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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태자(麻衣太者)

작성자류희관1|작성시간21.02.01|조회수82 목록 댓글 0

 

마의태자(麻衣太子. 생몰년 미상)는 통일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태자(太子)이다. 이름은 사서에 전하지 않으며, 후대에 마의를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 태자라 부른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과 왕후 죽방부인 사이 첫째 왕자다. 935년 10월 부왕 경순왕이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나라를 고려에 귀부(歸附)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개골산(지금의 금강산)에 들어가 바위 아래 집을 짓고 마의를 입고서 초식(草食)으로 연명하다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왕자 이름은 사서에 전하지 않으며, 단지 왕자라 할 뿐 장자(長子)니 태자니 하는 말은 없다. 다만 후대에 태자 또는 마의(麻衣)를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 태자라(麻衣 太子)라고 부른다. 지금 전하는 대부분 이야기도 후대 소설에서 비롯했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935년(경순대왕 9) 10월 부왕 경순왕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 세력에 눌려, 국세가 약하고 고립되어 나라를 스스로 보존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여러 신하와 함께 고려 태조에게 양도할 것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그의 동생 덕지(德摯) 왕자 및 이순유 등과 함께 불가함을 간언하였다.

그러나 경순왕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잡고 말을 하며, 양도를 청하는 글을 지어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로 하여금 고려 태조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에 그는 통곡하며 부왕 경순왕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산길을 따라 개골산으로 들어가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마의를 입고 초식(草食)으로 연명하다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의 동생 덕지 왕자도 처자식을 버리고 그와 함께 개골산에 들어갔다가, 이후 화엄종에 귀의하여 중이 되어 법수사와 해인사에 머물면서 도를 닦으며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랬는데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 사서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또 다른 왕자가 있었는데, 그도 왕에게 항복하지 말 것을 간언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아서 처자식을 버리고 태자와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신라가 망할 때 다른 귀족들은 너나없이 고려에 귀부를 선언하여 왕건이 주는 벼슬과 녹봉을 받고 여전히 호사를 누렸지만, 이들 왕자들은 마지막까지 충절을 지킨 인물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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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태자(麻衣太者)

1956

박재홍(朴載弘)

 

손로원(孫露源) 작사, 이재호(李在鎬) 작편곡

https://www.youtube.com/watch?v=vvF2ydJiBrA

 

달빛만 고요하게 태자僧의 슬픈 추억을 바람따라 물결따라 길손을 못 가게하네

아 아 피눈물에 무덤이 된 마의태자 우리님아

풀벌레 울적마다 눈물이 젖는구나 태자僧 우리님아

 

은은히 들려오는 장안사의 목탁소리만 산을 거쳐 물을 거쳐 길손을 울려만주네

아 아 베옷자락 원한이 된 마의태자 우리님아

장삼에 삭발하신 스님도 우는구나 태자僧 우리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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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에 흘러젖은 태자僧의 푸른방초는 때를 찾아 봄을 찾아 길손을 못잊게하네 

아~ 베옷자락 원한이 된 마의태자 우리님아

그 얘기 밤을 새도 촛불도 끝없구나 태자僧 우리님아(원 3절 가사)

 

 

麻衣太者(마의태자)

남백송

https://www.youtube.com/watch?v=8Ooz7FB1Ccw

마의 태자 麻衣太子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태자.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당시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세력에 눌려 나라의 존망이 위태롭게 되자 935년(경순왕 9)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마의태자는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는데 어찌하여 충신·의사와 함께 민심을 모아 싸우지도 않고 천년사직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느냐며 반대했으나, 경순왕은 죄 없는 백성을 더이상 죽일 수 없다 하여 시랑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국서를 보내 고려에 항복했다.

 

마침내 신라가 고려에 병합되자, 개골산(금강산의 별칭)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풀뿌리·나무껍질을 먹으며 여생을 마쳤다.

 

마의태자 / 최정례

https://www.youtube.com/watch?v=rn7mNsnQW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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