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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국가 정보

이스라엘(Israel) - 서아시아 -

작성자김철인|작성시간26.06.05|조회수31 목록 댓글 0

이스라엘(Israel)

- 서아시아  -

 

 

 

 

 

 

  ▶ 개관 : 이스라엘 Israel

              위치 - 지중해 동남방

              인구 -  약 9,648,000명 (96위)[26,06,05]

              GDP - 약 7,198억4,800만 달러 (26위)

              종족 - 유대인(80%), 비유대인(20%)

              수도 - 예루살렘 (한국과 -6시간차)

              면적 -   21,643㎢  (한반도의 배)

              언어 - 아랍어,히브리어

              화폐 - 이스라엘 쉐캐림 (NIS) ILS 환율정보

              종교 - 유대교(77%), 이슬람교(16%)

              국가번호 - 972

              관련 - 날씨 정보

              안전 - 현지 안전정보         

              정부 형태 -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대통령 / 총리)

 

  ▶ 자연 환경 : 이스라엘은 지형학적으로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지중해 연안의 좁고 기다란 평원지대, 둘째, 웨스트뱅크를 지나 이스라엘

              중부에 이르는 구릉지대, 셋째, 그레이트리프트 밸리, 넷째, 네게브 사막지대이

              다. 주요하천은 요르단 江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내륙분지로 유입된다.

              요르단 강은 내륙분지에서 훌라 분지(해수면과 거의 같음), 담수호인 갈릴리湖

              (해수면보다 210m 낮음), 세계에서 가장 염도가 높은 호수 가운데 하나인 사해

              로 차례차례 흘러들어간다. 갈릴리 호는 급수장과 저수지를 통해 서쪽의 대수

              층과 연결되며, 전국 농토의 절반에 해당되는 지역에 물을 공급한다.

 

  ▶ 약사 :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적어도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

             라가며, BC 10000년경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한 증거가 남아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선형(線形)문자의 개발이다. 선형문

             자는 BC 2000∼1000년에 가나안인들이 창안한 것으로, BC 1000년경 페니키아

             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찾아냈다.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알려졌던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 때

             는 BC 13세기말경으로 추측되며, BC 1550∼1200년엔 이집트인들이 지배했다.

             해양 민족들의 출현으로 아시아 속국들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팔

             레스타인에서는 펠리시테인들이 유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

             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 팽창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정복을 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BC 10세기 중반 솔로몬 시대에 최고의 번영을 이룩했으며,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왕국은 이스라엘로 알려진 북왕국과 유다로 알려진 남왕

             국으로 분열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BC 722년에 아시리아인들의 침략

             으로 멸망했으나, 유다 왕국은 BC 625년까지 아시리아 속국으로 남아 있었다.

             BC 587년 바빌로니아인들이 유다왕국을 침략했으며 많은 주민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했다. 

 

             키루스 2세(BC 550∼529) 때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

             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그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의 지배를 받았으며, 뒤이어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이 지역을

             헬레니즘화하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도와 안티오코스 4세(BC 175∼164)의

             성전 모독에 반발한 유다 마카베오가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BC 141년 하스몬

             왕조 때 이스라엘은 독립을 얻었다. 그러나 BC 65년 왕족의 내분으로 내란이 일

             어나 로마 제국이 개입하게 되었는데, 로마 점령기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

             던 그리스도는 AD 30년경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2차례의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135년

             마지막 반란 이후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족은 극소수 집단으로 위축되어 이스라

             엘은 더이상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란사로마사).

             그뒤 팔레스타인은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도교 성지 보호로 인해 어느 정도 번영

             을 누렸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691년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세

             웠다. 그결과 예루살렘은 3대 주요종교의 성지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은 1100

             ∼1291년 이슬람교도들과 십자군에게 번갈아 점령되었으며, 1517년에 오스만

             제국에 넘어갔다. 그뒤 1798∼99년 일시적으로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았고 다시

             이집트의 지배 아래 들어가 무하마드 알리의 통치를 받았다. 무하마드 알리를

             통해 서유럽의 영향을 받던 팔레스타인은 1840년 다시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

             다.

 

             19세기 후반 팔레스탄인에 유대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가 시작되어, 1882

             년 최초로 시온주의자들의 정착촌이 세워졌으며, 1917년 영국은 밸푸어 선언

             통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영국이 1918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1922년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통치를 승인받아 정치적 책임을 떠맡게 된 후,

             이 정책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초 아돌프 히틀러의 박해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

             가 늘어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다. 이에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분할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거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시온주의 국가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가운데 1947년 국제연합(UN)은 팔

             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고, 이스라엘과 이집트·트란스요르

             단(뒤의 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중동전쟁). 이스

             라엘이 1967, 1973년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중동은 지금까지 계속 불안정한 상

             태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지만 1967년

             전쟁을 전후로 팔레스타인 국가와 그 영토 내의 이스라엘 점령지인 유대인 정착

             촌 문제로 여러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졌다.

 

             1982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속한 게릴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레바논

             침공했다.  1987년 이후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이 '인티

             파다'(intifadah : '봉기'라는 뜻)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 당국

             은 1992년 이후 아랍의 여러 국가와 팔레스타인 대표들과 직접 평화 교섭에 나

             섰다. 이듬해 이스라엘과 PLO는 5년 동안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

             인인의 자치를 점차 확대 이행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스라엘은 1994년 요르단

             과 평화협상을 맺었다.

 

  ▶ 경제 : 이스라엘은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바탕을 둔 혼합경제체제이며, 국민총생산(G

             NP)은 인구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1인당 GNP는 개발도상국과 비교해 낮

             은 편이다.

             토지의 약 1/5이 경작되며, 관개시설은 갈릴리 지방과 네게브 사막에 편중되어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약 3%를 차지하는 농업에 인구의 상당수가 종사하며,

             키부츠(집단농장)·모샤브(공동농장)가 경작지의 3/4 이상을 차지한다. 주요작물

             은 감귤류 과일로서 오렌지·그레이프프루트 생산은 세계 최고로 손꼽힌다.

 

             이스라엘은 또한 세계 최대의 칠면조 생산국이기도 하다. 갈릴리 호와 양어장에

             서 잡는 민물고기와 지중해·흑해·대서양에서 잡는 바다물고기가 어획량의 대부

             분을 차지하는데, 잉어와 대구가 주종을 이룬다. 세계적인 칼륨 생산국이며 그

             밖에도 인산염, 브롬칼리와 마그네슘 혼합물(사해), 석회, 소금, 유리질 모래,

             석고, 점토 등이 채굴된다.

 

             건설업은 GDP의 약 5%에 지나지 않지만 건축자재 제조업과 함께 경제에 큰 몫

             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주택건설이 건설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스라엘 경제에서 가장 비중이 큰 부문은 공공사업과 지역사회사업으로 GDP

             의 1/4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4이 종사하고 있다. 관광업은 주요 외화수입원

             이며, 또 관광수입은 보통 이스라엘인이 해외에서 지출하는 액수보다 많다.

 

             정부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유대인 사회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미국으

             로부터 군사원조와 차관 외에 개발원조도 받는다.  주

             주요수출품은 기계류, 다이아몬드 장식품, 과일·채소, 섬유·의류 등이며, 주요

             수출대상국은 미국·영국·벨기에·독일·일본이다. 수입품으로는 다이아몬드 원석

             및 투자상품·연료·윤활유·소비재·식품이 주종을 이루는데,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많아 문제 되고 있다.  수입대상국은 미국·벨기에·스위스·독일·영국이다.

 

  ▶ 국민 : 유대인이 전인구의 4/5 이상을 차지하며, 아랍인은 1/6 정도이다.

             1948년 건국 이래로 수많은 유대인이 유럽·북아프리카·러시아 등지에서 이스라

             엘로 이주해 왔다. 유대인들은 중부 및 동부 유럽 태생과 세계의 다른 지역에

             사는 그들의 후손들로 구성된 아슈케나지 종파, 지중해 및 중동·극동 지역 태생

             의 유대인으로 구성되었으며 2개 지파로 이루어진 세파르디·오리엔탈 종파 등,

             2개의 주요종교집단으로 나누어진다.

 

             소수민족으로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는 아랍인 인구의 2/3 이상을 차지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수니파에 속한다. 그리스도교도는 대부분 도시에 살며, 대개

             아랍어를 쓴다.  학교에서는 제1외국어로 영어를 가르친다.

             유대인들의 약 3/5이 이스라엘 태생이며 약 1/5이 유럽·미국, 약 1/6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의 출생률은 아랍인보다 약 1/3이 낮기 때문에,

             아랍인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유대인의 이민으로 상쇄되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인구증가가 거의 이민 때

             문이었지만 머지않아 자연증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전체 인구

             가운데 약 1/3이 15세 미만이다. 인구의 9/10가 도시에 거주하며, 주로 지중해

             연안 평원에 집중되어 있다.

    

   ▶ 대한 관계 : 1962년 4월 한국과 단독으로 수교가 이루어져, 1964년 8월 주한 상주공

             관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원유수급과 건설시장 확보를 위해 한국이

             중동지역에 본격 진출하면서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1978년 2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폐쇄되고 주일 이스라엘 대사가 겸임을 했다. 그 후 상주공

             관이 없는 상태에서 카이로 총영사관이 이스라엘 관계업무를 관할해오다가 199

             2년 1월 다시 양국의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주한 이스라엘 공관이, 1993년 12월

             주이스라엘 한국공관이 설치되었다. 북한과는 전혀 관계를 맺지 않고 있으며,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북한의 대 아랍 군사지원과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대

             한 무기 지원으로 적대관계가 되었다.

             1997년 현재 교민 3명, 체류자는 374명이다.

 

   ▶ 여행 정보 : 치안상태-불안 / 예방접종-폴리오 : 예방권고 /

                      긴급연락처 : 대사관 (972)9-951-0318 / 무사증 체류 90일, 협정

                      팁 금액 : 레스토랑 이용금액의 10~12%, 호텔 1달러

                      전력 : 230V 콘센트 3구         220 / 230 / 240V  콘센트 3구

                                   

 

   https://www.youtube.com/watch?v=Cduj5KMoRlw < 2:10:42

   [세계테마기행] 역사의 땅 이스라엘 1~4부 / EBS 다큐

   https://www.youtube.com/watch?v=wAengJ3OFjU < 4:41

    이스라엘이 한국은 좋아하지만 일본은 싫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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