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새내기 여대생일때
숙대 영문과 다니는
혜련이가
부산 내려 와서는
나보고
홍도가 그리 좋타고
홍도로 여름휴가를 가자고
간곡히 말하는데
배멀미 무서버서
못간다고. 노오. 했더니
지금껏
못 가본 홍도
이제는.
배멀미도. 안하니까
한번 시도해 보는것도
좋을거 같습니다
스무살 때
학교서 거제도 오지
학동 마을로 농촌계몽을 갔는데요
학생회 임원들만 가는데
특별. 게스트로
저를 델꼬 갔습니다요
농어촌 오지 아이들
동요지도를 해주라는 특명 이었죠
초등학교 교실에 모기장을 치고
일주일 숙식을 했습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오지 마을
펌프로 물을 길어서 먹었죠
바닷가로 나가면 둥근자갈들이
끝없이
쭈욱 깔려. 있고요
또
바다물빛은 얼마나 푸르든지 몰라요
소리를. 내면
아련 하게 멀리 까지 다들리는
맑고
싱그런 공기에
너무 좋터라고요
저녁에는
달빛에 비추이는
동네 개울가로 가서
몸 담그고 멱을 감습니다
신선놀음 입디다요
몇가구 안 되지만
주민들께
상비약도 챙겨 드리고
소독약 치는 분무기 매고
집집 마다 다니며
약도 쳐주고
아가를
마루기둥에 허리를 묶어. 놓고
꽁보리밥을 한사발을 마루에 두고
어른들은
밭일 하러 나가고. 없습니다요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건
존공기가 보약 이더이다
오지 농어촌 마을. 아이들 이지만
음성소리도 너무 좋코
동요도
너무 잘 부르더군요
아무래도
가사는 사투리 발음이 나오지요 모
타고난 음색이 참 이뿐 아이들
도회지에
있었으면
두각을 나타 낼터인데
말입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와서
떠나기 전날 낮에
배를 대절해서 해금강 탐사를 했습니다
경치가
우찌나 좋튼지 모릅니다
물살이 그 근처 에서는. 세차더군요
저녁에는
주민위안의 밤을 열었는데
애들이. 나와
독창 중창도 하고
저도 바위고개란 가곡을
독창으로 하고요
주민들도 나오셔서
가요도 부르고요
때묻지 않은 분들과
그단새 정이 들었는지
떠나올때는 눈물을 글썽이며
모두 나와서
손 흔들어 주시더군요
무공해 마을에서
순수한 눈동자들과 함께
나눈 일주일은
잊을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서
오지마을이 아니겠지만
자연고대로의
모습이었던
71년도 여름의
학동 마을은
천상낙원 이었습니다요
아
옛날이여♡
해운대 앞바다 인어상
세계 자연문화유산에 등재된 파미르 고원 산줄기
만년설이 녹아 내린 강물이 멋집니다
곁에 여동생이 나를 보고.
내 다리모양이
인어공주. 같다고 합니다요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라아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8.03 와우
정말로 멋진 말씀을
해주셨네요
청춘은 아름다와라
눈부신 젊음의 시절이었습니다
입학한 그달 3월에 방송국 아나운서가 와서
학교 탐방시간에
강당에서 실황녹음을 하는데 저가 독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마 학교서 다 알려지게 되어서. 농촌봉사에 저를 낑가 준 거 였습니다 -
작성자구현. 작성시간 25.08.03 나이들면 추억을먹고산다더니 농촌봉사할때를 자세히적으셔서 상상을 해 봤읍니다.
-
답댓글 작성자라아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8.03 저가 아스팔트 신작로를 밟고 살다가
오지 바닷가. 마을로
가보니까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
작성자봉의산 작성시간 25.08.03 라아라 님도 동생분도 두분다 미인이 십니다 .
젊은날의 아름다운 추억 입니다 ...
저는 집에서 숙제를 하고있으려면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나가보면
동네 친구들과 오빠몆몆이 닭서리를 해와서 ...한여름날에 닭잡아 먹던
기억이 있는데요 ...어느땐가는 우리집 닭인줄도 모르고 맛있다며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 전도관의 토마토 밭에가서 토마토 서리를
해 왔었는데...만져보며 큰것으로만 따 왔는데 ...이틑날보니 대부분 익지도 않은
퍼런 토마토가 대부분 였어요 ...ㅎ -
답댓글 작성자라아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5.08.04 와우
시골에서 사셔서
그런저런 고운추억들이 있으시니 얼마나 좋으십니까
저는 나서 자란 곳이
3가6번지 도로 아스팔트
끼고 살다가 보니까
파도치는
바닷냄새가 나는 오지마을에 가니까 천상낙원 이었지 뭡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