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조선의 갈석산을 찾아서(제1회) < 갈석산의 개요>

작성자사람이 하늘이다|작성시간14.11.18|조회수1,172 목록 댓글 14

 

고조선의 갈석산을 찾아서(제1회)

 

 

 

   1. 머릿 글

 

   『태강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는 기록이 있다. 한민족의 상고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유명한 구절이다. 낙랑군은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평정하고 그 중심지에 설치하였다는 한나라의 군현이다. 낙랑군은 이때 설치된 후, 후한과 위‧오‧촉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에 변동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구려 제15대 미천왕(美川王, 재위 300~332년) 때인 서기 313년에 고구려가 낙랑군을 회복한 이후로 중국의 군현인 낙랑군은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위의 『태강지리지』 기록은 서진西晉의 초대황제인 무황제 태강(太康, 280 ~ 290)년간에 편찬된 지리서이므로, 한나라 낙랑군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기 시작하는 서기 313년 보다는 30여 년 전에 편찬된 책이다. 『태강지리지』의 기록은 본래의 한나라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마지막 역사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낙랑군에 갈석산이 있었고, 그곳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태강지리지』의 기록에서 한줄기 빛을 보았다. 만약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한나라 낙랑군이 설치되었던 고조선의 중심부에 갈석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는 말과 같다. 모든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만 산천이야 어찌 쉽게 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산을 찾을 수 있다면 고조선의 중심지를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갈석산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2. 본 글

 

   역사서에 나타나는 갈석산은 여러 개가 있다. 그리고 갈석산의 위치에 관해서도 예로부터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그런데 갈석산과 관련된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본래 갈석산은 하나뿐이었다. 갈석산에 관한 기록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서경』 ‘우공’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도이島夷는 가죽옷을 입고, 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황하로 들어간다.(島夷皮服 夾右碣石入于河)” 『서경書經』 ‘하서 우공 제10장, 11장’

 

   이것이 역사에 등장하는 갈석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도이島夷는 발해만 북부지역에 살던 동이족의 한 갈래인데,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인 중국 하나라 우임금 시절에 도이가 배를 타고 발해만 연안을 돌아, 황하로 들어설 무렵 오른쪽 해변에 우뚝 솟은 갈석산이 있었다는 것이다.

 

각종 갈석산과 만리장성

 

   모든 갈석산에 대한 논의는 이 구절로부터 파생되었다. 본래 갈석산은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있었다는 이 갈석산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황하 하류의 흐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따라 많은 변동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해수면의 높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로 인하여 갈석산이 있었다는 ‘황하 하류 해변가’의 위치도 시대를 따라서 달라졌다. 그런데 이를 알지 못한 학자들이 자기 시대의 황하 하류 해변가에서 갈석산을 찾게 됨으로써 새로운 갈석산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필자는 이들 갈석산들이 학자들의 착오로 인하여 생겨났으므로 ‘착오 갈석산’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역사왜곡을 위해 황하의 흐름과는 무관한 갈석산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필자는 이들 갈석산들을 ‘가짜 갈석산’으로 부르려고 한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던 본래의 갈석산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白石山, 해발 2,096M)이다. 학자들의 착오로 생겨난 ‘착오 갈석산’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현 중국 산동성 빈주시 무체현에 위치한 갈석산이며, 또 하나는 『수경』에서 ‘요서 임유현 남쪽 물 속에 있다.’고 기록한 갈석산이다.

 

   역사왜곡을 위해 본래의 갈석산을 동쪽으로 지명 이동한 ‘가짜 갈석산’도 두 개가 있다. 하나는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난하 하류에 위치한 갈석산이며, 다른 하나는 현 한반도 평양 부근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갈석산이다.

 

   역사서에 나타나는 갈석산들은 모두 위에서 언급한 5개중 하나이다. 사료를 통하여 이들 갈석산들의 위치와 생겨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들 5개의 갈석산을 올바로 이해하면 한민족의 상고사가 어느 시기에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으며, 한민족 상고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갈석산에 대한 모든 논의의 핵심은 『서경』‘우공’에 나오는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있었다는 본래의 갈석산을 찾는 일이다. 이 본래의 갈석산을 알고 나면 나머지 ‘착오 갈석산’과 ‘가짜 갈석산’들은 저절로 알게 되어있다.

 

   그러면 본래의 갈석산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가 관건인데, 쉽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본래의 갈석산은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라는 그 시공간의 위치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 과학은 시대별 황하 하류의 흐름과 해수면의 높이를 모두 알고 있으므로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본래의 갈석산이 기록된 『서경』은 유학의 주요 경전으로 예로부터 많은 학자들의 자세한 연구가 있었다. 이들 기록을 통해서도 본래의 갈석산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관련 사료들을 살펴보자.

 

   본래의 갈석산 위치를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록이 『서경』에 나온다.

 

   “견산에서 물을 인도하여 기산을 거치고 형산에 이르며, 황하를 넘어 호구와 뇌수로부터 태악에 이르며, 저주와 석성으로부터 왕옥에 이르며, 태행과 항산으로부터 갈석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가게 하였다(導岍及岐 至于荊山 逾于河 壺口雷首 至于太岳 底柱析城 至于王屋 太行恒山 至于碣石 入于海).” 『서경書經』 ‘하서 우공 제84장’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

 

   위의 내용은 하나라 우임금이 산맥을 따라 황하를 치수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현 중국 섬서성에 위치한 견산岍山에서 시작하여 현 중국 하북성에 위치한 태행산과 항산을 거쳐 갈석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서기 1209년 중국 남송시대에 제작된 고지도인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에서 그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푸른색으로 표시한 것은 황하의 흐름을 나타낸 것이며, 붉은 점선은 우임금이 황하를 치수하면서 거쳐 간 산맥들을 표시하였다.

 

   위의 『서경書經』 ‘하서 우공 제84장’ 의 내용은 『사기』 ‘하본기’와 『한서』 ‘지리지’에도 각각 실려 있는데, 갈석산에 이르기 직전의 산인 태행산과 항산에 대한 주석을 살펴보자.

 

   “공안국이 말하기를 ‘이 두 산은 멀리 이어져 동북쪽으로 갈석산에 접하여 창해로 들어간다.’ 하였다(孔安國曰:「此二山連延,東北接碣石,而入于滄海」).” 『사기집해』

 

   “태행산은 하내 산양현 서북쪽에 있다. 상산은 항산으로 상산군 상곡양현 서북쪽에 있다(太行山在河內山陽縣西北. 常山,恆山是也,在常山郡上曲陽縣西北).” 『사기색은』

 

   “안사고가 말하기를 ‘태행산은 하내 산양현의 서북쪽에 있다. 항산은 상곡양현 서북쪽에 있다. 두 산이 멀리 이어져 동북쪽으로 갈석과 접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하였다(師古曰:「太行山在河內山陽西北. 恆山在上曲陽西北. 言二山連延, 東北接碣石而入于海).” 『한서』 ‘지리지’

 

   위의 『사기집해』와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항산의 동북쪽에 갈석산이 접하여 있다고 하였다. 항산의 위치를 찾으면 갈석산의 위치는 저절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항산은 예로부터 중국 5악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으로 너무나 유명한 산이다. 오늘날 중국 하북성 보정시 정주시 곡양현에 위치한 대무산(大茂山, 일명 신선산, 해발1,898M)이다. 갈석산은 이 대무산과 동북쪽으로 접하고 있으므로 오늘날의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白石山, 해발 2,096M)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오늘날에는 중국 5악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을 현 중국 산서성 혼원현에 위치한 항산恒山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청나라 순치 17년(1660)에 항산의 명칭이 대무산大茂山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리고 이 갈석산을 상세하게 그려놓은 중국 고지도가 있다. 중국 남송시대인 1177년에 제작된 아래의 『기주협우갈석도冀州夾右碣石圖』이다. 이 지도는 갈석산을 중심으로 주변을 흐르는 강과 연나라 5군인 상곡군‧어양군‧우북평군‧요서군 등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참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로 향하는 보물섬 지도라 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들이 가득 담긴 지도이다. 이 지도를 통하여 고대의 요수가 현 중국 북경시 동쪽을 흐르는 조백신하이며, 요서지역이 현 중국 북경지역이며, 고대의 요동이 현 중국 하북성 지역임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지도에는 다음과 같이 갈석산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도 기록되어 있다.

 

 

기주협우갈석도

 

   “기주의 북쪽에서 공물을 운반하려면, 고수․역수․탁수․요수로부터 바다로 들어온 후 서쪽으로 대하상류를 향하여 멀리 기주의 도읍지로 도달한다. 이때에는 구하(황하)가 바다와 구분되지 않으므로 갈석이 똑바로 하구에 있다. 그 황하를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갈석이 오른쪽에 있으므로 ‘갈석을 오른쪽으로 낀다.’고 말한다(冀之北貢 自沽易涿遼水入海而後 西向以上大河永達冀都 此時九河未熟於海而 碣石正在河口 於其遡河西上則 碣石在右故 曰夾右碣石).”

 

   갈석산의 위치가 역수易水에서 바다로 들어온 후 서쪽으로 올라가면 갈석산이 오른쪽에 있다고 하였다. 역수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를 흐르는 거마하拒馬河이다. 갈석산은 거마하의 하류 서쪽에 위치하므로 오늘날의 백석산이 분명하다. 기주협우갈석도』는 오른쪽이 북쪽, 왼쪽이 남쪽으로 그려져 있으므로 왼쪽으로 90도 회전하여 보아야 필자가 현대지도에 옮긴 것과 같아진다.

 

   이처럼 본래의 갈석산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서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중국 5대 명산 중의 북악北岳인 항산과 동북쪽으로 접하여 있으므로 그 위치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또 중국 고지도인 『기주협우갈석도』를 통해서도 그 위치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갈석산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다.’는 사실인데, 오늘날 현대 과학은 시대별 황하 하류의 흐름과 해수면의 높이를 모두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라 우임금 시절의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한 갈석산’의 위치를 과학적으로도 찾을 수 있다.

 

황하의 변천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원전 602년 이전의 고대 황하는 그 하류의 흐름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로 흘렀다. 그리고 당시에는 해수면의 높이가 지금보다 6M가량 높아서 보정시 일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위의『황하의 변천도』참조) 그러므로 ‘하나라 우임금 시절 황하 하류 해변가에 위치했던 갈석산’은 정확하게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백석산이다.

 

   본래의 갈석산인 백석산은 현 중국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이루는 태행산맥이 시작되는 산이라고 하여 ‘태행의 머리(太行之首)’로 불리고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110개에 이르고, 해발 2,000M 이상인 봉우리도 5개나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를 백석산(白石山, 해발 2,096M)으로 부른다. 산에 하얀 돌이 많으며, 배열된 것이 병풍과 같다. 산 자체가 회백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백옥, 초백옥이 많이 나서 백석산으로 불리고 있다. 오래전부터 백석산은 세계지질공원, 국가지질공원, 국가삼림공원, 국가A4급 유람풍경구 등의 명성을 쌓아왔다. 백석산은 황산, 장가계, 내몽골의 초원, 용경협의 협곡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한 중국 비경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자료 출처 : 중국 국가관광국>

 

하북성 보정시의 백석산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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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사람이 하늘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1.18 안녕하세요. 잘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얼캐쉰 | 작성시간 14.11.18 위 글처럼 1차 사료만 제대로 읽어도 고대사의 진실은 자명하게 드러날 터인데...
    해방이후 70년이 넘도록 왜놈 똥구녕만 빨고있는 사학자라는 넘들은 대체 뭐라는 놈들일까....?
    심백강씨 말로는 기성 사학계 학자라는 넘들중에 원문 독해능력을 가진 사람조차 없다고 하던데....아마도 맞는 말일듯...
    사대매국노들이 학계 권력을 거머쥐고 제 나라 역사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데만 온갖 심력을 경주하는 세계 유일무이의 개망국가....
  • 답댓글 작성자사람이 하늘이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1.18 안녕하세요. 현 강단사학계는 일제가 조작해놓은 낙랑유물에만 매달려 1차사료들은 외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갈석산의 위치는 위의 본문에서 보았듯이 『사기집해』와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항산의 동북쪽에 갈석산이 접하여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항산의 동북쪽에서 접한 산은 백석산이 분명한데, 어떻게 이 본래의 갈석산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현재 난하 하류의 가짜 갈석산이 진짜처럼 행세를 하고 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면 기가막힙니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역사왜곡의 현장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 작성자대촌놈 | 작성시간 14.11.22 좋은글 고맙습니다~~~
  • 작성자이도경 | 작성시간 14.12.24 명료하군요 ㅡ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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