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합(野合)
1. 좋지 못한 목적 아래 서로 어울림(an illicit union)
2. 서로 정을 통함(a common-law marriage)
3. 야외에서의 합주(合奏)
4. 야전(野戰)
정식 혼례를 치르지 않고 부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화랑세기』 15세 유신공 조에 유신의 부모인 서현과 만명이 야합하여 유신을 임신했던 것으로 나온다.
삼수(氵)변이 들어간 글자들은 거의 물이름이나 강(江)이다. 산동성의 강을 보면, 공자(孔子)의 마을에 흐르는 강을 수수(洙水)라 하며, 수수가 흘러 사수(泗水)가 되고, 다시 기수(沂水)와 만나며, 회수(淮水)에 이른다.
제남으로 흐르는 강은 제수(濟水)이며, 유방(濰坊)으로 흐르는 강은 유수(濰水)이며, 임치에 흐르는 강은 치수(淄水)이다.
공자의 부친은 추읍의 숙량흘(叔梁紇: ? ~ 기원전 548년)로 숙량흘(叔梁紇)은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사람으로 성은 자(子), 씨는 공(孔), 이름은 흘(紇)이고, 숙량(叔梁)은 자이다. 추인흘(郰人紇), 추숙흘(鄹叔紇)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양공(襄公) 시절, 추읍(郰邑, 혹은 鄹邑)의 대부였기 때문이다. 시씨(施氏)를 아내로 얻어 딸 아홉을 낳았고 아들 맹피(孟皮. 다리불구)가 하나 있었다. 이후에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 안징재(顔徵在)라는 아내로 맞아 들판에 있는 니구산(尼丘山)에 들어가 기도하여 사이에서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를 낳았다. 안씨는 ‘그 일을 부끄러워하여 아들에게 무덤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후한의 유학자 정현(鄭玄)의 기술이다.
야합이라는 단어를 맨 처음 쓴 사람은 사마천이다. ‘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라고 기록한 것이 그 근거다. 70세의 숙량흘은 동료 무사이자 친구였던 안양(顔襄)의 셋째 딸 16세 안징재(顔徵在)와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다. 니구산(尼丘山)에 기도해서 공자를 얻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 중 '공자세가'편에 나오는 말이다. 숙량흘이 늙었고 안징재가 어려서 적령기에 혼인하는 예절, 즉 비녀 꽂는 예를 올릴 수 가 없기 때문에 야합이라고 했다.
'야합'이란 말의 구체적인 내용은 70세의 숙량흘과 16세의 안징재 사이에서 공자가 태어났다는 말이다. 숙량흘은 그 이전 첫 번째 부인 시(施)씨에게서는 딸 아홉을 두었고, 두 번째 부인에게서는 아들 하나를 낳는다.
이 아들은 논어에도 공자의 형으로 소개되는 맹피(孟皮)로 다리를 저는 등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맹(孟)은 큰 아들이란 뜻이고, 피(皮)는 신체에 장애가 있다는 뜻이다.
안징재는 세 번째 아내인 셈인데, 니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를 얻어 이름을 중니(仲尼)라 했으며, 혼자 그 근처 산자락에서 공자를 키웠다. 니구산 자락에서 태어난 공자는 7, 8세쯤에 당시 노나라 수도인 곡부로 옮겨왔다. 궐리(厥里) 어디쯤 살면서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공자는 19세에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노나라 소공이 득남을 축하하여 잉어를 보내왔다. 이를 기념하여 '잉어 리(鯉)자'를 써 ‘리’라 지었다. 그는 사회 생활을 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참으로 미미한 한직이었다. 작은 마을의 수납관이 되어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거나, 가축을 관리했다고 한다.
공자 스스로도 자신은 젊었을 때 천한 사람이라고 했고, 사마천도 그러한 기록을 했던 점으로 보아 공자에게는 이어받을 만한 어떠한 기득권도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