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학습지(토론입론서)
| 대회명 | 토론대회 | 일시 | 2026.6.10 . . | |||||
| 소속(학교) | 팀명 | 토론자 | ||||||
| 논제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정책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 |||||||
| 논의배경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1863년부터1873년까지10년간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하면서 여러 가지 개혁도 하고 혁신을 하였다.그 과정에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쇄국정책을 사용하여 서양과 일본을 오랑캐라 보고 배척했는데 이러한 정책은 그 당시의 국내외정세와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시점 등에서 볼때 바람직한 정책이었을지가 논의의 핵심이다. | |||||||
| 용어정의 |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 :영조의 현손,장헌세자(莊獻世子)증손자,조선25대왕 고종의 생부.본명 이하응자 시백(詩伯)호 석파(石坡)이며10년간 정권에 관여하였다. 쇄국정책(鎖國政策, policy of seclusion) :대원군의 문호폐쇄정책.다른 나라와 통상,교역을 금지하고 외교 관계를 제한하는 정책. cf폐쇄경제(closed economy), autarky[autarchy]1. (한 나라의 경제적)자급자족상태,경제자립[자급자족]정책. 2.경제자립국가 | |||||||
| 찬성 | ||||||||
| 논점1 | 주장 | 1.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최선은 아닐지라도 적절한 정책이었다. | 1.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 |||||
| 논거 | 당시의 서양세력과 일본세력이 밀려오는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고 성공을 거둔 정책이었다. |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해 결과적으로 고립을 자처하여 외세의 침탈을 가져오고 국력이 약화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 ||||||
| 논점2 | 주장 | 2.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 2.오로지 왕권강화책의 일부였다 | |||||
| 논거 | 서양열강과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 흥선대원군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닐지라도 왕권을 강화하고 권위를 높여 조선왕조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 ||||||
| 논점3 | 주장 | 3.개인의 사적 이익보다는 국가라는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 4.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과감한 혁신정책이었다 | 3.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이 늦게 되었다.4.유생층의 반발과 국론분열을 야기하게 되었다. | |||||
| 논거 | 3.대원군의 정책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한 정책이었다. 4.조선왕조를 통해서 그 누구도 행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 3.쇄국정책의 결과 문화와 경제발전은 물론 전반적으로 일본에 뒤지게 되어 결국 일본에 병합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4.대원군의 여러 정책들이 특히 유생 양반들의 반발을 사서 국론이 분열되고 외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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