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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테마기행

라틴아메리카의 인종 혹은 종족성

작성자엄대감|작성시간14.09.04|조회수4,803 목록 댓글 0

라틴아메리카의 인종 혹은 종족성 피부 색깔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다

이 많은 인종은 어떻게 생겨났나

18세기 누에바 에스파냐(멕시코) 부왕령에서 사용되었던 카스타를 나타낸 그림.

오늘의 이야기는 멕시코가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의 이야기다.1) 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위의 그림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자. 마치 만화처럼 분할된 공간 안에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에 나오는 세 사람은 부부와 한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들로 보인다.

그런데 이 가족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과는 무엇인가 달라보인다.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부색이 조금씩 다르고, 그 자녀의 피부색도 각기 다르다. 각 칸마다 하단에 쓰여 있는 글씨를 보면 더욱 정확해진다. 가장 첫 번째 칸의 그림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Español con India”(스페인인과 원주민 여성)
“Mestizo”(메스티소)

그렇다. 이 그림은 바로 인종 혹은 종족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그림이다. 스페인 남성과 인디오 여성이 결합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메스티소가 된다. 다음 그림에 따르면 또 다른 합이 생긴다. 메스티소 남성과 스페인 여성이 결합하면, 그들의 아이는 카스티소(Castizo)가 된다. 그러면 스페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경우는? 네 번째 칸의 그림이 그 답을 말해준다. 그 아이는 물라토(Mulato)가 된다.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인종 혹은 종족성에 속한 사람들의 합은 각기 또 다른 결과를 낳는다. 발견되는 판본이나 사료에 있어서 조금씩 용어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그림에서 나타나는 내용을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하고 수백 년간 원주민을 지배하며 살았던 스페인인들. 이 자료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원주민들과 섞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스페인인들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이 그림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여 수많은 혼종(混種)을 만들어낸 그들의 역사까지 담고 있기도 하다.

서유럽인, 아메리카 원주민을 만나다

콜럼버스와 원주민들의 조우. 미지와의 조우는 다른 한 편에게는 비극이 되었다.

15세기부터 본격화된 서유럽의 세계진출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실질적으로 접촉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이 추진하던 대항해 사업의 목적은 물론 경제적인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전파라는 종교적 사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목적의식을 갖고 소위 ‘신세계’에 발을 내려놓은 서유럽인들이 조우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자신들과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피부색이나 체모의 색깔과 생김새가 달랐기에 당연히 이러한 차이점은 두려움 혹은 신기함 등의 반응으로 나타났으리라.

그렇지만 원주민들이 보잘 것 없는 수준의 조악한 무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서유럽 사람들은 이들이 미개하다 생각했고, 자신들이 물리적으로 강하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서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이들보다 우월한 종족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서유럽인들이 인식했던 원주민들과의 차이점은 차이를 넘어서 유사 인종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차별적인 면모를 띄게 된다. 그들의 ‘신대륙’ 진출의 목적이자 명분이었던 경제적 이익과 종교적 사명을 통해서 말이다.

기독교를 믿지 않고 사유재산에 대한 관념이 약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문화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서유럽인들의 침략과 영토 정복활동은 점차 열등한 원주민들에 대한 문명 전파이자 기독교적 사명인 것으로 미화되었다. 이렇게 미지와의 조우는 한 편에게는 일방적인 비극이 되어버렸다.

인종 혹은 종족의 혼종화와 스페인의 식민지배

스페인인과 물라토 여성이 결혼하면 그 자녀는 모리스코가 된다.

사실 본토에서 건너온 서유럽인들은 원주민들과 결합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최대한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원주민들을 몰아내려고 시도했다. 그렇지만 서유럽인들은 소수였고, 원주민들은 절대 다수였다. 그리고 스페인 제국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주 식민지를 건설하여 영구적인 식민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들이 섞이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스페인 남성들은 원주민 여성들을 빈번하게 강간하거나 축첩했고, 드물게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주로 노동노예로 쓰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수입한 흑인들도 점차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십 년, 이십 년, 백 년, 수백 년이 지나면서 이들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며, 때로는 뒤섞이면서 다양한 인종 혹은 종족성을 만들었다.

스페인 식민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소수에 불과한 백인들의 혈통.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이 점점 갈색 혹은 흑색으로 변색되어가는 과정은 아마도 백인들에게는 서서히 자신들의 권력이 퇴색되어가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졌으리라.

결국 백인의 혈통을 중시한 식민자들은 인종 혹은 종족이 섞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게 되었고, 백인들의 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카스타(Casta) 제도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사람들은 피부의 색깔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구분되는데, 간단하게 말해 피부색이 백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다. 도입부에서 살펴본 그림이 바로 이 카스타 제도를 표현한 것이다.

카스타 제도에 따르면 사회적 지위 체계의 가장 꼭대기에는 순수한 유럽 혈통 백인이 위치하게 되고, 가장 바닥에는 원주민이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 메스티소, 모리스코, 아프리카 흑인들이 위치한다.

가장 우대받는 혈통은 당연히 본토에서 온 스페인인이었다. 이들은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Peninsular)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여 페닌술라레스(Peninsulares)라고 불렸다. 반면 크리오요(Criollo)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태생 스페인인들은 같은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페닌술라레스와는 다른 존재로 차별받았다. 크리오요들은 직업 선택에 제한이 있었고, 관직 임명에 있어서도 차별을 받았다. 당연히 교회 요직에도 임명될 수 없었고, 페닌술라레스와의 자유로운 연애와 결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극소수였겠지만, 흑인 남성과 스페인 여성이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자녀는 물라토가 된다.

같은 백인들끼리도 이러할진데, 다른 인종 혹은 종족은 어떤 취급을 받았겠는가? 당연히 백인이 아닌 인종들은 어린 시절 배울 수 있는 학교도 달랐고, 구할 수 있는 직업도 제한이 되어 있었다. 물론 특출한 소수의 메스티소들은 무역 혹은 상공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더욱 성공하기 위해서는 백인이 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이들의 선택은 백인이 되는 권리를 스페인 정부로부터 사는 것이었다. 마치 조선시대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양반 족보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보다 짙은 갈색 혹은 검은색의 피부를 가진 원주민이나 흑인들은 그 처우가 더욱 심했다. 특히 원주민들은 장시간 노예노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흑인들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당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의 언어, 종교, 풍습 등을 없애기 위하여 조직적인 군사작전이 이루어졌고, 아예 원주민 부족들을 말살하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많은 원주민들의 공동체, 공동재산, 문화유산들이 불타 사라졌다. 물론 수많은 원주민들의 목숨도 사라지고야 말았음은 물론이다.

독립과 인종주의, 그리고 각 국가들이 택한 다른 길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누군가가 다른 이를 지배하는 ‘권력관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총과 칼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무력에 의해서 분명한 힘의 우위를 갖게 되었을 때, 지배 세력은 피지배 세력 혹은 사회적 하층계급의 형질을 열등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다음의 문제는 시간이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렇게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는 형질은 총과 칼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지배 세력은 이러한 우열의 관계를 피지배 세력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반복시키며 세뇌시킨다. 도입부에서 본 그림들은 아마도 이러한 역할을 한 피지배 계급의 대표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세뇌된 사람들의 작품이었거나.

이러한 차별적인 제도는 19세기 초 라틴아메리카가 스페인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2) 그러나 제도와 현실은 따로 노는 법. 21세기 현재까지도 라틴아메리카는 피부색에 의한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비록 공식적인 차별은 없지만, 수백 년간 존재했던 카스타 제도는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스페인이라는 지배자가 사라진 라틴 아메리카에 아르헨티나, 멕시코, 우루과이, 콜롬비아, 파나마, 칠레, 페루 등등 수많은 민족국가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독립된 민족국가를 형성해야 하는 이들 나라들은 인종주의를 극복하고 통합을 실천해야 한다는 과제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인종 및 언어 구성.

이들이 인종 혹은 종족성 문제에 대해 대처한 방향은 매우 달랐다. 그리고 그 다른 방향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모습을 낳게 되었다. 위의 표는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인종구성을 나타낸 것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들이라면, 각국의 인종 분포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다음 연재 글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예를 통해 식민 시대 이후의 라틴 아메리카가 겪었던 혹은 그들이 선택한 서로 다른 인종문제에 관한 해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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