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의 뜻과 영혼의 극락왕생
글·오형근: 동국대 명예교수
불교는 중생들에 대해서 윤회한다고 하고 부처님에 대해서는 윤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회하지 않는 것은 생과 사의 고통을 해탈하여
영원하게 안락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중생과 부처님을 비교하여 중생은 윤회의 고통을 받고,
부처님은 해탈하여 열반의 안락을 받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또다른 학설을 빌리면 윤회하고 윤회하지 않는 것은 마음 안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마음에는 양면성이 있다. 마음의 양면성이란 첫째는 윤회
하지 않는 진여심(眞如心)을 말하고 둘째는 윤회를 하고 있는 망식
(妄識)을 말한다. 이는 한 마음 속에서 두 가지 마음의 성품을
나누어 설명하는 학설이다. 이러한 학설을 유식학(唯識學)이라고 한다.
유식학에 의하면 부처님과 범부는 마음을 떠나서 따로 있을 수 없고
윤회하고 안 하는 것도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 글은 양면성의
마음 가운데 망식을 중심하여 윤회하고 있는 영혼과 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윤회하지 않는 진여심(眞如心)
우리의 마음에는 윤회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그러한 마음을 진여심
이라고 한다. 진여심의 진(眞)은 진실과 청정을 뜻하고 여(如)는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진여심은 항상 진실하고 청정하면서 변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이 마음은 현재 범부들도 가지고 있다. 이 마음은 범부들의
본성이며 범부들이 지옥과 천국 등 삼계, 육도에 윤회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마음을 불성(佛性)이라 말하기도 하고
부처의 마음이라고도 칭한다.
부처님은 오직 이 진여심만을 수용하면서 살게 된다. 진여심에 의하여
밝은 지혜가 발생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삼라만상의 진리를 환하게
알 수 있다.
진여심은 연꽃이 부정을 타지 않는 것처럼 어디에 있어도 부정을 타지
않는다.이 마음은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이면서 진리의 체성을
유지한다. 중생들은 이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혜로울 수 있고
보살이 될 수도 있으며 성불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마음을 깨달음의 마음이라 하며 청정무구한 불심(佛心)
이라고도 칭한다. 그리고 윤회하지 않는 해탈심이며 열반심
또는 보리심이라고도 칭한다.
2. 윤회하는 망식(妄識)
진여심은 청정무구한 것이지만 이를 망각하고 무명을 발생하여 후천적
으로 형성한 마음을 망식이라고 한다. 이 망식은 진여심과 함께
한 마음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 속의 진리와 물질의 진리를 함께
망각하여 무지 속에서 생활하는 마음을 뜻한다.
망식은 팔식(八識)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며 팔식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한다.
이들 팔식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학설이기도 하다. 팔식은 각각
역할분담을 하면서 활동하며 그 활동하는 것을 행위라 하고 이를
업이라고 말한다. 업은 곧 인(因)이라는 뜻이며 그 인은 반드시
연(緣)을 만나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팔식은 각각 행동을 발생시키면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아뢰야식은 앞의 칠식(七識)이 행동하여 조성한 선업과
악업을 빠짐없이 잘 보존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칠식은 보고 듣고
하는 중생의 행동을 모두 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말나식이 무명과
탐진치를 야기하여 범부로 타락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나머지 육식은 이에 의하여 무지의 마음을 야기하고 온갖 선악의
업을 짓게 된다. 말나식이 근본이 되고 이에 의지한 의식이 동시에
무명과 탐진치를 야기하게 되는데 이들 무지는 자신의 진여심을
망각한 것을 뜻한다. 진여심을 망각한 찰나부터 윤회하게 된다.
즉 무지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을 뜻하며 무지는 온갖 악업을
조성하는 원인이 된다. 악업을 조성한 그 업력은 모두 아뢰야식에
보존되었다가 사망하게 되면 아뢰야식이 내생의 몸을 받는 생명체가
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아뢰야식을 윤회의 주체로 간주한다.
3. 영혼과 천도의 뜻
위에서 한 마음 속의 진여심과 망식을 나누어 간단하게 살펴 보았다.
여기서는 망식을 중심하여 영혼설과 천도의 뜻을 설명하겠다.
범부들 스스로 자체의 진여심을 망각하고 망심을 중심하여 선악업을
짓게 되었으며 아뢰야식은 그 선악업에 의하여 윤회하게 된다.
이러한 무명은 매우 미세한 현상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모르며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경지라고 한다.이와 같이 망식을 일으킨 것도
자기 마음이며 비공식으로는 이들 마음을 망령(妄靈)이라고 칭한다.
이 망령은 소승불교에서 사후의영혼을 중음신(中陰身)이라고
칭한 것과 같다.
이 중음신은 대승불교의 아뢰야식에 해당하는 말이며 중음신은
천안(天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먼저 살았던 이승에 대하여 모두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
중음신은 이승의 업보인 몸을 벗어난〔死〕 영혼의 몸이기 때문에
이승에서 염불해 주고 독경해 주는 소리를 능히 들을 수 있는 청력을
갖게 된다. 특히 이승에 있을 때 범부의 몸으로 애착하고 아끼던
재산과 가족과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하여 잊지 못하고 바라보게 된다.
그리하여 불교는 이들 영혼을 위하여 애착을 버리고 지혜를 발생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기원해 주는 염불과 독경을 해주는 것이다.
이승의 모든 것은 무상하고 헛된 것이므로 애착을 버리고 왕생극락
하라는 내용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후의 중음신 즉 아뢰야식을 방편으로 세속의 칭호를 따서
부득이 영혼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들 영혼은 업력에 따라 일주일
내지 49일간 공중에 머무르는 것을 중음신이라고 한다. 중음신은
내생의 몸을 받게 되면 중음신이라는 명칭은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뢰야식은 몸을 받으면서 생과 사를 되풀이하고 또 생사에
윤회하는 동안의 마음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이승에 있을 때나 저승에
있을 때나 변함없이 중생의 몸을 유지하고 업력을 지니고 있는
윤회의 주체인 것이다.
이와 같은 아뢰야식은 다른 칠식을 거느리고 저승으로 가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업자득의 인과법칙에 따라 생과 사를 수용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아뢰야식을 상대하여 염불과 독경을 하며 천도의식을 해주는
것이다. 그 영혼은 설법을 듣는 순간 대오각성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부사의한 도리가 있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이 불교를 공부하고 신행한 업력이 왕생극락하는데
최상의 비결이다. 사후의 영혼은 평소에 지은 업력이 저승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사상은 자력(自力)의 사상이 매우 강하다. 교리를 잘
알고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영혼은 염라대왕 앞에서도 당당하게
진솔하게 되며 자력으로 왕생극락할 수 있다.
사후의 천도의식은 무지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며 왕생극락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가 된다. 그리고 이승의
권속들도 큰 복을 받게 된다.
출처:월간 불광(佛光) 200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