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글쓰기 훈련 게시판

Re:당나라의 백만대군 - 수학의 방정식 문제 풀이 과정

작성자사람이 하늘이다|작성시간13.01.21|조회수522 목록 댓글 7

 

 

   정론직필님 안녕하세요.

 

   이 글이 한민족고대사 게시판의 제 글 “갈석산은 고구려의 역사를 알고 있다(제3회)”를 보고 쓰신 것이라 판단되어 답 글을 답니다.

 

   그냥 넘어갈까 망설이다가 회원들이 한민족의 역사를 인식하는데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글이라 생각하여 몇 자 적습니다. 사실 이런 게시판을 운영하려면 엄청난 성의와 열정과 그리고 통찰력과 사명감이 없으면 힘들겠지요. 평소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글을 보고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바둑 실력이 아마 5단 정도 됩니다. 바둑을 한 수 두려면 적어도 수십 수 앞을 내다보아야 하며, 전체 판을 살피고 천변만화하는 흐름을 읽어야 합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하면 제 글이 비논리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 관련 글을 한편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참고해야 할 자료도 방대하거니와 같은 사건이나 지명에 대해서 서로 다른 기록들이 무수히 존재합니다. 도대체 어느 기록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취사선택이 쉽지 않지요.

 

   그래서 이 기록이 당대에 기록된 것이냐 아니면 후세에 다른 기록을 보고 옮긴 것이냐?

   기록자가 개인인가? 아니면 국가인가?

   기록자의 역사관이 어떠한가?

   그 기록자가 어떤 상황에서 기록한 것인가?

 

등등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기록을 올바로 해석하려면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서 그 기록자의 내면까지 통찰해야 합니다.

 

정론직필님의 본문 글은 파란색으로 인용합니다.

 

  1. 역사서에 나타난 거리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고대 국가들의 영토 크기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그 동서 길이가 몇백리라는 둥 또는 1천리 또는 1만리라는 둥의

기록들도 나온다고 합니다.

나는 물론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런 기록들을

곧이곧대로 믿는 짓이 얼마나 황당한 짓인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

그건 마치....이태백의 다음 싯구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터무니 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비류직하 삼천척" (이태백 시의 한 구절)

 

중국 시인 이백은 실제로는 고작해서 몇미터 밖에 안되는 폭포수를 보고

위와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의 엄청난 과장법은 예로부터 이미 유명하지요.

그런 내막을 모르고.....이백이 본 폭포가 실제로

3천척에 달하는 거대한 폭포라고 가정하고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한다면....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보나마나 황당한 엉터리 결과가 도출될 수 밖에 없겠지요.

 

   정론직필님은 이태백이 감흥에 겨워 시 한 수 읊은 것을 예로 들어 역사서의 각종 거리 기록을 희화시키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적인 기록과 역사서의 객관적인 거리 기록이 과연 같이 취급될 수 있을까요? 만약 역사서의 거리 기록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역사해석은 역사서의 거리를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론직필님은 이처럼 잘못된 예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군요.

 

마찬가지로.....어느 고대 국가의 동서 너비가 1만리 또는

2천리라고 고대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오늘날 정확히 측정된 거리 개념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저 상대적으로 좀 큰 영토 또는 상대적으로 좀 작은 영토라는

의미로만 해석해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고대 사서에 "2천리" 라는 기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오늘날의 거리 개념으로 환산하여 적용한다면

그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말이지요.

 

왜냐면....오늘날에야 거리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여러 수단들이

발달해 있지만.....그러나 고대에 영토의 너비와 같이 거대한 거리 개념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나라 영토의 정확한 지형적 모양도 모르던 시절인데....

하물며 정확한 거리를 도대체 무슨 수로 알 수 있다는 말인지?

 

   정론직필님은 “고대에 영토의 너비와 같이 거대한 거리 개념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은 아마도 없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고대 사서의 거리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단정짓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론직필님과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학창시절에 은연중에 고대인은 미개하고, 미신이 가득하고, 비과학적이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과연 그럴까요? 역사를 깊이 공부해보면 그러한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지요.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5000년이 넘는 홍산유적 유물들을 보십시오. 현대기술로도 가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옥제품들이 넘쳐납니다. 도대체 그 단단한 옥돌을 무엇으로 그렇게 정교하게 다듬었을까요? 돌도끼로?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마야 문명 등 현대과학으로도 불가사의한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거리문제를 봅시다. 피타고라스 정리가 나온지가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인 기원전 580년경입니다. 아시겠지만 피타고라스정리만 알고 있으면 각종 거리를 쉽게 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800여년이 지난 삼국시대에 동양에는 거리를 재는 수단이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고대에서 국토의 크기는 왕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거리기록이 대단히 정확하지요.

 

   물론 각종 역사서에 나오는 거리기록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겠지요.

예를 들면 전국시대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이 연나라 문공에게 “연나라는 국토가 사방 2천리이고, 갑옷 입은 병사가 10만이고....” 등등 떠벌립니다. 소진은 진나라를 두려워하는 연나라 문공을 상대로 합종책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진나라의 국력은 될 수 있는대로 줄이고 연나라 국력은 가능한 늘려서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연나라 국토가 사방 2천리라는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렵겠지요.

 

   반면 『삼국지』에 고구려 영토가 사방 2천리라고 나옵니다. 중국의 역사 기록은 대부분 자기 것은 부풀리고 상대방은 줄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적대세력이었던 『삼국지』의 저자가 고구려의 영토을 부풀려서 기록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영토 2천리는 『삼국지』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부분의 정사에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고구려 영토 사방 2천 리 기록을 정확히 2천리로 볼 필요는 없겠지요. 대략 1700리~2300리 정도 범위면 사방 2천리로 기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1천리도 안되는 영토를 사방 2천리로 기록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강단사학은 『삼국지』등 중국의 각종 정사서에 고구려 영토는 사방 2천리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영토를 사방 1천리도 안되는 것으로 역사지도에 그리고 있습니다. 역사서의 사방 2천리를 사방 1천리도 안되는 크기로 보려면 거기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2. 수나라 군대가 무려 100만명이라는 기록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시 수나라가 100만명의 대군을 동원했다는 기록을 믿기 어렵다고 정론직필님은 본인이 록페스티벌에 방문 경험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예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론직필님은 백만대군으로 느낄수 있겠지만 대회주최측이나 기자들은 5만도 안되는 숫자를 백만으로 기록에 남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사의 기록은 그것을 부정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믿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자세라고 봅니다.

 

  3. 치밀한 논리전개의 글을 써라

 

   이 부분은 독자들을 납득시키기 해서는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연의 원리를 다루는 이공계와 사람의 일을 다루는 인문계는 논리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원리는 해답이 하나입니다. 반면 인문학은 사람의 숫자만큼 해답도 가지가지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진리 그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문분야도 아닌 역사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주제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싼 학비를 지불하면서 잘못된 역사를 배웠다고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을 쓸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논리를 전개할 것인가 입니다. 치밀한 논리 전개를 하려다 보면 글이 길어지고 딱딱해지기 쉽지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까지 읽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사람들이 읽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요.

 

내가 꽃이라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된 것처럼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가질 때, 그 역사가 진실한 역사가 되겠지요.

 

   끝으로 제가 연재하는 “갈석산은 고구려의 역사를 알고 있다(제3회)”는 글은 논지가 지극히 단순합니다. 즉 하북성 요동이 요령성 요동으로 이동되었고, 그로 인하여 한민족의 상고사가 동쪽으로 1천리 이동 축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1, 2회에서 갈석산의 이동으로 논증하였으며, 3회부터는 구체적 역사사실을 가지고 그것을 입증하는 글들입니다.

 

   물론 논지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중 역사학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동북공정은 뿌리 채 흔들리겠지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知天命 | 작성시간 13.01.21 [사람이 하늘이다]님 좋은 글을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통일조국 | 작성시간 13.01.21 거리측정은 예를들어 서울에서 대구까지가는데 사람이나 말이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 당으로도 기준을 두어 측정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 작성자단군3 | 작성시간 13.01.21 갈석산의 위치 비정 은
    살수 평양 ,졸본 등 모든 지명의 비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기대 합니다,
    중국역사서에서 바다라는 지역이 나옵니다 이때 이 바다(海) 를 현재의 황해 정도의 바다라고 오해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다가 아니고 큰 강 ,하천 호수 를 바다라 합니다,
    즉 산과 함께 내륙에 위치하는 내륙을 흐르는 하천을 바다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지리서로 산해경이 있지요 여기서의 해가 바로 넓고큰 하천을 말 하는 것 입니다,
    山과 하천 그리고 이와 관련한 사람들 및 풍속 을 기록한 책 이죠 바다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 작성자정론직필 | 작성시간 13.01.21 이런....답글로 쓰셔서...위 본문글이 홈피 공지글로
    올려지지 않네요.

    암튼, 님의 고대사 진실규명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 같은 문외한이 그 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당연히 무모한 짓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상식적 판단력으로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논리전개를 요구할 자격은 있다고 봅니다.

    순전히 그런 관점에서 말씀 드린 것입니다.

    예컨데, 고서에 동서 너비가 2000리로 나와 있으니
    그것을 근거로 비정하면 [개마대산]은 [개마고원]이 틀림없다는 주장은
    마치 [배용준]과 [욘사마]는 동시대 인물이고, 배용준의 [용]과
    욘사마의 [욘] 발음이 비슷하니, 그 두 인물은
  • 답댓글 작성자정론직필 | 작성시간 13.01.21 동일인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허술한 논리전개라고 봅니다.

    고서에 나오는 영토 크기들(=동서 너비 등)이 얼마나 황당한 것들인지는
    고조선 시대의 갈석산 위치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한참 후에 나온(=더 현대적인) 고지도들을
    살펴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 사서에 나온 거리개념에 의한 비정이 아니라
    보다 더 직접적으로 [개마대산]이 [개마고원]으로 추정될 수 있는
    논거들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다른 게시글에서 고지도 몇장을 올려볼 생각입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