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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가

6월 18일(목) 삼하 3:22-30 아브넬이 살해되다

작성자규민이 사랑|작성시간26.06.12|조회수23 목록 댓글 0

삼하 3:22-30 아브넬이 살해되다

 

22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23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

24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26 이에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전령들을 보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시라 우물 가에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으나 다윗은 알지 못하였더라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28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29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 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

30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그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사람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죄된 감정은 언제든 다시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복수로 변질된 정의(22–27) 요압은 다윗이 아브넬과 화해했다는 사실을 듣자 즉각적으로 강한 반발을 보입니다. 그는 형제 아사헬의 죽음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군대 장관으로서 자신이 누려왔던 지위와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통제되지 않은 분노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요압에게 아브넬은 단순히 과거의 원수가 아니라, 앞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정치적 경쟁자였으며, 다윗과의 화해는, 곧 권력 구조의 재편을 의미하는 위기였습니다. 그는 왕의 결정을 신뢰하며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앞세워 아브넬을 속여 불러내어 죽이는데, 이는 개인적 감정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명백한 폭력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요압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권위 또한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분노가 마음의 중심에 서게 될 때, 정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검증되지 않은 채 쉽게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피로 세워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28–30) 아브넬의 죽음을 알게 된 다윗은 즉시 자신과 나라가 이 일에 무죄한 것을 분명히 선언하며, 요압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악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정치적 책임 회피를 위한 발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원리와 방식으로 세워지는지를 선포하는 신앙적 선언이었습니다. 다윗은 분노와 복수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사람의 감정이 아무리 정당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는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피 흘림과 폭력 위에 세워지지 않으며, 인간의 칼과 보복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떠난 정의는 공동체를 보호하기보다 더 깊은 상처와 불신을 남기게 되며, 하나님의 의는 언제나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적용: 당신의 감정을 정의로 착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마음을 먼저 내려놓읍시다.

 

큐티의 적용은 막연해서는 안 됩니다. Personal(개인적), Practical(실제적), Possible(가능한)이라는 ‘3P 원칙’을 활용합니다. “사랑하며 살자” 같은 추상적인 결심보다는, “오늘 퇴근길에 고생하는 배우자에게 따뜻한 격려의 문자 한 통 보내기”처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너무 거창한 목표는 중도 포기를 부르지만, 당장 오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은 성취감을 주고 삶을 실질적으로 바꿉니다. 오늘 읽은 말씀이 내 가정, 직장, 대인관계라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야 할지 고민하고, 단 한 가지라도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지점을 기록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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