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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매향비를 아시는지요?ㅡ제비집처럼 하늘에 걸린 문수암

작성자고구려|작성시간26.06.10|조회수44 목록 댓글 0

매향비 [埋香碑]란 내세의 복을 빌기 위하여 강이나 바다, 혹은 땅속에 향을 묻어 두고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를 말한다 고려 말과 ㅡ조선 초기 어민들이 갯벌에 향나무를 묻어

 

미륵보살께 공양하였던 의례로 극락왕생을  기원하고자 행해졌다 갯벌에 향나무를 묻어 천년이 지나면

 

침향이라는 최고의 향이 된다고 한다 매향 의례에는 현세의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중의 염원이

 

묻혀 있다 매향한 자리에는 매향비를 세워 조성 시기와 주체 발원내용을 기록하였다

사천매향비(보물 제614호)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들판과 잇닿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세워져 있는 이 비는

 

고려 말 우왕(1387)에 세운 것으로, 당시 왜구의 횡포가 극심하여 나라의 운명마저

 

 불안해지자 승려 중심의 불교신자 4,100명이 향계(香契)를 맺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살기가 평안함을 미륵보살께 비옵니다”라는 뜻의

 

204자의 글을 새겨 놓았다.당시 적은 인구수에 비춰 볼 때 4100명은 대단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침향이란 참나무를 베어서 일정한 길이로 자른 뒤 바닷가에 묻어서 천년이 지나면 침향이라

 

부르는데 희귀약재로도  쓰인다 향은 불교신앙의 필수적인 용품으로 중시되었는데

 

 침향의 경우는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향을 땅에 묻는 행위는 미륵하생신앙과 연결된다.

 

땅에 묻은 향을 매개로 발원자와 하생할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했다. 미륵신앙은 현실 위주의

 

구세·기복적인 것으로 여말선초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시대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것이다. 매향의 주도집단은 보·결계·향도였다.

현장 해설 안내 ㅡ이강산

 

이 같은 미륵신앙은 통속적인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원론적인 강림을 의미한다.“


“ 그리하여 고려 민중들은 가장 좋은 향을 준비해 두었다가 미륵불 법회에 참석하여 그 향을

 

올리려고 했다. 좋은 향은 간절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만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미륵불이 강림할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므로 천년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사용하였다.“

 

“어쩌면 그런 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따져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천년이란 시간의 단위는 통속적으로 계산 된 시간이 아니라, 미륵불을 기다리는 인간의

 

절절한 믿음의 상징적인 표현일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매향비로는 1309년 8월에 세운 고성 삼일포 매향비,

 

1335년 3월에 세운 정주 매향비,

 

1387년에 세운 사천 매향비,

 

1405년에 세운 암태도 매향비,

 

1427년에 세운 해미 매향비 등이 중요하다

문수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문수암은 남해 금산 보리암, 청도 운문사 리암과 함께 영남의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신라 신문왕 8년 서기 688년에 의상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하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라 한다

독성각

 

고성의 명산으로 알려진 무이산은 불가에서는 청량산(淸凉山)

 

이라고도 하는데 청량산은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중국의 산 이름을 빌려 온 것으로 이곳에

 

문수신앙이 있음을 알게 해 준다.문수암자 뒤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쌓여있고 석벽 사이로

 

문수, 보현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어 문수단이라 이름지었다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런 이유로 무이산(武夷山)이라 한다

문수보살

 

문수암의 창건 설화에 의히면  의상대사가 구도행각을 하다가 아랫마을의 어느 불교신자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꿈속에 거지 모습을 한 스님 두 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튿날 아침에

 

스님이 공양을 들고 있는데 마침 그 거지들이 찾아와 밥을 구걸하므로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두 거지는 말없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의상스님은 그들을 따라갔는데 바로 지금의 절터에.

이르렀다. 주변경관을 살펴보니 주위는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해에 자리한 수많은 섬들이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절경을 이루어 황홀감에 빠져 있었다. 그 때 걸인모습의 두 스님이 나타나

 

 이르기를 “의상아, 우리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인데 이곳 바위벽 속에 산다”라고 하고는 바위 사이로

 

들어갔다. 이에 의상스님은 3일 낮과 밤을 기도한 후 절을 지었는데 바로 문수암이라는 것이다

문수암 천불전.

문수암은 일설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가기 전 오려고 했던 곳이었다.

 

고성이 고향이었던 측근 허문도 씨가 이곳을 천거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온다

성철스님은 1950년 6ㆍ25한국전쟁이 나던 해 책만 먼저 문수암으로 보내놓고 경남 기장군

 

 월내의 묘관음사에서 한 철을 나고 하안거와 동안거를 경남 고성군 문수암에서 지냈다

약사전(藥師殿)

기암절벽이 암자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암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남해 한려수도에  떠 있는 섬들이 마치 징검다리와 같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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