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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필사방

전업 눈사람 (외 2편) / 김륭

작성자김도솔(김동희)|작성시간26.06.13|조회수23 목록 댓글 0

전업 눈사람 (외 2편)

 

   김륭

 

 

 

평생을 따라다닌 눈사람이 있다는 걸

어젯밤에야 알았어요.

 

반려동물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여자가 말했고나는

거기 있었다. 

 

 

창신동

 

 

 

반바지 입고 도넛 사러 가는 길

 

하필이면 슬리퍼를 닮았다헐떡이는

한 계단 두 계단 오래된 그림자 먼저 말아 굴리며

신발 상자처럼 안아보는

골목

 

또 절벽이 된 나는 괜히 울지도 않는 발바닥을

폰처럼 귀에 붙이고

 

골목은 착하지 않아도 되지만 절벽은 그러면

안 된다고그럼요누가 등을 떠밀어도 괜찮아요.

마음은 이미 잘 떨어져 있는걸요.

그런데 잠깐만요.

 

흙을 덮어준다.

발목까지 내려온 입술 위에 입술 하나 더 눌러놓듯

지금이 무슨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절벽은

언제나 바깥이 아니라

안이어서

 

가만히 절벽 아래로 던졌다 다시 감아올리는

마음이그 마음에 생긴 구멍을 사랑의 얼굴이라고

말해도 되나.

 

이건 후드득 머리 위에 떨어진 빗방울 하나가 던진

묘파다!

 

아시죠애인이 새로 생겼다는 소식 너머로

등을 떠밀어 보낸 마음이란 분은 또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질 때마다

자꾸 구부러지는 골목이다.

 

열리면 절벽이 되는

입술이다.

 

 

창신동은 원래 채석장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많은 건물을 지으면서 화강암 등의 돌을 떼서 가져오면서 절벽이 생겼다. 인간이 만든 절벽이다.

 

 

홍시

 

 

 

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암이 아니라

변비 때문에 죽겠다고제발

똥 좀 나오게 해달라고 시원하게만 나오면

죽어도 좋겠다고,

 

나는 암 병동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이대로 죽었으면 하고애인이 사 온

죽을 먹었다.

 

그때마다 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본 것도 같다죽기 딱 좋은 가을이었다.

잠깐이라도 우는 것을 멈추면 너무 익어서

움켜쥘 수도 없는,

 

어떤 마음은 매달려서 익는 게 아니라

죽기 위해 매달린다.

 

물끄러미 병실 창밖을 내다보는

애인 그림자 밑에 엎드려 또 울었다나는

죽은 마음에 이목구비가 생길 때까지

불을 켰다.

 

 

 

           —시집 전업 눈사람』 20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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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 / 1961년 경남 진주 출생.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와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원숭이의 원숭이』『나의 머랭 선생님』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엄마의 법칙』『내 마음을 구경함』『햇볕 11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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