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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편지] 약과 독은 같은 풀에서 납니다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6.06.12|조회수0 목록 댓글 0

[열린편지] 약과 독은 같은 풀에서 납니다

약상자 안의 약은 양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해치기도 합니다. 두통약도 한 알이면 통증을 덜지만 한 움큼이면 몸을 무너뜨립니다. 혈압약도 정해진 양을 지키면 생명을 돕지만, 지나치면 생명을 위협합니다. 약과 독은 때로 전혀 다른 물질이 아니라, 같은 물질의 다른 얼굴입니다.

심장이 약해진 환자에게 쓰이는 약 가운데 디곡신이라는 약이 있습니다. 이 약은 디기탈리스, 곧 폭스글러브라 불리는 식물에서 유래했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은 잘못 쓰면 사람과 짐승을 해칠 수 있는 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다루면 심장을 돕는 약이 됩니다. 영국의 의사 윌리엄 위더링은 민간요법으로 전해지던 폭스글러브 처방에 주목했고, 오랜 관찰과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1785년 『폭스글러브와 그 의학적 사용에 관한 보고』를 펴냈습니다. 독이 약이 되는 길은 신비한 주문에 있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관찰, 신중한 사용, 알맞은 용량에 있었습니다.

16세기 의사 파라켈수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독이다. 독이 아닌 것은 없다. 다만 용량이 어떤 것을 독이 아니게 한다.” 이 말은 오늘날 독성학의 대표 원리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이 약이고 무엇이 독인가는 얼마만큼, 어떤 몸에, 어떤 방식으로 들어가느냐가 그것을 가른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인생에도 흐릅니다. 사람들은 경험이 많을수록 무조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력서의 빈칸을 두려워하고, 가득차고 화려한 이력서를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에도 적정 용량이 있습니다. 적절한 경험은 약이 되지만, 지나친 경험은 독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루친스의 물병 실험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 개의 물병으로 정해진 양의 물을 만드는 문제를 여러 번 풀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복잡한 방식이 정답이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더 쉬운 해결책이 가능한 문제가 나와도,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 성공했던 복잡한 방식만 반복했습니다. 경험이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길을 막는 벽이 된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아인슈텔룽 효과', 곧 굳어버린 마음이라 부릅니다. "왕년에는 말이야"라며 옛 성공의 공식을 붙들고 있을 때, 바로 그 경험이 오늘의 눈을 가립니다. 어제의 약이 오늘의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경험이 없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버펄로대학교의 마크 시어리 연구팀은 삶의 역경과 회복탄력성에 관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역경을 전혀 겪지 않은 사람도, 너무 많은 역경에 짓눌린 사람도 아닌, 어느 정도의 역경을 통과한 사람들이 일부 정신건강 지표에서 더 나은 적응력을 보였습니다. 고난이 전혀 없으면 온실의 화초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고난이 너무 많으면 뿌리째 뽑힙니다. 비는 알맞게 내릴 때 곡식을 익힙니다. 모자라면 땅이 갈라지고, 넘치면 뿌리가 썩습니다. 소금은 한 줌이면 맛을 살리지만, 한 됫박이면 밭을 죽입니다. 불은 화로에 담기면 방을 덥히지만 지붕에 오르면 집을 태웁니다. 햇볕도 알맞으면 열매를 익히고 지나치면 잎을 태웁니다.

공자는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덕을 모자람과 지나침 사이의 바른 상태로 설명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경험은 값비싼 학교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 학교 말고는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미숙함의 값을 치르고, 경험에 취한 사람은 교만의 값을 치릅니다.

누가 저마다 인생에 경험의 용량을 처방합니까. 신앙인은 그 처방을 하시는 분이 따로 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사십 년 동안 최고의 성공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화려한 이력만으로 그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 낮아지고 비워지는 경험을 더 처방하신 후에야 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올라가는 놀라운 영적 경험을 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교만하지 않도록 육체의 가시라는 쓴 약을 함께 처방하셨습니다. 신앙인에게 경험은 스스로 쌓아 올리는 탑이 아니라, 하나님이 손수 조제하시는 약입니다. 성공의 경험은 감사를 배울 용량만큼, 실패의 경험은 겸손을 배울 용량만큼, 고난의 경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울 용량만큼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경험은 자랑할 훈장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해석받아야 할 재료입니다. 성공은 감사로 해석될 때 약이 됩니다. 실패는 회개와 겸손으로 해석될 때 약이 됩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더 깊이 의지하게 할 때 약이 됩니다. 그러나 성공이 자랑이 되면 독이 되고, 실패가 열등감이 되면 독이 되며, 고난이 원망으로 굳어지면 독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험보다 더 깊은 해석입니다. 더 많은 사건 보다 그 사건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놓는 믿음입니다. 인생의 의사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겪었는지 아실 뿐 아니라, 그 경험이 우리 안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아십니다. 

왜 나는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느냐고 불평할 필요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상처를 상처로만 두지 않으십니다. 회개한 죄를 간증으로 바꾸시고, 무너진 시간을 겸손으로 바꾸시며, 눈물의 밤을 누군가를 위로할 빛으로 바꾸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경험이나 더 적은 경험이기 보다는 내 인생의 용량을 정확히 아시는 의사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사람은 다양하지만 하나님은 천국에 이를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 경험해야 할 적정 용량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약과 독은 같은 풀에서 날 수 있습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같은 경험이 어떤 사람에게는 교만의 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은혜의 약이 됩니다. 차이는 경험의 크기가 아니라, 그 경험을 누구의 손에 맡기느냐에 있습니다. 내 손에 붙들린 경험은 자랑이나 상처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올려진 경험은 마침내 영혼을 살리는 약이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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