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곤 이중재가 참조했다는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

작성자청량산|작성시간17.11.25|조회수1,021 목록 댓글 18

율곤 이중재는 대륙 고려, 조선사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외 대륙조선사를 주장한 원 주장자들은 최두환 외 여렷 있으나, 이들이 과연 자신들이 

참조했다는 각종 역사적 사료들을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대표적으로 율곤 이중재는 "고려 태조 왕건의 묘가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아래 기사에서 "한치윤의 저서

해동역사(海東繹史)」,「고려사(高麗史)」「명사(明史)」, 서긍(徐兢)이 지은「고려도경(高麗圖經)」

그 외 많은 사서(史書)들은 왕건(王建)이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태조 왕건묘 중국 대륙에 있었다 

(일요서울 1997.4.6 율곤 이중재) 


모든 정사들은 고려 왕건의 기록을 똑똑히 기록하고 있다. 필자의 저서「고려사의 새발견」에서도 밝혔지만 한치윤의 저서「해동역사(海東繹史)」,「고려사(高麗史)」「명사(明史)」, 서긍(徐兢)이 지은「고려도경(高麗圖經)」그 외 많은 사서(史書)들은 왕건(王建)이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http://www.siddham.kr/6139 


해동역사는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는 사서이다. 명사(明史)는 어찌 되는지 모르겠으나,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을 보면, 도대체 율곤 이중재가 어디를 보고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율곤 이중재가 참조했다고 하는 서긍(徐兢)의「고려도경(高麗圖經)」전 40권 원문/풀이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hjang3&logNo=221033199362


한국고전번역원 - 고려도경

http://www.krpia.co.kr/knowledge/itkc/detail?artClass=MK&artId=kc_mk_a003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고려 인종1년(1123년)에 송나라 휘종(宋徽宗)의 명에 따라 사신으로 파견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이 한달 남짓 개성(開城)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송 

나라에 돌아가 편찬한 보고서다. 원명은 송 휘종의 연호인 선화(宣和, 1119년~1125년)를 넣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고 한다.


고려도경의 내용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대륙고려설의 근거로 아예 주장자체를 할 수 없을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율곤 이중재는 이 고려도경의 내용까지 들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사절요의 인종 1년 때의 내용과 서긍의 고려도경 권 2 세차(世次)의 내용을 보면 거의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인종은 송나라 휘종을 천자로 받들고, 송나라 휘종은 인종에게 새로운 직위를 수여하는 

내용이 나온다. (고려도경 원문과 번역본은 퍼오기가 안되므로 위 링크 참조)


고려사절요 제9권 / 인종 공효대왕 1(仁宗恭孝大王一) 

계묘 원년(1123), 송 선화(宣和) 5년ㆍ요 보대(保大) 3년ㆍ금 태종 천회(天會) 원년


....


○ 송 나라에서 예부 시랑 노윤적(路允迪)과 중서 사인 부묵경(傅墨卿)을 보내왔다. 


조서에 이르기를, “멀리서 들으니 나라를 이어받아 곧 정책을 삼가히 마련했다고 한다. 생각건대 왕위를 계승하는 초기에 선왕을 잘 이으리라 하는 기대에 맞도록 노력할 것이다. 졸지에 변고를 당하여 슬픔이 매우 심할 듯하기에, 급히 사신을 보내어 어진 사람을 본받은 은총을 전하고, 물품을 보내어 아울러 애도함과 영광의 뜻을 표하노니, 마땅히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고 영원히 제후로서의 도리를 준수하라. 이제 별지에 적은 대로 경(卿)에게 예물을 갖추어 내리노라." 하였다. 


왕이 혼당에서 제전과 조위하는 조서를 받았다. 


노윤적(路允迪) 등이 왕에게 고하기를, “황제께서, 귀국의 선왕이 돌아가시고 뒤를 이은 왕이 왕업을 계승하였음을 듣고, 사신을 시켜 제물을 보냈는데, 조위하는 조서와 제문은 모두 손수 지으신 글입니다. 원풍(元豐 송 신종(神宗)의 연호) 연간의 제전이나 조위는 상례에 의하였을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은총과 예우가 매우 달라서, 특히 부자(父子)간의 은총을 베푼 것입니다. 대관(大觀 송 휘종(徽宗)의 연호) 연간에 내린 조서에는 특히 권(權) 자를 없애 진정한 왕이라는 예의를 나타내었고, 이번 황제의 글에서도 또한 특별한 은총을 보였습니다. 다만 선왕께서는 요의 책명을 받았으므로 휘(諱)를 피하여 왔으나, 이제는 요의 책봉이 없어졌으니 조정에 책봉하기를 청하십시오." 하니,


왕이 답하기를, “우리나라가 조종조 이래로 즐겨 중국의 풍속을 사모하였습니다. 특히 선고께서는 예로써 대국을 섬기며, 충성으로써 직무를 보살펴 비록 해외에 있으나, 마음은 항상 왕실에 있었으니, 천자께서 환하게 아시고 여러 번 은총과 혜택을 베풀었사온데, 이번에 또 친히 제문을 지어 특별한 은총을 표하였고, 신의 직함에서 권 자를 빼었습니다. 비록 선고께서는 일찍이 이런 예우를 받았으나, 소자가 어찌 이런 예우를 감당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른바 책명은 천자가 제후를 포상하는 큰 예전(禮典)인데, 이제 상사도 마치지 못하고서 서둘러 큰 예전을 요청하는 것은 도의상 미안한 일이오니, 실로 황송하고 부끄러움만 더할 뿐입니다. 내년에 사신을 보내어 사은과 아울러 적은 정성을 전달하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그대들이 잘 아뢰어 주기를 바라오." 하였다.


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Z&cate2=&dataGubun=최종정보&dataId=ITKC_BT_1294A_0100_010_0020



그러니 율곤 이중재를 비롯한 대륙 고려, 조선설 주장자들의 사료해석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고려사절요나 서긍의 고려도경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려한다면, 이들의

바른자세는 아예 이들 사료들을 인용 자체를 하지 말아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최근의 대륙조선설 주장자들처럼 , 이들 역시 역사적 사료를 편의적으로 인용하고, 전체 맥락은 

무시한 채, 그것도 왜곡해서 해석을 했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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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노란돼지 | 작성시간 17.11.26 역시 대단한 인재셨군요. 이상한 분드리 제대로 답변조차도 못합니다. 제 의무 중 하나는 숨어계신 인재들을 양지로 모시는 일이라고 사려됩니다. 논리력과 실력을 갖추신분들이 오셔야 합니다. 고맙습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치우 | 작성시간 17.11.25 식민지는 주권이 없어요.
    탈식민이 우선 아닌가요?
    식민백성이 그것도 설로 역사를 찾겠다니 숨은 뜻이
    무었일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식민지 백성이 탈식민을 위해 독립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탈식민 운동은 없고, 아메리카 조선설,
    이씨조선대륙설 등으로 민족정체성 말살에 열을 올립니다.
    목적은 쌀식민지 정당화, 개싱국가 만들기 최종적으로
    쌀의 개가 되어 중.러 정벌 용병으로 쓰이겠다는 개싱들의
    개스라엘에 대한 맹세가 대륙조선설의 진원으로 봅니다.
  • 작성자벗꽃필무렵 | 작성시간 17.11.25 참 안타깝습니다
  • 작성자노란돼지 | 작성시간 17.11.26 저는 절대 절대 왜구가 아니무니다..안믿으시면 우리네 성님들이 오시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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