다.
아이들의 연주가 끝나자 점심시간이라 우리는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약 200명이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은 식탁 하나에 10명의 어린이가 앉아 같이 식사를 하였다. 식사는 밥과 5개의 반찬(달걀, 생선튀김, 김치, 빵, 오징어무침)과 국이 있었다. 식당에서 나오다 내 손녀처럼 귀엽게 생긴 아이가 있어 몇 살인가 물으니, 아무 대답이 없다. 그래도 아이들과 말을 하고 싶어 자꾸 물으니, 내가 한심하다는 듯 “복도에서는 조용히”라며 예쁜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함께 이야기하면 소란하니 통제를 위하여 나온 동명유치원의 규율이었다.
우리는 유치원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었으나, 식사 후 낮잠 자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원장선생과 작별 인사를 한 후 동명유치원을 떠났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선생님들 그리고 운동장에서 만난 놀이터를 만드는 목수…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같은 얼굴에 같은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에게 아무 사상도 체제도 느끼지 못하였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확신밖에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십자가도 없었다.
▲ 식단은 생선튀김, 삶은 계란, 오징어무침, 김치, 빵, 된장국. 나이에 비해 밥의 양이 많은 것 같은데 모두 깨끗이 비운다. 같이 먹고 싶었는데 안내원이 말려서 아쉬웠다.
http://ny.koreatimes.com/article/83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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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하봉호의 북한 방문기 (2)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상 ‘장마당’
‘장마당’ 수입은 개인재산 인정
북적 거리는 남대문 시장 흡사
Published: 2014-01-17 (Fri)
■고려 은행 앞에서 안내원을 기다리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어린이들을 뒤로 하고 유치원을 떠났다. 미국 동포들의 힘으로 세운 유치원도 중요했지만 지금부터 찾아갈 장마당도 내겐 참으로 궁금한 곳이었다. 7명의 일행은 두 명의 북측 안내원과 함께 나진시 장마당으로 향하기 위해 밴에 올랐다.
차에 오르자마자 안내원은 다시 한 번 금기사항을 말한다. “조국의 산천은 무엇이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나 북한주민은 찍지 마세요,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안 되니까요. 그리고 장마당에서는 소지품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소매치기 등 좀도둑이 있습니다. 귀중품은 차에 두고 내리세요, 특별히 장마당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입니다”라고 했다.
열심히 금기 사항을 말하던 안내원이 장마당에 가는 도중에 갑자기 자신의 카드에 돈을 좀 넣어야겠다고 하며 우리 일행의 양해를 구했다. 우리 일행을 다 데리고 개인 업무를 보기위해 은행을 가다니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우린 모두 흔쾌히 괜찮다고 말했다.
밴 차량은 나진시 중심가에 있는 은행에 잠시 들렸다. 고려은행이란 간판 아래 차가 멈추었다.오후 두시, 나진의 중심가였지만 거리는 무척 한산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직장에 있고 학생들은 아직 학교에 있는 시간인지라 할 일없이 다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안내원은 개인의 일을 위하여 일행을 차속에 잠시 있으라며 은행을 다녀왔다. 북한에는 고려카드라는 직불카드 (데빗카드) 제도가 있어 은행에 돈을 넣고 그 한도 만큼 돈을 사용한다고 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크레딧을 미리 인정하여 사용하는 후불카드 제도는 없기 때문이었다.
■ 장마당의 중요성
북한 시장(市場)은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국영상점과 개개인이 자릿세를 내고 운영하는 장마당이란 형태가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으로 약 3백여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배급제도는 무너지고 생산은 중단되었으며 유통제도도 마비되었다.
식량난 이후 북한의 시장은 암시장 형태로 바뀌었으며 모든 필요 제품이 중국 상인, 조선족 보따리 장사꾼들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했다. 외국 밀수품은 물론 북한 내에서도 몰래 빼돌린 완제품과 원자재가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암시장 확산을 막지 못한 북한 당국은 장마당을 양성화함으로써 암시장을 막는다는 정책을 세운다.
북한 당국은 장마당의 판매 품목, 가격, 운영시간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일부 특정 공산품은 국영상점에서만 판매하게 하는 등 장마당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심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에서 발생하는 수입은 개인 재산으로 인정이 되어서 인지 장마당은 계속 번성하였다. 이러한 파란만장한 흐름 속에서 최근 장마당은 배달식 장사를 도입하기도하고 옷가게에는 탈의실을 만들어 옷을 입어보고 살 수 있게 하는 등 고객 서비스가 강화됨으로 북한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상, 장마당
장마당은 생각보다 질서가 있고 깨끗하였다.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와 간단한 먹을거리나 팔고 있을 줄 알았던 내 예상은 완전히 어긋났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무질서한 재래시장을 몇 년 전 보았던 나는 나진 장마당을 보면서 내 선입견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수한 중국 상품들이었다.
약 95%의 공장 제조 물품은 중국산이었다. 장마당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으며 활기에 차 있었고 크기는 약 만평정도였다. 우리는 인파에 밀려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아무 의식 없이 서로 부딪히며 밀고하는 모습은 서울의 출퇴근 시간을 연상시켰다. 우리 일행들이 자칫 인파에 섞여 헤어질 것을 염려하는 안내원을 위해서라도 눈에 잘 보이는 하얀색의 모자를 구입하였다.
“이 모자 얼마인가요?”라고 물으니 “30원($5.00)입네다”라고 답을 하는데 이는 북한 돈이 아니고 중국 돈으로 30위안을 뜻하였다. 하얀 모자를 머리에 쓰고 나니 인파 속에서도 좀 더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부터 우린 좀 더 본격적인 눈요기 샤핑에 들어갔다. 양말 한 켤레를 5원(80센트)에 구입하고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 모자, 유치원생에게 선물할 과자 등을 샀는데 구입 제품은 모두 중국산이었고, 가격에 비교하여 품질은 좋았다.
잠시 지나다 보니 유독 사람들이 많이 북적거리는 곳이 눈에 띄었다. 역시 먹거리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인간의 식욕을 자극하는 장사가 최고인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떡볶이 파는 집의 인기는 높았다.
■ 통용화폐는 중국 인민폐
장마당은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슬레이트 건물에 의해 실내와 실외로 나누어져 있었다. 실내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매표소 같은 환전소가 있었으나 외국돈을 북한 돈으로 환전하는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장마당에서의 통용 화폐가 중국 돈이었기에 환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품을 구매하는 북한 주민이나, 판매하는 점포 주인이나 중국 돈을 아무런 부담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남대문 시장에서는 버터, 커피, 샴푸, 식료품 깡통 등 미제 물건은 많았으나 그래도 통용화폐는 한국 돈이었다. 이곳 나진은 확연하게 중국 의존도가 높아 보여 이미 중국의 경제식민지가 되지 않았나 걱정되었다.
장마당에는 시장경제를 통하여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겠다는 가게 주인들의 근면성과, 잘 살아 보겠다는 인간적인 욕구가 보였으며, 점포 주인들의 고객에 대한 웃음과 친절은 서울 남대문 시장과 같았다, 장마당이 북한 경제 개방의 물꼬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일행은 숙소인 동명산 호텔로 이동하였다.
http://ny.koreatimesus.com/article/833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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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하봉호의 북한 방문기③라선 특별시
김일성은 ‘인민의 태양’ 거대한 초상 만들어 숭배
라진과 선봉지역 통합 라선특별시로 바뀌어
입력일자: 2014-01-24 (금)
■잊을 수 없는 김치 맛
식사는 여행사에서 직영하는 식당을 이용하였다. 커피를 제외한 모든 음식에 일행은 대 만족하였다. 특히 김치는 천하일품이었다. 바다 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공기 속에 자란 배추로 담은 김치는 원래 유명하단다. 우리가 평소 먹어왔던 김치보다 양념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시원하고 달콤한 배추 맛 자체로 일행은 김치에 푹 빠졌다. 매 식사 때마다 흰밥, 국, 생선튀김, 야채 샐러드가 기본으로 나왔으며 빵, 맥주, 커피가 항상 부수적으로 식탁에 올라 있었다.
■ 하이힐 신은 여성들이 도로 포장 공사
라선시 도심에서 자동차로 약 15분을 나가니 바로 비포장도로였으며, 청진시에서는 도심에서 약 5분을 지나가니 비포장도로였다. 이 비포장도로를 잘 가꾸기 위하여 수많은 여성이 동원되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도로공사 하는 여성들이 작업 신발이 아닌 하이힐 구두를 신고 있었다. 하이힐의 검정구두는 북한여성의 유행으로 과반수 이상의 여성이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http://ny.koreatimes.com/article/83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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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하봉호의 북한 방문기 (4) 청진시
화려한 영광 뒤로한 만경봉호 쓸쓸히 관광객 맞아
북한 최대 중공업 도시...평양.함흥이어 세번째로 커
입력일자: 2014-01-31 (금)
http://ny.koreatimes.com/article/83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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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하봉호의 북한방문기 (5) 칠보산.경성
자연이 빚은 예술품. 역사 유적지 체험 ‘감동’
입력일자: 2014-02-07 (금)
http://ny.koreatimes.com/article/837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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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하봉호의 북한 방문기 (6) 북한의 결혼 풍속
입력일자: 2014-02-14 (금)
안내원에 의하면 북한 여성에게 인기 있는 1등 신랑감의 세 가지 필수조건은 대학과 군대를 마친 공산당원이란다. 자신도 대학 군대를 필한 공산당원으로 일등 신랑감이였음을 은근히 과시하며 군복무가 의무사항이 아니고 자원입대로 바뀌었지만 사회 분위기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고는 출세를 할 수 없어서 대부분 10년 이상의 군복무를 지원한다고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 또한 자녀양육의 부담 때문에 저출산이 예상되고 있어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3명의 자녀를 둔 가정에는 특별 포상을 하고 주택도 무상으로 제공한다고 한다. 또한 여성들을 육아 부담에서 해방시키고 여성권리의 향상을 위하여 남녀평등과 어린이 보육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였으며 탁아소, 보육원, 공동세탁소, 밥공장, 반찬공장, 된장공장, 간장공장, 무상치료소, 산원 등을 설립하였다며 자랑하였다. 산모는 아이의 출산을 전후하여 150일간의 유급 휴가를 주고 휴가가 끝나면 직장 부근의 탁아소에 자녀를 맡기도록 하고 있다.
■라선시 해안공원
맛있는 원두커피를 마신 일행 한명이 카메라 용량이 모자라 호텔 옆 전자상품을 파는 상점에 들렀다. 이곳에는 Dell, HP, Acer등 미국에서 흔히 보는 상표의 컴퓨터와 가라오케 등이 있었는데 거의 모든 전자제품은 중국 상품이었으며, 반갑게도 한글로 된 “산울림”이라는 상표의 이동식 화면 반주기(가라오케)가 보여 자세히 보니 뒷면에 조그마한 글씨로 Made in China라는 표시가 있었다. 이곳에 언젠가는 삼성, LG의 전자제품과 태진의 노래방 기계가 진열되길 기대하며 메모리칩을 구입한 일행은 동해 바다가 보이는 해안공원으로 향하였다.
화창한 날씨의 일요일이라 그런지 공원은 아이들로 가득하였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에 아이들이 넘쳤다. 공원의 한쪽엔 대형스크린에서 만화 영화도 상영되고 있었다.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미끄럼틀과 공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십여 쌍의 신혼부부들이 있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신부와 양복 정장의 신랑 가슴에는 꽃과 김일성 뱃지가 각각 달려 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는 신랑 옆에 수줍어하는 신부와 들러리로 따라온 신부 친구가 신부의 옷단장을 도와주고 있었으며 사진사는 열심히 신랑 신부를 촬영하고 있었다. 어린이들과 신혼부부들로 가득한 라선 해안공원의 일요일은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했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air22 작성시간 14.02.15 ㅋㅋ 국유, 협동, 사유영리, 대외무역, 포함된 사회주의사회 안에서 공급시스템과 제한된 시장교환의 결합은 당연...이 냥반은 인민폐 유통 하나에 우려인지 저주인지는 몰겄지만 자신있게 거품무는 것보니 안드로메다에서 날아온 사회주의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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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코스모스 작성시간 14.02.15 사회주의가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 북한이 언제부터 부익부,빈익빈인지,...저 번에 평양에 부동산 투기 붐이 일고 있더란 흰소리와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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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놔 키스트 작성시간 14.02.15 장마당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산 경공업 제품들
미국과 한국 유럽 일본의 경공업 제품 거의다 중국산이죠.
전세계가 세계의공장 중국에서 생산된 경공업제품들을 사용하고있으며
특히 한국과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이 중지되면 모든 일상생활이 중지될 지경입니다.
북조선 장마당 중국산 제품은 오히려 자연스러운일이죠,...^^: -
답댓글 작성자아놔 키스트 작성시간 14.02.15 하봉호님이 세계경제에대해 약간 어두우신 모양입니다.
북조선 장마당의 중국산 경공업제품을 두고 매우 안타까운 심경을 밝힌것같은데
뭔가 착각하신것 같네요. -
작성자서흥남 작성시간 14.02.15 깜빡 깜빡하고 사는데, 가끔 흰소리 하는 사람도 있어야..
뭘~ 깜빡거리는지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