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 비치 스토리'에 녹아 있는 웃음의 의미

팜 비치 스토리를 보면서 포복절도가 이런 웃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빛나는 건 프레스턴 스터지스가 각본과 감독을 병행했다는 것이다. 스쿠르볼 코미디의 대가인 그가 세계 2차대전이 한창일 무렵 소시민들의 삶의 이면에 드리워진 또 다른 세계를 시니컬하게 보여주는 의도는 웃음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부호들의 이중성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누군가는 돈이 없어 윌세(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너무 큰 아파트고, 그 시절의 우리네 삶은 거친 시골집이거나 도시의 하꼬방-루핑집 혹은 양철지붕이 있는 임시 가건물?-이거나 보통의 기와집이 전부였다)를 살지만 부호들은 호화로운 열차를 전세내 사냥을 가며 술과 노래와 내기를 한다. 전쟁이나 사회의 약자엔 무관심한 그들 부호들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그들도 그들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
그건 그렇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 누군가. 가난한 발명가이자 월세도 못내는 남편, 조엘 맥그리어다(그는 50년대와 60년대 웨스턴의 사나이였으며 샘 페킨파 감독의 '대평원'에서는 늙은 카우보이로 출연해 서부의 만가를 가슴시리게 연기했다). 그럼 아내 역의 클로데트 콜버트는 누구인가. 프랭크 카프라가 감독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의 콜버트가 바로 그녀다. 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그 시기 최고의 인기스타인 베티 데이비스도 후보에 올랐고, 콜버트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그녀는 데이비스에게 상이 돌아가리라 여겨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부자집 상속녀로 버릇없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엘리 앤드류스 역을 맡았다. 히치하이커는 그녀가 만들어낸 용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길가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세우려고 스타킹을 끌어올리는 아찔한 장면은 은근히 웃음을 자아내면서 운전자들의 시선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팜 비치 스토리>는 프레스턴 스터지스가 감독했지만 주인공은 조엘 맥그리어와 클로데트 콜버트가 아니라 루디 발리(Rydy Vallee)다. 존 D. 하켄새커 3세 역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루디 발리다. 그가 없었다면 아니 다른 배우가 하켄새커 3세 역을 연기했다면, 상상을 불허한다. 스터지스는 어느 날 극장에서 뮤지컬영화를 감상하는데 그의 폭포처럼 쏟아지는 대사에 관객들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스터지스는 그 웃음에 발리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웃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를 위해 비자각성의 인물을 창조해냈다. 비자각성(그렇다, '팜 비치 스토리'는 발리를 위해 쓰여졌다). 자신은 웃음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관객들과 캐릭터들은 그의 웃음에 덩달아 폭소를 터트릴 수 있게 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무얼까. 해피엔딩일까? 아니다. 오프닝 시퀀스다. 영화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알기도 전에 플롯의 결말을 폭로한다. 세상에나, 영화가 이래도 되나. 그런데 현실이 복잡하다면 그냥 지나치면 되는데 왜들 노심초사들 할까 하고 나무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자막에 이어 ‘아니오!’ 라는 자막이 뒤를 잇는다. 의표를 찌른다. 관객들은 어리둥절하겠지만 그런 틈마저도 사양한다.
그렇다면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필모그래피와 바이오그래피를 보자
스터지스는 1898년 시카코에서 출생해 1959년 사망했다. 그는 청년시절 어머니의 사업을 도와주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했다. 종전 후 희곡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The Power and the Glory>(34), <We Live Again>(34), <'착한 요정' The Good Fairy>(35), <Diamond Jim>(35) 등 몇몇 작품들이 브로드웨이무대에서 성공을 하자 이를 계기로 30년대 중반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이 시기 그가 집필한 작품들은 <Easy Living>(37), <Port of Seven Seas>(38), <If I Were King>(39), <Never Say>(39) 등이다. 이때는 전세계가 전쟁의 참화에 전율할 때, 그는 <'위대한 맥긴티' The Great McGinty>(40)로 데뷔한다. 이 영화는 스터지스가 각본을 쓰고 감독했는데, 그에게 아카데미 각본상을 안겨준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영화는 스스로 각본을 쓰고 영화화했다. 1940년 <7월의 크리스마스>를, 그해 <설리반의 여행>을 감독했는데,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라는 영화를 연출하기 위해 주제를 찾아헤맨다. 훗날 코엔 형제는 2000년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만들어 스터지스의 영화에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제목을 사용했다. 이어 <레이디 이브>(41)를 감독해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뉴욕영화비평가협회 감독상과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엔 바바라 스탠윅과 헨리 폰다가 출연했는데, 그의 최고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팜 비치 슽토리>(42)로 슬랩스틱 코미디의 정점을 찍은 후 <모건 크리크의 기적>(44), <'정복자를 찬양하라' Hail the Conquering Hero>(44) 등은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그의 영화세계의 지평을 넓혀갔다. 하지만 전쟁이 종식되고 만든 영화들은 관객의 박수를 받지 못했고, 평론가들 역시 비평의 거리를 두고 말았다.그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만든 작품들은 <Mad Wednesday>(46), <Unfaithfully Yours>(48), <The Beautiful Blonde from Bashful Bend>(49), <The Diary of Major Thompson>(56) 등이다.
그의 영화는 정교하다. 풍자와 슬랩스틱, 대립과 사랑, 코믹하면서도 재미 만점의 대사, 할리우드와 차가운 사회에 대한 시니컬한 시선, 가난하고 경박한 부인과 이상주의의 괴리, 영웅, 애국심, 모성에 대한 해학, 미국의 모럴리즘에 대한 히스테리적 발상 등 그의 영화엔 웃음과 촌철살인적 위트가 넘쳐난다. 그는 위대한 해학의 작가로 시니컬함과 페이소스를 적절하게 결합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으며 관객들에게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어찌보면 카프라와는 대비되는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이 한창일 때 비도덕적인 부의 행태에 신랄하게 냉소를 퍼부을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스쿠르볼 코미디에 유머와 해학을 담아내는 능력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하다.
감독, 각본 프레스턴 스터지스
출연, 클로데트 콜버트, 조엘 맥그리어, 루디 발리, 메리 에스터, 시그 아르노
촬영, 빅터 밀러너
음악, 빅터 영
1942년 작품, 파라마운트 작품
글: 지난 여름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