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없는 충격적인 이유/사마르칸트로 간 고구려 사신/사라진 고구려 역사 200년, 김부식이 고의로 삭제했다?
작성자정론직필작성시간26.04.03조회수162 목록 댓글 3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없는 충격적인 이유ㅣ한국이 맞이한 가장 결정적인 역사의 비극🔥
https://www.youtube.com/shorts/c8ZAaSO1O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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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 시간여행자] 사마르칸트로 간 고구려 사신 (KBS_2026.01.04.방송)
2026. 1. 4. #시간여행자 #역사스페셜 #한국사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벽화에는 7세기 중엽 조우관을 쓴 고구려 사신들이 그려져 있다. 당시 고구려는 수·당의 팽창과 연개소문의 정변 등으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초원길을 통해 서역과의 외교적 연대를 꾀했다. 비록 실질적 성과는 미지수이나, 이는 고구려가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 전역을 무대로 활약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다. 또한 소그드의 호선무가 고구려에 유행하고 고구려의 등자 기술이 초원을 건너 유럽까지 전해지는 등 활발한 인적·문화적 교류도 이어졌다. 이처럼 고구려는 실크로드를 통해 세계와 긴밀히 소통하며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제국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d-hA4aMr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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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고구려 역사 200년, 김부식이 고의로 삭제했다? 1300년 전 묘지명에서 찾은 대반전 | KBS 역사스페셜 20060324 방송
2026. 3. 10. #삼국사기 #김부식
■ 역사스페셜 - 김부식은 왜 삼국사기를 썼나?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김부식이 정계를 물러나자, 인종은 삼국사기의 집필을 명한다. 중국의 역사는 밝으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된 삼국사기 집필.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생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기], 즉 옛날의 기록들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황제의 기록! 고구려 [본기]를 남기다. 황제의 역사는 ‘본기’ 라 하고, 제후의 역사는 ‘세가’ 라 한다. 김부식은 고구려의 역사를 고구려 본기로 만들어 후세에 전함으로써 고구려사가 중국의 역사가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수만 편의 논문이 제시된다 해도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만 정확히 제시하면, 모든 논란은 사라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삼국사기를 정확히 읽지 않고 함부로 폄하해 온 대부분의 사실들은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 이 영상은 2006년 3월 24일 방영된 [역사스페셜 - 김부식은 왜 삼국사기를 썼나?
]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7iPbmqe7cA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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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세리랑 작성시간 26.04.03 new
한국은 고려사를 정사가 아니라고 부정한답니다. 결국조선사만이 한국사라는 거죠. 요지는 간단해요. 한반도는 고구려와 발해를 통하여 고려가 등장하는데 고려의 본진이 중국에 있었다는 거죠. 몽골족의 침략으로 고려는 중앙군력만 살아남고 지방은 무주공산이라서 지방호족들이 대거 등장하고 결국 원나라가 유럽원정에서 실패하여 집단방위체제가 무너지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갈 때 중국원나라는 지원군이 없는 구조로 가서 급속멸망하죠. 당연히 고려는 중앙권력이 호족형태로 남아있었는데 신라지방에서 주원장이 득세하여 신라지역을 평정하고 고려를 압박해오니 전쟁다운 전쟁을 해보기도 전에 겁에 질려서 왕궁을 수없이 옮겨갔다고 하죠. 그러다가 한반도까지 들어와서 주원장이 그냥 봐주고 이성계는 쿠테타를 일으켜서 조선이 건국되죠. 이성계는 주원장의 신흥세력이 너무 강하다고 보고 가장큰 군사력을 가진 호족출신으로서 회군 쿠테타를 성공하죠. 조선은 고려사편찬을 못하고 있다가 한참후에 썼다고 하는데 권력층이 고려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그랬다는 거죠. 나중에 한반도사는 전쟁통에 사고가 여러번 불타서 다시 썼다고 하는데 여기에 역사수정이 수없이 진행됐다고 보여지고 중국의 역사적 지명이 수평이동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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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혜 작성시간 26.04.03 new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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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촌인 작성시간 26.04.03 new
세리랑님
우리나라 성씨가 거의 고려초에 생성되었는데
각 성씨의 시조공의 묘소가 님의 주장에 따르면
대륙에 있어야 하는데
그르칠 않아요
고려사 편찮도 조선초라고 봐야죠
정인지가 주가되니 세종 때쯤
근간이 되전 법전편찬이 성종 때이니
좀 늦죠 경국대전이라고
태종 이방원이 좀 문제인데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여
명에 빌붙었어 권력을 유지한 것이 문제
정도전의 의도데로 왕권이 불안한
명을 쳤다면 할만했죠
원잔당, 퉁두란(이지란)의 여진,백련교(마교)
연합하면 할만했죠.
지금 정치하는 것들도
태종 같은 인간들 많지요
태종은 그래도 훌륭한 아들 세종 땜에
그런데로 방까이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