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열린편지

[열린편지] 착한 사람의 손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6.06.10|조회수3 목록 댓글 0

[열린편지] 착한 사람의 손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한 사람이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그도 앉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무거운 가방을 든 노인을 보고 조용히 일어섰습니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작게 남기고 앉았고, 양보한 사람은 문 옆에 서서 흔들리는 손잡이를 붙들었습니다. 그 순간 세상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착한 사람이 늘 손해 본다."

우리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봅니다. 정직하게 줄을 선 사람보다 끼어든 사람이 먼저 갑니다. 양심껏 일한 사람보다 약삭빠른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챙깁니다. 남의 몫을 빼앗지 못하는 사람은 미련해 보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취급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 체념하듯 말합니다. "착하게 살아 봐야 소용없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짧은 시간만 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한 판만 보면 속이는 사람이 이깁니다. 오늘 하루만 보면 양보한 사람이 손해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한 번의 거래가 아니라 긴 관계의 연속이며, 사회는 한 사람의 승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무리의 운명입니다.

진화생물학에도 오래된 수수께끼가 있었습니다. 자연이 냉정한 경쟁의 무대라면, 왜 남을 돕는 마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을까. 왜 양보하고 나누고 위험을 무릅쓰며 타인을 돕는 성향이 인류의 역사 속에 그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았을까.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로언 윌슨은 그 한 갈래의 답을 집단 선택에서 찾았습니다. 그가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남긴 유명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집단 안에서는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을 이기지만, 이타적인 집단은 이기적인 집단을 이긴다.

개체 하나만 떼어 놓고 보면 이기적인 사람이 앞서가는 듯합니다. 그러나 공동체 전체로 시선을 넓히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서로 속이고 이용하는 집단은 안에서부터 무너집니다. 신뢰가 사라지면 거래의 비용이 오르고, 관계가 피곤해지며, 위기의 순간에 아무도 서로의 손을 잡아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서로 돕는 집단은 흉년에도 버팁니다.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동체를 떠받치는 가장 값비싼 자본입니다.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의 죄수의 딜레마 대회도 같은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여러 학자에게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이길 전략을 프로그램으로 제출하게 했습니다. 교활하고 복잡한 전략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것은 아나톨 라포포트의 가장 단순한 전략, 곧 "받은 대로 되갚기(Tit for Tat)"였습니다. 이 전략은 먼저 협력하고, 상대가 배신하면 분명히 응답하되, 상대가 다시 손을 내밀면 곧 협력으로 돌아옵니다. 먼저 선을 베풀되 짓밟히기만 하지는 않고, 잘못에는 응답하되 끝내 용서의 문을 닫지는 않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은 착함이 어리석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선함은 무방비가 아닙니다. 참된 선함은 먼저 손을 내밀 줄 알고, 악 앞에서는 경계를 세울 줄 알며, 회복의 빛이 비치면 다시 품을 줄 아는 힘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함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셨습니다. 순결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이용당하기 쉽고, 지혜만 있고 순결이 없으면 계산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함은 순결과 지혜가 나란히 걷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깊은 물음이 남습니다. 평생 선하게 살았으나 끝내 세상에서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정직하게 살다 가난하게 떠난 사람, 양보만 하다 이름 없이 잊힌 사람, 옳은 일을 하느라 손해 보고도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사람의 생은 결국 헛된 것인가. 과학은 협력이 집단을 살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 이론은 긴 관계에서는 신뢰가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한 사람의 외로운 손해 앞에서, 세상의 셈법은 자주 말을 잃습니다.

신앙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입을 엽니다. 신앙은 "착하게 살면 언젠가 갚아 주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시 거래입니다. 신앙이 들려주는 말은 더 깊습니다. 착한 사람의 손해는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장부에서는 적자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서는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땅에서는 손해로 보이지만 하늘에서는 씨앗입니다. 오늘은 묻힌 듯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서 열매가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 손해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손해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이 보기에 가장 큰 패배였습니다. 죄 없는 분이 죄인처럼 죽으셨고, 사랑하신 분이 버림받으셨으며, 생명의 주가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손해를 부활의 영광으로 바꾸셨습니다. 십자가는 선함이 패배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이 끝내 이긴다는 가장 깊은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양보한 자리, 조용히 감당한 손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섬김은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칭찬이 붙지 않아도 하나님의 기억이 붙습니다. 세상의 박수가 없어도 하늘은 기억합니다. 착하게 사느라 오늘도 조금 손해 보셨습니까. 그 손해는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익어 가는 한 알의 씨앗입니다. 사람은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이 땅에서 다 거두지 못한 선함은,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온전히 거두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6.10.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