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의 편지
시/정환웅
저 아득한 꼭대기에서
하늘과 새와 달과 별과 바람과 해와만 친구하던
키다리 미루나무는
서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코스모스가 꽃잎을 파르르 떨던 어느 날
나에게 노랗게 물들인 편지를 산들바람에 실어 보내 왔다.
가을로의 초대장이었다.
햇빛에 찰랑대던 초록빛 윤기
팔랑거리는 푸른 잎사귀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얀 눈부심
가을은 나에게 콧대높은 미루나무 잎사귀와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이렇게 가을은 나에게 새로운 친구를 선물하였다.
나는 친구의 노오란 초대장을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낙엽은 만남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친구와의 짧은 만남 후에는
친구는 대지에 자기의 모든 것을 선물하고는
홀연히 내 곁을 떠나 갈 것이다.
기나긴 이별의 시작인 것이다.
이것이 사랑으로서의 낙엽의 일생이다.
하지만 친구는 이별은 이별이되
또다른 만남의 약속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따사로운 봄바람이 내 귓가에 안녕이라고
속삭이는 어느 날
미루나무는 새침뜨기 어린 잎사귀들을
앙상한 가지 가지마다 수없이 터트릴 것이다.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낙엽의 약속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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