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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

작성자김원영|작성시간26.06.13|조회수25 목록 댓글 0

 

 

주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

성경 고린도전서 612-20

찬송 310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6:12)

 

무슨 뜻입니까?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절제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성도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참 자유인입니다. 누군가에게 얽매여 종처럼 살지 않습니다. 모든 자리에서 참 자유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된 진리를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하나님께서는 왜 이 말씀을 반복하실까요? 고린도 교회 식구들이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복음을 오해하였습니까? 고린도 교회 식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피로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피는 어떤 죄라도 씻을 수 있으니,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어떤 끔찍한 죄와 악을 행하더라도 어차피 예수님의 피가 다 씻어 깨끗하게 해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 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아 영에 속한 자들이 되었어. 그러니 몸은 아무것도 아니야. 몸으로 하는 어떤 일도 영에 영향을 줄 수 없어. 이렇게 말하며 음행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잘했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생각은 얼핏 듣기에 굉장히 복음적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식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가르침에 미혹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항상 이렇게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피로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와 나의 이웃과, 세상과, 하나님께 유익하지 않은 일은 절대 행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모두에게 유익한 일을 찾아 행하기도 바쁜데,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그런 짓을 왜 행합니까? 정신이 온전한 성도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진리를 따라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조차 부끄럽게 생각하는 음행을 저지르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한 고린도 교회 식구들을 정죄합니다. 그리고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지간에, 또 한 몸에 연합된 지체이면서도 서로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을 정죄합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전5:1-2)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고전6:8)

 

진리를 오해하면 이렇게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믿어야 합니다. 아무 말에나 너무 쉽게 귀를 열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 배우고 확신한 그 진리(교리)를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권면은 우리가 아무리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

 

본문에 의지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다고 아무 짓이나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어떤 유익을 주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살핀 다음 모두에게 유익한 일만 행합니다. 이렇게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라면 자기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줄지라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의 종이 되어 섬기는 일도 기뻐합니다. 그가 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으로 섬겨야 한다면, 억지로 하는 일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는 누구의 종도 아닙니다. 성도는 참 자유인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예수님처럼 스스로 종이 되어 섬깁니다. 그러므로 한없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의 섬김이 하늘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도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사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러분 옆에 이런 성도가 보입니까? 또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이런 성도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한없이 복된 인생입니다.

 

본문이 선포하는 말씀 가운데 성도의 삶을 지배하는 또 다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나는 무엇에도 얽매여 살지 않는다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우리가 앞서 들은 원리, 곧 성도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즐겁게 하나님과 이웃의 종이 되어 살아간다는 원리와 정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앞의 원리는 누군가에게 자기를 내어주어 종으로 살아간다는 원리이고, 뒤의 원리는 아무에게도 자기를 매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원리이니까요. 하지만 이 말씀을 자세히 살피면 이 두 원리는 같은 원리입니다. 이미 자세하게 말씀을 나누었지만,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진리를 왜곡한 모습이 두 방면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앞서 말씀을 들은 것처럼 윤리적 방탕주의입니다. 이 잘못에 빠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성도가 몸으로 하는 어떤 행위도 괜찮다. 왜냐하면 몸으로 하는 어떤 행위도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회가 진리를 왜곡한 또 다른 모습은 금욕주의였습니다. 이는 윤리적 방탕주의와 정반대입니다. 이 잘못에 빠진 사람들은 몸으로 하는 어떤 일에 매여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자유를 전혀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날짜를 구별해 지키고, 음식을 가려 먹고,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욕망을 억제하는 일을 생명처럼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온 마음을 두지 못합니다. 그럴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리고,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온 세상에 걸리는 일 뿐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예가 불교에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윤회를 믿지요. 윤회를 믿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길을 가다 만나는 개미나 지렁이도 전생(前生)에서 내 형제나 가족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길을 갑니까?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지요. 길을 가다 무심코 내 발에 밟혀 죽는 개미나 또 다른 생물이 전생에 내 부모 형제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의 생명도 빼앗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금욕주의자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금욕주으자가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피해 도망칠 곳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도가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아닙니다. 성도에게는 모든 일이 허락되었습니다. 성도는 참 자유인입니다. 이와 같은 성도의 모습을 사도 바울의 고백과 선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십시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6:13-14)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8-10)

 

성도도 이 땅에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양식을 구합니다. 존귀하게 되어 유명해지기를 구합니다. 성도도 부요하여 더욱 많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빨리 죽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성도를 얽어매 자기 종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음식, 명예, 죽는 일, 가난이나 재물, 어떤 것도 성도를 얽어매 종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왜요? 성도를 위해 하나님 아들 예수님께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에 자유합니다.

 

음식, 명예, 장수(長壽), 재물. 성도에게도 이런 것들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성도는 자기를 진짜 배부르게 하고, 진자 존귀하게 하고, 영원히 살게 하고, 진짜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진리와 삶의 원리를 따라 사는 성도는 사탄이 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예수님처럼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모든 면에서 자유를 누리며 사는 참 자유인입니다. 기꺼이 스스로 내려가 누군가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성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시 볼까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참으로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죽을 몸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6:14)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지금 입고 살아가는 이 몸이 언젠가 하늘에서 살아가기에 합당한 그런 몸으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몸이 그런 몸이라면 이 몸을 아무데나 함부로 내줄 수 없지요. 더군다나 죄와 사탄의 노리개가 되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 지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몸을 창녀와 함하여 창녀의 지체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고전6:15)

 

또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계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고전6:19) 그런데 어떻게 이 몸을 더럽혀 하나님을 욕되게 힐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습니다.(고전6:20) 그 값이 얼마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 값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비싼 존재입니까? 얼마나 존귀합니까? 그런데 어떻게 다른 누군가에게 함부로 우리를 내맡겨 종이 되거나 스스로를 욕되게 할 수 있습니까? 이제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이 복된 믿음을 따라 항상 순종합시다.

 

성도가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자유를 훼방할 수 있는 세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오직 유익한 것을 좇아 스스로 종의 자리에까지 내려갑니다. 성도를 구원하셔서 소유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성도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처럼 살아갑니다. 죄인을 위해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신 예수님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이들의 유익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는 성도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성도는 한없이 복됩니다. 이 세상의 아무것도 이런 성도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노래합니다. 승리는 내 것일세!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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