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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섭리"에 관한 이해
1. 섭리에 대한 이해
1) 창조와 섭리는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다. 그러나 일단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도 그것의 절대적 주인으로서 창조물에 관심을 베푸시고, 철저히 중재하시며 자연법칙에 대한 맹목적인 행위나 하물며 우연에 이르기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을 단 한 번의 역사로 모든 창조를 완성시킨 일시적인 신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충분한 일이다. 그리고 주로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이단과 위선자들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힘은 첫 번째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주의 영원한 상태 속에서 온 누리에 영원히 빛나고 있다.” (1) 여기서 칼빈과 루터와 츠빙글리에게 공통된 견해를 발견하게 되며, 특히 부처(Bucer)가 강력하게 주장한 사상, 즉 자신의 창조 가운데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활동하심에 대한 일치된 사상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다. (2) 이 주제는 그의 주석과 설교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독교 강요」의 결정판에는 이에 관한 언급이 두 장에 걸쳐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유사상가들에 대한 논박」(Against the Libertines, 1545)이라는 그의 논문의 핵심적 부분과 소위 「제네바의 합의신조」(Consensus Genevensis)라고 일컬어지는 「예정론」(Treatise on predestination, 1521)의 부록 전체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3) 실제로 예정론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일빈적인 개념인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4) 칼빈의 하나님의 섭리를 창조와 결부시킨 관점은 1539년 이후 확고히 정립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창조 안에서 하나님의 힘을 한때 깨닫고서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그러나 믿음은 진실로 그 지점에서 더 진전하여야만 한다. 믿음은 창조주로서 알려진 하나님을 영원한 통치자와 인도자로서 인식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세상과 우주의 움직임을 운행하시며, 작은 새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들을 보살피시고 유지시키고 먹여주신다.”
2) 섭리의 개념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영원하고 우주적인 활동을 포함한다. 또 1559년에 칼빈이 기록한 바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논할 때, 이 말은 하나님께서 천국에 안일하게 앉아서 땅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관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건에 대처하시기 위해 키를 잡고있는 배의 선장 같은 분이다.”
3) 섭리는 측량할 수 없는 신의 위대함이다. 그는 한 번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지배하신다.
4) 운명이나 우연 같은 것은 없다. 만일 인간이 스스로의 지혜만으로 방치된다면,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없다.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신 바 되었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 목적을 향해 보다 멀리 바라볼 수 있으며, 그들이 어떠한 인간이든 간에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 속에서 다스려진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될 것이다.”
5)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이며, 그 섭리가 지배하는 범위가 얼마나 광활한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믿음은 필수 불가결의 것이다.
6) 불신자들이 오직 자연적인 힘의 작용이나 우연의 결과로밖에 볼 수 없는 곳에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의 세 가지 측면
1)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각기 주신 상황과 특성에 따라 모든 피조물을 인도”하시는 ‘자연의 질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존재와 행위의 가장 우선적이고 직접적인 목적을 여전히 남겨두신 채, 창조 속에 부과하신 법칙들에 스스로 일치시키면서 역사 하신다.
2) 칼빈은 “하나님께서 피조물 속에서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종을 도우시거나 악인을 응징하는 것, 즉 신실한 성도의 인내를 시험하시고 혹은 부성(父性)적인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의와 심판을 실현” 시키는 ‘특볕한 섭리’란 개념을 제시하였다. 결과적으로 특별한 섭리란 특히 인간에게 더욱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끊임없는 간섭과 더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사탄과 악인까지 그의 도구 가운데 포함시켜서 2차적 도구로 활용하시고자하셨는데,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깨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키시기 위해 사용하신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단순히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외면적인 행위의 문제만은 아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 믿는 자들을 다스리시고 살아 계시고 그들 속에서 통치하신다.” (1)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성령의 내적 증거로부터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을 뜻한다. (2)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이다. (3) 하나님께서는 선택된 자들을 재창조의 수혜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감화시키시고 거듭나게 하신다. (4) 성도는 자연의 질서와 특별한 섭리, 그리고 성령의 내적 작용의 지배 아래서 하나님에 대해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뜻의 완성을 위한 수단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5) 하나님의 섭리의 개입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절대적으로 ‘섭리’라는 인과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인과 관계는 1559년판에 첨가된 구절 속에서 재확인되었다. “모든 사건은 - 어떤 종류의 사건들이든지 - 하나님의 은밀한 뜻에 따라서 조종된다. 영혼이 없는 사물에 관해서는 우리는 이 점을 확고히 지지하여야 할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사물에 각각 고유의 특성을 부여하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손으로 인도되지 않는 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4)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진다. 1559년에 칼빈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만일 하나님의 보편적인 섭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른 관점을 허용하여 이렇게 규정한다면 나는 전혀 비난하지 않겠다. 모든 것을 한 번에 세우실 때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운행을 유지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특별한 배려로 보살피신다는 점에서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진다. 모든 사물은 마치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영원한 법칙들에 복종하고 있는 것처럼, 그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어떤 은밀한 인도를 받고 있으며 그것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일단 명령하신 것이 자발적인 성향에 의해 운행되어 나간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그렇게 채색하므로 은폐시키고 애매 모호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고집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행하고도 확실한 증거로써 우리에게 뚜렷이 보여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의심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그의 뜻에 직접적으로 복종한다.
(1)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운행을 유지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특별한 배려로 보살피신다. (2) 모든 사물은 마치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영원한 법칙들에 복종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일단 명령하신 것이 자발적인 성향에 의해 운행되어 나간다. (3) 성경의 확실한 증거로써 우리에게 뚜렷이 보여지고 있다. (4)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그의 뜻에 직접적으로 복종한다.
5) 인간 사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언제나 그 역사와 변화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인도된다. (1) 칼빈은 역사, 특히 돌발적인 혁명들도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서 특별히 설득력 있는 증거로 보았다. “이것들은 인간사가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고 있음을 명백히 나타낸다.” (2) 칼빈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회, 즉 교회를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보살핌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강요」제 l권의 l7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섭리가 관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측면을 거듭 열거하였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가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적용되어야한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둘째, 그것은 만물을 조성하고 인도하며, 때로는 수단의 개입으로, 때로는 수단도 없이, 또 때로는 모든 수단에 역행하여 역사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다음의 목적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즉,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어떠하신지, 무엇보다도 그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배려로 그의 교회를 얼마나 관심 있게 지켜보시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6) 섭리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1)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섭리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2) 섭리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인도한다. “하나님의 섭리가 성도들의 가슴속에서 비취어질 때, 그것은 성도를 억압하는 공포와 고난으로부터 구원하고 모든 의심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3) 하나님의 섭리는 오로지 성도들이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버림받은 악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4)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손으로 사용하는 수단들로 보여지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을 자신의 섭리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7) 악마와 악인에 대한 섭리 (1) 악마와 악인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의해 행할 능력을 갖게 된다. (2) 하나님의 계획의 도구로서의 악마의 개입이 성도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성도의 위안의 원천으로 하나님께 붙잡혀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한다.
악마와 사악한 무리들이 하나님의 굴레에 의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는 한, 어떤 악의도 품지 못하고 또 악의를 품었을 때에도 그 일을 저지르거나 그것을 행하기 위해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속박과 규제로 묶여 있고 굴레의 재갈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 사실을 성도가 깨달을 때 성도는 충분한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8) 하나님은 악의 창조주인가? (1) 칼빈은 악의 발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개입을 강력하게 부정하였고, 그 행위의 전적인 책임은 행악자들에게 있다. (2) 사단과 악인들이 악을 지향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그것을 뿌리내리셨거나 강요하였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악해졌기 때문이다.
9)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 (1) 칼빈은 욥기 l장 l7절을 언급하며, 욥의 약대를 탈취한 갈대아인의 악의 행위에서 하나님과 악마와 인간의 3중 개입을 구별하였다.
갈대아인들은, 스스로를 악행에 내맡김으로 인해서, 그들의 영혼과 육신을 타락시켰다. 그러므로 사단은 그 타락한자들 안에 역사하여 그들 안에 자신의 사악한 통치를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하나님의 뜻과 정하심에 따른 분노의 도구인 사단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서 여기저기로 악인들을 모는 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인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명백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역사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것에 의해, 하나님과 악마와 인간의 행위는 동일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도와 수단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모든 곳에서 훌륭히 빛나게 만드는 반면에, 악마와 인간의 악행은 그 자체의 무질서를 스스로 보여준다. ① 갈대아인들은, 스스로를 악행에 내맡김으로 인해서, 그들의 영혼과 육신을 타락시켰다. 그러므로 사단은 그 타락한자들 안에 역사하여 그들 안에 자신의 사악한 통치를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② 하나님의 뜻과 정하심에 따른 분노의 도구인 사단이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서 여기 저기로 악인들을 모는 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인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지 않는다고 명백히 말할 수 있다 ③ 그러나 의도와 수단의 차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모든 곳에서 훌륭히 빛나게 만드는 반면에, 악마와 인간의 악행은 그 자체의 무질서를 스스로 보여준다.
(2) 하나님의 정의는 의심할 문제가 되지 않으나, 악인은 전적으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을 수행하면서도 개인적인 관심사로 인해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통해 은밀한 뜻 안에서 선언하신 것을 완성시키실 때, 아무리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였다 할지라도 그들 속에 있는 계율을 사악한 탐욕으로 깨뜨리고 거부하였으므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3) 악인들이 악을 범하게 만든 그들 자신의 사악한 의도로 인하여 정죄 받게 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악인들이 악행을 선하신 목적으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이 그들의 의지의 사악함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