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시절의 꿈 2화
해월/바라밀
패기 넘치는 군생활,
꿈 많은 대학생활 2학년을 끝마침과 동시에
영화배우 연수 수업 도중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서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1978년 12월 18일, 집결지인
음성 공설운동장에 도착하니
군에 입대하기위해서 많은 젊은 청년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일일이 신원 대조하며 인원파악을 하고서는
모두가 군용열차에 올라 논산 역으로 향함에서
잔뜩 긴장된 상태로 몸을 실었습니다.
한참을 가고나니 연무대에 곧 도착한다고
음산한 안내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석양의 노을이 짙게 드러짐에 서서히
어두워 옴에서 겨울철의 날씨는
매서운 추위와 함께 금방 주위가 어두워졌습니다.
연무대에 도착을 함에 열차에 내려서
연무대 정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연무대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칼바람이
불 정도로 정말 무시무시하게 살벌하였습니다.
조교가 군기를 잡는다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역정을 내며 시뻘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부아렸습니다.
장정 모두가 밖에서 입었던 사복을 곱게
개어서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봉했습니다.
차곡차곡 쌓여진 상자가 정겨운 집으로
보내질 예정이었습니다.
나는 28연대에 배속을 받음에서
내일부터 4주간을 새벽부터 기상하여
훈련을 받아야 할 생각을 함에서 비로써,
군인이 되었다는 것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 6시에 기상하여 아침체조와 구보를
하고나서 7시에 아침식사를 하며,
8시에 집합하여 하루의 일과인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철이라 날씨가 몹시 추움에도
제식훈련, 각개전투, 장애물 통과, 철조망 통과,
사격훈련, PRI 훈련, 낮은포복, 높은포복 등
군인이 갖춰야 할 기본책무를 반복된 훈련으로
하여금, 숙달하게 하는 것으로 군기가 바짝 든
온전한 한 명의 군인으로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에 훈련을 받아봄에
그리운 집에서 평온함에 호의호식하며 보낸
유유자적 행복했었던 시절이 자꾸만
아른거리며 떠오릅니다.
현실은 참으로 냉혹함에서 춥디 추운
겨울에 훈련 받는 것은 그런대로 참아낼 수
있었지만 죽은듯이 고요한 밤,
모두가 고요히 취침한 시간에 새벽 2시가 되면
어김없이 조교가 '기상 '큰소리로 외침에 모두가
깊이 들었던 잠을 깨움에서 얼차렷을 시킵니다.
갖은 이유를 붙여감에 '훈련병들이 기가
빠졌다' 하며 '대가리 박아' '어라 동작봐라'
'동작그만' 쉴샘없이 반복하며 비몽사몽으로
잠에서 깨어난 훈련병 모두의 혼줄을 빼놓습니다.
머리를 침상에 박고 양손을 허리 위로
올려놓음으로써 머리에 가해지는 고통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정도를 넘어섭니다.
참으로 잔인한 고문이라 생각할 정도입니다.
일주일 내내 어김없이 새벽에 들어와 기상시키며
얼차렷으로 정신없이 혼줄을 빼놓습니다.
3~40분은 보통으로 흘러갑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것도 훈련에
들어가나 보다 함에서 기가 차다며
혀들을 찹니다.
훈련병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한 시간씩
서는 데 이처럼 새벽 2시에 들어와서
잠을 깨워 얼차렷을 시키고 나면
이 시간 이후로 다가오는 불침번들은
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렇잖아도 훈련으로 인하여 수면부족인 상태인 데
이 상황을 상상해보아도 훈련병들은
이래저래 한마디로 죽을 맛인 것입니다.
고진감래로 고생하면 낙이 온다고
고생 고생하던 훈련도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기어이 끝은 맺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감에서 "국방의 시계도
원활히 돌아가나 보구나" 하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4주간의 기본훈련이 끝나고 이제 병과의
2주간의 훈련을 받아야 함에서
나는 공대 기계과를 다님에서
김해에 위치한 공병학교로 배속이 되어
공병학교에서 병과에 관한 2주간의 훈련을
받아야 함에 지뢰, 폭파, 부교설치, 장간교 조립
등의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2주간의 교육 중에 공병학교 내에
설치한 각종 공병 병과의 그림들이 세월의 오랜
흔적으로 페인트가 벗겨져서 흉물스러워 다시금,
도색을 해야 함에서 교육생 중에서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찾음에 내가
손을 들고 나섭니다.
문관 한사람과 나는 공병학교 내의 설치한
그림들을 살펴가며 다시금, 예쁘게 하나 하나
붓으로 도색을 해 나갑니다.
탱크, 지뢰, 폭파장면, 크레모아 설치,
장간교 조립과정, 부교설치 모습 등
도색을 해 나갈 때마다 채 마르지 않은
페인트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며칠만 교육에 참석하고서 거의 시간을 페인팅
도색하는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다 도색을 하고 완성한 하나 하나의 모습들을 봄에서
내가 봐도 잘 그렸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의 뒤에 들어오는 기수들이 이 그림들을
보면서 교육을 잘 받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2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더블백을 꾸림에
부산 구포에 위치한 보충대에서 일주일 간을
긴장 속에서 대기하며 기다렸습니다.
훈련을 마친 대기병임에서 일주일 내내
아무 할일없이 삼식 삼끼 식사만 하면서
편히 지냈습니다.
자대 배치는 전방과 후방으로 나누어 지는 데
전방에 배치되면 고생들을 많이 한다는 데
전방에 배치되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긴장의 연속에서 부대로 배치된다며 차에
오르며 도착한 곳이 멀지않은 부산 서면에 위치한
2 관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관구 투 스타 정성만 사령관,
1중대에 배치받아 자대 생활을 하면서
글씨 체가 너무나 좋다 하여서 서무계
조수가 됨에서 이럭저럭 나름 편한
군 생활을 보낸 것으로 기억됩니다.
때로는 군 행사 때나 크리스 마스 때가 되면
이에 필요한 그림이나 글씨 도안은 다
내몫으로 돌아옵니다.
어떻게 알려졌는지.. 어떻게 아는지
소리소문없이 꼬리를 물어 ○ ○○ 일병이
그림에 글씨를 아주 똑소리 나게 잘 쓴다고 알려져서
신참병이라 불평 한마디 없이 아뭇소리도
못하고 이제 모두가 다 내 묷인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고참병들의 애잖은 추억록들도 모두가 다 내 손으로
예쁜 그림으로 탄생함에서 거쳐갔습니다.
군 생활을 하는동안 외출 외박도 잦아
툭하면 외출이나 외박을 나가서 부산의
유명하다는 데는 다 둘러봄에서 군 생활의
추억들도 한 잎, 두 잎 꽃잎이 되어 가슴 속에
채곡히 듬뿍 담아내었습니다.
한 번은 여름 어느 날, 1박 2일 외박을 나왔는 데
마산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1군 유명
건설회사 공사과장으로 근무하시는
작은 형님이 거처하는 곳에서
입었던 군복을 벗고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서울 은펑구 갈현동 집을 갔다 옴에서
마산 고속도로 톨게이트 CC 입구 앞엔
검문소가 있는 데 고속버스가 어김없이
그 앞에서 서니 훤칠한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헌병이 올라와서
거수경례를 하고 눈을 이리저리 조아리며
앞으로 다가옴에서 얼마나 초긴장이 되었는지
지금 생각을 해봐도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헌병이 "이상함에서 수상하다" 하여 신원검사하여
걸리게 되면 근무지 이탈로 영창을 가게됨에
어찌 초긴장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복으로 갈아입고 짧은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책을 읽는 척 하고 있으니
다행히도 내 앞을 지나 휙 둘러 보고나서
거수경례를 하며 천천히 내려갑니다.
외박을 나오게 되어서 부산을 벗어나게 되면
근무지 이탈이 됨에서 심문에 걸리면
영락없이 영창을 가게 됩니다.
휴~ 안도의 한숨,
정말 이 날은 죽다 살아났습니다~^^
일 년 12 월 중에 1, 2, 3 월의 3개월
동안만은 예외임에서 동계훈련을 받음에서
부대 전대원들 한 명의 열외없이 부대 내에서
군사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각개전투, 화생방, 항공기 식별, 사격훈련,
동계야영 부교조립, 장간교 조립, 기타 등등
훈련을 받음에서 50분 간 교육 후 10분 간
휴식을 취하는 데 내내 교육은 소대장 또는
선임중사가 교육관이 되어 교육을 시킴에서
50분 교육 후에 휴식시간 10분 간을
부대원들 1명 씩 나와서
" 탄알 일발 장진" 구호를 외치고 한 명 씩
노래를 불러갑니다.
이렇게 하여 몇날 며칠을 보내게 되면
누가 노래를 잘하고 못 하는지 어느새
금방 파악이 됩니다.
나도 차례가 되어 노래를 부름에 어느 날인가
선임중사가 교육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내가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어서
선임중사에게 "선임중사 님, 오늘은 제가
색다르게 노래 대신에 반야심경을 독경하려 하는 데
괜찮을런지요, 하고 물으니 " 좋아 해봐,
평상심의 마음으로 늘 해오던 반야심경을
5분 여 독경을 함에서 끝나고 나니 여기 저기서
우뢰와 같은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가 한 목소리 함에서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을 하니 누가 들어봐도 영락없이
틀림없는 경지에 이른 스님의 청아하고
낭낭한 목소리로 들렸습니다.
선임중사가 왈" ○ ○○ 일병 " 너는 앞으로
네 별명이 "목탁" 이다.
"휴식시간에 "목탁"하면 나와서 반야심경을
하고서 다음에 노래 한 곡 하고 들어간다"
반야심경을 다 독경하고 나면 약 5분 여,
노래 한 곡 부르고 나면 거의 휴식 10분 간을
내가 다 채우고 들어갑니다.
나는 평소 가곡을 좋아함에서 휴식시간에
내 차례가 되어 노래를 하게 되면
"비목" " 청산에 살으리라" "석굴암" "목련화"
"그리운 금강산 "등을 주로 애창합니다.
그림, 음악, 운동, 문학 어느 것 뭐 하나의 걸림없이
남 보다는 조금은 잘함에서 덕분에
이 후로 나는 부대 내에서 별명이 "목탁"으로
통하며 중대장, 소대장, 선임하사에게
귀여움을 듬뿍 받으며 군 생활을 아주아주
편하게 잘 보내고 2개월 혜택을 받음에서
1981년 7월 23일 수요일,
중대장에게 전역신고를 마치고서
무사히 서울 은평구 갈현동 집으로 귀향했습니다.
전역신고를 하고서 부대 밖을 나서는 순간
왜 이렇게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운지
참으로 하늘은 유난히 새파랗게 보였고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군인정신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을 견지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데에 그 목적으로 삼는다.
따라서 군인은 모든 행동에 있어서 철저한
군인정신을 함양함에 전력을 기울려야 한다.''
군 전역을 한지 44년이 넘었는 데 아직도
잊지않고 "군인정신"이 머릿속에서 되살아 납니다.
군생활을 보냄에서 추억과 함께
소장했던 사진들이 세월 속에 묻혀서
남아 있지 않음에서 이제사 생각함에 아쉬움이
가득 남습니다.
아직도 "군생활"하면 어제의 일처럼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군 동기생 중에 한 명은 44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가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연무대로 가는 기차에 같은 좌석에 앉았고
28연대 같은 소대에서 힘든 훈련을 함께 받았으며
2관구 소속에서 같은 중대에 배속을 받아서
동고동락하며 함께 군생활을 보냈었습니다.
이 또한 보통 인연은 아닐 듯 싶습니다.
확률적으로도 로또 당첨 만큼이나 어려움에서
이는 분명 인연을 뛰어넘어 필연일 듯 싶습니다.
현재 낙성대에 거주함에서 자주 연락이 오가며
자주 만남에서 회포를 풀고 있습니다.
여기 숲길 감성여행 카페에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었던 반가움의 옛 동료 후임 한명이
있음에서 카톡으로 서로가 아침마다
즐거움에서 아침인사를 합니다.
다음 3화로 이어집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바라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권 선생 님, 들려주심에 감사합니다~^^
44 여 년 전의 군 추억들이 새록새록
방금 전역한 듯이 떠오릅니다~
다음 주에 설레임에서 오제습원으로
힐링의 여행을 떠납니다,
한 잎, 두 잎 꽃잎처럼 고운 추억들을
가슴에 채곡히 담아서 기행 수필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행복하세요~^^
-
작성자효시니 작성시간 26.06.22 new
남자들의 술먹다가 군대얘기나오면 눈이반짝반짝~서로 자기가 근무한곳과ㅡ훈련받았던얘기에 밤을 새면서 하던데요
해병대특히ㅡ젤 좋은줄알고ㅡㅋ
저희 아저씨가ㅡ해병대나왔는데요~~들어보면 별거 아닌거같은데 흥분하고 젤 멋있는 척.척.척
하더라구요ㅡㅎㅎㅎ
근데요
전 개인적으로 공군들이 멋졌어요~~~ -
답댓글 작성자바라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효시니 운영자 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육,해,공군 모두가 패기 넘치는
모습들이 자랑스럽지요~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행복하세요~^^
-
작성자효시니 작성시간 26.06.22 new
바라밀님의 제 3편 기대해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바라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3화는 시간 짬나는데로 작성하여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