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까닭 없이 오해를 받을 때
말씀: 고린도후서 1장 13-22절
찬송: 426, 424장
성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쉽게 서로에 대해 오해하고 그 오해를 풀지 못해 또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며 살아가는지요. 이렇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만나는 하나님 사람들의 모습 가운데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기대했다가 크게 실망하곤 합니다. 그만큼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선을 베풀었는데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절망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선을 행하면 그것을 보고 마땅히 선으로 되갚아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선을 행하는 나를 크게 오해해서 악으로 갚아줍니다.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한두 번 경험하신 것이 아니죠? 왜 그럴까요? 왜 사람들은 이렇게밖에 못사는 걸까요? 서로의 마음속 깊은 것을 알아주고 서로에게 자기를 내어주며 살면 너무너무 좋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보니 죄의 본질적 특성인 자기중심성이 사람들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우리 모두 솔직히 인정합시다. 아직도 죄의 습관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우리의 수준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오해하며 살아갑니다. 그 오해가 더 큰 화를 불러 서로에게 아픔과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이와 같으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겸손히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죄의 본질적 특성인 자기중심성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나 중심으로 살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삶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늘 듣는 말씀이지만 이 진리를 다시 들어볼까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죄에 대해 죽으셨습니다. 곧 하나님 아들로서 마땅히 누리셔야 할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온 세상을 향해 이 일을 사실로 믿으라 하십니다. 믿는 이들을 향해 예수님처럼 살라 하십니다. 서로를 향해 모든 것을 내어주라 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라 하십니다. 그리하여 오해 없이 참되고 온전한 소통을 이루며 살라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지 말고 풍성함과 넉넉함을 나누며 살라 하십니다. 이 진리를 새겨듣기 위해 성경 말씀으로 가볼까요?
고린도교회와 사도 바울 사이에 큰 오해가 있었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오해가 항상 그렇듯 고린도교회와 사도 바울 사이에 있었던 오해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말할 수 없이 큰 아픔과 슬픔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목숨을 바쳐 사랑하고 섬긴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런 교회로부터 사기꾼과 돈만 좋아하는 무뢰배와 도둑으로 오해를 받았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둘 사이에 왜 그런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겼을까요? 고린도교회가 그들을 사랑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속을 다 살펴 알지 못하고 단지 부분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식구들이 그에 대해서 오해하였던 것처럼 고린도교회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취하려는 못된 마음을 한 번도 품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사도 바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린도교회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고린도교회 식구들이 사도 바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다 들여다 볼 수 있었더라면 아무런 오해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1:12)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그랬겠지만 고린도교회는 더욱 더 그러하였는데,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마음속을 다 살펴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사도 바울을 오해하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누가 사도 바울을 향해 오해를 하기 시작했고 그 말을 주변에 퍼뜨리자 오해가 점점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린도교회 안에서 그 오해가 사실처럼 굳어졌을 때, 사도 바울은 거짓말쟁이, 사기꾼, 돈만 아는 무뢰배, 도둑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고린도교회 식구들은 사도 바울을 향해 그는 맨날 약속만 하고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킨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 번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사정이 허락지 않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두고 한 비난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식구들의 오해와 달리 사도 바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항상 한결같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실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항상 모든 일에 믿음직스럽고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는지 고백하는 말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그는 결코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1:18)
그런데 이런 사도 바울의 속마음을 고린도교회 식구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서로를 향한 오해가 풀리게 될까요? 우선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기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을 하고 변병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마음속에 어떤 소원과 고백이 있었는지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써서 보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이미 부분적으로는 이해했습니다마는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이듯이 우리가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고후1:13-14, 새번역)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1:13-14)
이 말씀을 다시 풀어서 이야기해볼까요?
지금은 우리가 서로를 부분적으로 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며, 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장차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우리 주님 앞에서 서로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온전히 서로를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지금 우리가 서로를 오해하는 것과 달리 서로를 향해 진실 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항상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사도 바울처럼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만날 때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럴지라도 우리가 정말 진실하고 정직하다면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우리 모두가 다 주님 앞에 설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 앞에서 지금 우리가 가진 속마음까지 다 드러나게 되고 모든 오해가 풀릴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좀 오해를 받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으며 사는 삶이 약간 힘들고 고통스러울 따름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과 소망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식구들을 향해 다시 일어나 변명합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신실한 분이신데, 모든 일에 항상 예! 가 되는 분이신데, 어떻게 그의 제자가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사도 바울도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예! 가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선포하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 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 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19-20)
이 진리를 믿는 성도라면 누구나 서로를 향한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손을 맞잡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로, 형제자매로, 동역자로,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코 서로를 허물어뜨리는 자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이렇게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믿는 모든 이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서로를 크게 오해했던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 식구들은 그들 가운데 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로 모든 오해가 풀렸습니다. 관계가 아름답게 회복되었습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를 너희와 함게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1:21-22)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고후7:6-7)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고후7:16)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