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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정책은 올바른 선택이었다(토론)

작성자류재수|작성시간26.06.08|조회수17 목록 댓글 0

토론학습지(토론입론서)

대회명 토론대회일시2026.6.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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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논제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정책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논의배경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1863년부터1873년까지10년간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하면서 여러 가지 개혁도 하고 혁신을 하였다.그 과정에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쇄국정책을 사용하여 서양과 일본을 오랑캐라 보고 배척했는데 이러한 정책은 그 당시의 국내외정세와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시점 등에서 볼때 바람직한 정책이었을지가 논의의 핵심이다.
용어정의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 :영조의 현손,장헌세자(莊獻世子)증손자,조선25대왕 고종의 생부.본명 이하응자 시백(詩伯)호 석파(石坡)이며10년간 정권에 관여하였다.
쇄국정책(鎖國政策, policy of seclusion) :대원군의 문호폐쇄정책.다른 나라와 통상,교역을 금지하고 외교 관계를 제한하는 정책. cf폐쇄경제(closed economy),
autarky[autarchy]1. (한 나라의 경제적)자급자족상태,경제자립[자급자족]정책. 2.경제자립국가
찬성



논점1주장1.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최선은 아닐지라도 적절한 정책이었다.1.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논거당시의 서양세력과 일본세력이 밀려오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고 성공을 거둔 정책이었다.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해 결과적으로 고립을 자처하여 외세의 침탈을 가져오고 국력이 약화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논점2주장2.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정책이었다.2.오로지 왕권강화책의 일부였다
논거서양열강과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정책이었다흥선대원군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닐지라도 왕권을 강화하고 권위를 높여 조선왕조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논점3주장3.개인의 사적 이익보다는 국가라는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 4.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과감한 혁신정책이었다3.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이 늦게 되었다.4.유생층의 반발과 국론분열을 야기하게 되었다.
논거3.대원군의 정책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한 정책이었다.
4.조선왕조를 통해서 그 누구도 행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3.쇄국정책의 결과 문화와 경제발전은 물론 전반적으로 일본에 뒤지게 되어 결국 일본에 병합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4.대원군의 여러 정책들이 특히 유생 양반들의 반발을 사서 국론이 분열되고 외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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