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편지] 풀꽃은 장미를 이기려 피지 않습니다
음악사에서 가장 깊은 사랑을 받는 가곡 중 하나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한 가난한 청년의 손에서 태어났습니다. 슈베르트는 평생 안정된 후원자 없이, 친구들의 도움에 기대어 곡을 썼습니다. 키가 작고 시력이 나빠 동그란 안경을 썼던 그를 친구들은 애정 어린 별명으로 "버섯"이라 불렀습니다.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전 재산은 낡은 옷가지 몇 벌과 악보 뭉치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600여 곡의 가곡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의 영혼을 흔듭니다. 가장 초라한 살림 속에서 가장 풍요로운 선율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의 초라함과 싸우며 살아갑니다. 가진 것이 적어서, 배움이 짧아서, 키가 작아서, 말주변이 없어서 스스로를 작게 여깁니다. 그러나 초라함은 가진 것이 적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닙니다. 비교의 저울 위에 자신을 올려놓을 때 비로소 생깁니다. 리언 페스팅거의 사회비교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가치를 절대 기준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대적 위치로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큰 집, 더 화려한 이력, 더 빠른 성취 앞에서 우리는 쉽게 작아집니다. 큰 교회, 화려한 예배, 성공한 신앙인의 모습과 자신을 견주는 순간 초라함이 스며듭니다.
그렇다면 초라함을 이기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을 과장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는 대단하다"고 억지로 외친다고 마음이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길은 단 하나, 비교의 대상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누구와 견주느냐가 감정의 빛깔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규모와 화려함을 저울로 삼으면 늘 초라하지만, 신실함과 진정성을 저울로 삼으면 마음은 도리어 풍요로워집니다.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어떤 환경의 초라함도 견뎌냅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기에 귀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기에 귀한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 초라함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규모와 가치를 동일시하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가 심어 놓은 착시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은 거의 언제나 소수에게서, 변방에서, 작은 것에서 나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광장의 소수와 대화했고, 예수의 공동체는 갈릴리 변두리의 열두 명이었으며,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모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 자체가 초라함의 극치였습니다. 벌거벗겨져 조롱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눈에 그보다 초라한 광경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초라함이 우주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를 섬긴다고 작은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일을 맡았다고 작은 인생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크기는 맡은 자리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겨자씨 한 알, 누룩 한 줌, 기드온의 삼백 명, 다윗의 물맷돌, 오병이어를 두고 하나님은 결코 초라하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병이어는 작았지만 주님의 손에 들렸을 때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것을 통해서만 일하지 않으십니다. 작은 것을 붙드셔서 그 안에 하늘의 능력을 담으십니다. 만왕의 왕이신 분이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고, 마구간에서 태어나,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초라함을 극복한다는 것은 남보다 커지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자리를 찾는 일입니다. 풀꽃이 장미를 이기려 하지 않고 제 계절에 피어나듯, 우리도 남의 인생을 흉내 내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피어나야 합니다.
19세기 런던에 찰스 스펄전이라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키가 작고, 정규 신학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평생 통풍과 우울증에 시달린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강단에 서면 5천 석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은 주일마다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가 남긴 설교는 지금도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읽힙니다. 세상이 "저 볼품없는 사람이 무슨 설교를 하겠느냐" 수군거렸으나, 하나님은 바로 그 작은 그릇에 한 시대를 흔드는 능력을 담으셨습니다. 약함도 하나님의 능력 품는 그릇이고, 초라함도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들에는 이름 모를 풀꽃 하나가, 장미를 곁눈질하지 않고, 제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계절을 온전히 살아 피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