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퍼온사진입니다
유달산에서 내려다본 목포시내지요
58년전 그해에는 시끄러윘던해였어요 헌데저는 정말세상이 싫어져 몸부림 쳤었지요 3년전사랑하는 누님을
저세상에 보내고 늘우울하게 지내던때 직장을그만두고 ,7월 어는날 단돈 7000원을들고 무작정 집을떠났지요 그냥떠나고 싶었지요
용산역에서 무임승차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고 장시간에걸쳐 목포 바로전역에서 내려 목포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얼마나 더운지 염체불구하고 대문이 열려있기에 무작정들어가 여고생 있길래 물한잔 얻어먹고 얼마나 더운지 등목을하고 가라기에 시윈하게등목을 했던그때가 생각이나네요 무화과도 따다주어 먹었지요 그렀게맛있는 과일은 지금까지 먹어보질못했지요 지금그학생은 75아니면74살 됐겠지요 그학생에게 고마윘다고 전하고 십네요 유달산 중턱에 올라 정자밑에 않아서 목포시내를 바라보니 지금기억에 개와집 지붕에 하얀줄이 쳐져있었지요 저로서는 신기했으니까요 그당시 전 대방동에 살었징ㅛ 서울에서는 못보던 모습이었으니까요 그후또다시 서울행 열차를 타고 올라가던중 삼천포 라는 이름이 너무예뻐 하차하였는데 무임승차로 걸렸지요 역무실에서 역장이 고소장 을 써서 역전파출소로 보냈어요 그당시 기차요금 50원인데 150원을 내라하니 7000천원 갖고내려간 내가
돈이 있어야지요 파출소에 있는데 얼마나 배가고푼지 물한사발을 벌컥 벌컥 마시고 있는데 파출소장님이 역장을 불러 하는말씀이 고소장도 제대로못쓰면서 지금시국이 어느때인데 이런 소소한 건으로 고소를 했다고 하더군요 당시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사건때죠
훈방돼어 삼천포 시내를 도라다니다 넘 배가 고파 생에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걸을 해보았지만 허사였어요
선술집 을지나다가 젊은청년들이 술을먹고있기래 들어가서 세상에나
어쩜이곳 인심이 이리흉함니까 라고 물어봤지요 그때왈 3년동안 쌀구경믈 못했다 하더라구요 홍수때문에 막걸리 한사발 얻어먹고 서울로올라가려니 차비가없어 어느잡지사 기자라는분이 서울가는 차표 끝어주고 먹을것도줘서 너무고맙게 서울에왔지요 집에는 안가고 친구들 잘가는 직장옆 대방동 평광제침 당구장에 갔더니 당구치고 있길래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주머니털어 적선을 하더라고요 그바로 다시 경상도 무전여행길에 드러섰지요 여기 까지만 다음 여행기는 기회가돼면~~ 여행을통해 커다란변화가 왔지요 세상사는 것도많이 배우고 무엇이든지 할수있는 자부심이 생겼지요
나를 바꿔놓은 무전여행 이었읍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삶방식구님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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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칼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09 선배시군요 70년도 입대했지요 보충역으로 있다가73년제대 했어요 강원도 화천에서요 8705부대 그때는 저도힘들었어요 개울에서 원석을 목도로 들어다 진지를 만들고도했지요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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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딱구리 작성시간 26.04.10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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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당재 작성시간 26.04.10 나름대로 멋진
무전여행을 하셨네요.
재미있는글 잘읽고갑니다.
그런데 한가지 부탁을 할게요.
다름이아니고 글자좀 굵게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칼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4.12 제가 눈이 좋아서 그런지 글씨를 굵게 하니까
답답해 보이네요. 그래도 당분간은 이렇게 할 겁니다. 고마워요. -
작성자예빈산 작성시간 26.04.10 잼나게 읽었습니다.
막 고등학교 졸업나이에 값진 경험하셨습니다.
당시 목포행 완행열차 제도 짐칸 선반에 타고 갔던 경험있습니다.
그 무전여행이 이후의 삶에 많은 도움돼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시의 순수했던 마음이 새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