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內 탈북자가족, 逆으로 남한가족에 생계비 송금 - 한국에 있는 동생이 "생계 어렵다"하자 세 달에 한 번 1만 위안 송금한 북한 자매들
작성자정론직필 작성시간14.08.26 조회수1626 댓글 9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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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음사이 작성시간14.08.27 눈이 번쩍 띄는 뉴스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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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한 젊은 여성들의 생활상은 참 안 쓰럽습니다.
제가 아는 하나원 ***기수에 잘 아는 분한테 물어봤어요.
젊은 애들 어떻게 사냐고.
자기가 알고 있는 여자들 대부분이 노래방 도우미나 룸싸롱, 또는 시골 읍 지역의 '휴게소(요게 바로 옛날 티켓다방입니다) 종사하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며 한숨을 짓습니다.
거기 나가면 한달에 250에서 300까지 벌수 있다네요.
그런 '몸 파는 업소'에 안 나가는
젊은 탈북 여성들의 생활은 밥 세끼 먹을 정도입니다.
저금이나 적금은 생각하기 힘들구요.(그래도 제가 아는 20초반 남매는 저금 열심히 해요.) -
작성자 이음사이 작성시간14.08.27 4~5년 전(2009년 중반 경) 일입니다.
브로커라고 하죠. 북한에 있는 가족이나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 하는 사람들.
북한 내부에까지 점조직을 가지고 있는 진정한 브로커는 한국에 5명 정도인데
그 중에 한 명을 제가 알아요.
한국에 먼저 와 있는 가족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오려고 연락을 하면
열에 여덟 명 정도는 안 오겠다고 한답니다.
물론
안 오겠다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거기서도 먹고 살만하다든가
여기서 송금을 해주니까 그 돈으로 버틴다든가
가난해도 고향땅이라 뜨기 싫다든가
남편 무덤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든가
오다가 잡힐까봐 두렵다든가
여러 이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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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음사이 작성시간14.08.27 제가 아는 20초반의 자매
고향에 언니 가 둘 있는데
30대 초반과 중반쯤 됐어요.
동생 둘이서
옛날 고난의 행군 시절 고생하던 시절 생각하고
언니 둘한테 전화해서 여기 오라고 했는데
안 오겠답니다.
혜산시 련봉동 저지대... 홍수 때는 마을이 물에 잠기던 그 동네...
마당에서 올려다 보면 가까운 산 언덕쯤에 김정숙 사범대가 보이고
시내쪽으로 나오다 보면 왼쪽에 큰 병원이 있고
좀더 걸어나오면
공설운동장이 있는 곳.
오늘따라
그 언니 둘이 살고 있는 그
백두산 아래 동네 혜산시 련봉동이 생각나네요.
그립습니다.
죽기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 언니는 첼로, 바이올린, 아코디언 잘 하고
기타는 기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