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읽고 또 읽어야 멋진 애드립 나와
![]() |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범(22)씨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볼 때와 달리 무척 차분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정성을 들여서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패스트푸드 ‘파파이스’ 광고에서 맷돌을 갈고 있는 장나라에게 “오랜 만에 책 좀 보는데 난 안 갈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라고 한다든지 이동통신 KTF 광고에서 오랜 만에 만난 친구에게 붙잡혀 “야, 너 운동 좀 했구나”라는 애드립(즉흥 연기)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핑클의 옥주현, 이진과도 수줍게 인사를 했다. 이처럼 류승범씨의 첫인상은 수줍음을 많이 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어요. 친구도 별로 없었고 공부도 재미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학원폭력이 싫었어요. 그저 음악과 춤이 좋았어요.”
●공부·학원폭력 싫어 고1 때 자퇴
아침잠이 많아 지각을 많이 했고 학교 안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에 더 이상 학교를 다닐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이다. 류씨는 이때 양아치, 건달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그 경험이 지금 연기에 큰 도움이 된단다. 하지만 직접 싸움을 해본 적은 전혀 없고 몸에 외상(外傷) 하나 없다. 워낙 싸우는 것을 싫어하고 겁이 많아서 별명도 ‘엄살쟁이’였다.
‘엄살쟁이’ 류씨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고등학교 중퇴 후 이태원 등지에서 3년간 DJ를 하면서 작곡 공부에 몰두했다. 당시 그가 심취한 음악은 힙합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아웃사이더 인생을 살던 류씨를 세상에 알린 계기는 그의 형 류승완(29)씨가 메가폰을 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년)에 출연한 것이었다.
류승완씨는 동생을 위해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건달 세계를 다룬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는 ‘인생살이가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라는 주제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생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위로가 함께 들어있다는 것이다.
류승범씨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해서 ‘다찌마와 리’ ‘와이키키 브라더스’ ‘피도 눈물도 없이’ ‘복수는 나의 것’ 등에 출연했다. 역시 단편 모음인 ‘묻지마 패밀리’는 개봉을 앞두고 있고, 5월 말 촬영에 들어가는 ‘품행제로’에서 류씨는 나이 많은 ‘전설 속의 짱’ 고등학생 역을 맡았다. 그의 형 류승완씨는 “동생이 그냥 까불다 말겠거니 했는데 요즘 다시 보니까 연기력이 상당하다”고 칭찬했다.
“형하고 저하고는 많이 달라요. 중학교 때 제 아이큐는 98이 나왔는데 형은 140이 넘었거든요. 한 배에서 바보와 천재가 나왔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대신 저는 집중력이 강하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다른 일을 못합니다.”
현재 서울 신당동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는 류씨 형제는 충남 온양에서 자랐다. 류승범씨는 다섯살 때 형과 빨가벗고 물장구를 치며 조스놀이 하던 기억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곱살 때 서울에 올라온 류씨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 없이 학교만 왔다갔다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영화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영화, TV 드라마, CF 출연이 너무 좋다고 한다. 그의 이미지가 70~80년대 ‘복고풍’ 남자로 굳어지는 것은 주로 그런 역을 맡게 돼서 연기에 전념하는 것뿐이란다.
“촬영 전에 집중해서 대본을 보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미리 준비를 하기도 하고 촬영 중에 영감이 떠올라 즉석에서 애드립을 쳐보는 거죠. 성공한 연기 대부분이 즉흥적으로 나온 거예요. 하지만 그건 순발력이 아니라 정성과 기(氣)를 꾸준히 모은 결과입니다.”
류씨는 하루 전날이라도 대본을 받으면 종이가 뚫어져라 읽고 또 읽으면서 무슨 생각엔가 잠긴다고 매니저는 귀띔한다.
류씨가 노력파인 증거는 하나 더 있다. 얼마 전까지 그는 배우의 자세를 적은 종이를 지갑에 넣고 다녔다. 이 종이에는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라’ ‘오늘 당신의 최고 연기를 해라’ 등의 말들이 적혀 있었는데 친구가 복사하겠다고 빌려가서 안 가져온다고 한다. 친구가 빌려가기 전까지는 항상 현장에서 읽고 촬영에 들어갔다.
이러한 노력이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 철진이를 미워할 수 없는 국민적 건달로 만들었다. “야, 너 어쩜 그렇게 재수가 바가지냐” “미쳤어, 미쳤어” “그만 조절하지” “지킬 건 지켜야지” 등 그의 대사는 지극히 사실적이다. 또 야간 고등학교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건들거리며 등교하는 자세, 야한 성인잡지를 학교에 가져와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은 우리들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같은 반 친구의 모습과 다름없다.
고등학생들은 그의 껄렁함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대학생들은 어딘지 순진해보이는 매력에 빠지며, 나이 든 분들은 응석받이 막내 같은 귀여움에 반했다고들 하는 것이다. 류씨의 연기는 감칠맛난다는 호평을 받았고 연실 역을 맡은 공효진씨와 열애설도 터졌다.
“효진이는 좋은 친구예요. 성격이 워낙 좋죠. 사랑이요?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거예요. 원래 작품 속에서 애인으로 나오면 한 번쯤은 진짜 애인이라고 소문 나잖아요. 흥행을 위해서 일부러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던데.”
사실 꽃미남형은 아니지만 류씨의 실물은 호감을 갖기에 충분한 얼굴이었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쳤다.
“저도 제가 미남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는 전혀 없습니다.”
친근한 외모와 성격이 그의 인기 비결이라고나 할까.
“언젠가 역술인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어요. 그는 제 인생의 80%가 바람과 구름 즉 ‘풍운(風雲)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되새기면서 마음을 비우면 연기가 편안하고 사실적으로 돼요.”
● “얼굴 콤플렉스 전혀 없어요”
대화 중 수시로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류씨의 말은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양아치 연기를 해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의 마음 속에 깔려 있는 겸손함과 착한 심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양아치ㆍ고등학생’ 전문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질 수도 있지 않냐고 하자 변신에 대한 강박관념은 없단다. 인생 경험이 적은 그가 자신과 전혀 다른 역을 맡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거짓으로 꾸며서 억지로 연기하기보다는 연륜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연기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연기를 테크닉만으로 하면 언젠가 가짜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몸 가는 대로 느낌가는 대로 연기가 중요한 거죠.”
기억나는 팬을 묻자 강원도의 한 고등학생을 떠올린다.
“용돈을 조금씩 모아 300원짜리 가나초콜릿 12개가 든 박스에 편지를 함께 보내왔어요. 팬들에게 비싼 선물도 많이 받고 있지만 가진 게 별로 없는 학생이 자신의 용돈을 꼬깃꼬깃 모은 정성에 눈물이 났어요.”
막 연기를 시작한 그가 존경하는 선배는 최민식, 조재현씨다. 이들의 눈빛 연기는 꼭 닮고 싶단다. 현재 소속은 문화창작집단 ‘필름 있수다’. 장진 감독이 이끄는 ‘필름 있수다’는 공연 기획집단 ‘수다’에서 출발해 신하균, 임원희, 정재영, 류승범 등과 같은 ‘뉴 페이스’들을 대거 키웠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던 중 2001년 대종상 영화제 신인남우상, 백상예술대상 TV남녀 신인연기상을 받은 바 있는 그가 언젠가 최우수 연기상을 받겠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ihseo@chosun.com>ihseo@chosun.com)
2002.5.30 /1705호
으잉? 보수적인 주간조선에서 신인을 인터뷰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인데...-_-; 그만큼 승범이가 촉망받는 연기자!? *^^* 승범이가 신인이지만 대단한 놈이란 걸 인정한 셈이구만.^^ 왠만한 연기자는 절대 인터뷰 안 하는 주간조선이니... 비록 신인이긴 해도 녀석은 대단한 연기자얌.^^ 하지만 정말 주간조선에 승범이가 나오다뉘... 믿기지가 않네. 주간조선에 나오기 힘든데... 많고 많은 잡지 중 주간조선에 나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스타가 아니면 안 되는데,그걸 저 어린 나이에 해냈다뉘... 녀석 기특하다. *^^*
카페 검색
- 답글 제목댓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