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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Iran) - 서아시아 -

작성자김철인|작성시간26.06.08|조회수26 목록 댓글 0

이란(Iran)

- 서아시아 -

 

 

 

 

 

 

  ▶ 개관 : 이란  - Iran

              위치 - 서남아시아 페르시아만 연안

              인구 -  약 93,168,000명 (17위)[26,06,08]

              GDP - 약 3,002억9,300만 달러 (52위)

              종족 - 페르시아인(51%), 아제르바이잔족(24%), 길락마잔다란족

              수도 - 테헤란  (한국과 -5.5시간차)

              면적 -   약 164만㎢ (한반도의 7.5 배)

              언어 - 쿠르드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화폐 - 이란 리얄 (Rls)

              국가번호 - 98

              관련 - 날씨 정보

              종교 - 시아파 이슬람교(89%), 수니파 이슬람교(9%), 조로아스터교

              정부 형태 - 중앙집권이슬람공화제 / 단원제 (대통령)

                안전현지 안전정보

 

              해발 460m 이상의 고원지대이고 10% 정도가 경작지이다. 세계 석유매장량의

              약 10%에 해당되는 풍부한 석유매장량이 이란 경제의 기반이다.

              여러 이슬람 왕조들이 오랜 기간 통치했으며, 19세기에는 영국 등의 경제적 지

              배를 받았다. 1979년 팔라비 정권을 무너뜨린 시아파 지도자 호메이니는 이슬

              람 공화국을 세웠다.

              1980~90년까지 치렀던 이란-이라크 전쟁은 막대한 경제 파탄을 가져왔고,

              이후 정부의 국정운영은 점차 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바뀌었다.

 

 

   ▶ 약사 : 이란에 사람이 정착한 시기는 구석기시대 초기(BC 100000년경)로 거슬러 올

              라갈 수 있으나, 문자로 기록된 역사와 문명은 BC 3000년경 후제스탄의 엘람인

              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BC 2000년 이후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이란인들이 나

              타나 여러 왕국을 이루기 시작했다.

 

              BC 728∼550년 메디아 왕조가 번영을 누렸으나, 키루스 2세가 이끄는 페르시

              아군에 무너졌다. 그후 중동지역에 광대한 제국을 세우고, 로마 제국이 나타날

              때까지 가장 큰 제국으로서 번영을 누리던 페르시아 대제국은 알렉산드로스 대

              왕의 침략으로 사라졌고, 뒤이은 마케도니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도 원주민인 파

              르티아인들의 손에 차츰 무너져갔다(BC 247∼AD 226). 파르티아인들은 그리스

              어를 사용하는 제국을 세웠으나, 거의 끊임없는 로마와의 전쟁으로 약화되어

              1,000년 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인들을 배출했던 파르스에서 온 이란 민

              족인 사산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던 사산 왕조가 비잔틴 제국과의 전쟁으로 많은 희

              생을 치른 후 세력이 약화되자, 아랍 이슬람교도들이 침략하기 시작해 640년에

              는 쉽게 이곳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850년 동안 이란은 사파르·사만·가

              즈나·셀주크 왕조를 비롯한 비(非)이란계 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1502년

              아랍 정복 이후에야 비로소 이란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란계 가문인 사파위 왕

              조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사파위 왕조시대에 국교로 제정된 시아파 이슬람교는 오늘날까지 이란의 국교

              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사파위 왕조시대(1502∼1736) 이후 벌어졌던 수많은

              내전 끝에 1779년 카자르 왕조가 지배권을 확립했으나, 유럽의 정치 개입으로

              이란의 장래는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즉 중동을 향한 러시아 제국의 남하정책

              이 인도 대륙에 세력을 구축하던 영국을 위협하자 이 두 국가가 이란에서 교역

              과 외교 문제로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으며, 그결과 이란은 경제적으로 유럽의

              두 강대국의 지배를 받는 반식민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카자르 군주인 나세르 옷 딘 샤의 지배에 항거하는 폭동

              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무능한 그의 아들 모자파르 옷 딘샤는 1906년에 국회

              (마질레스)를 소집하여 헌법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은 기

              근과 경제적 붕괴로 1921년에 쿠데타가 일어나자, 레자한이 권력을 잡고 1925

              년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린 후, 스스로를 레자 샤 팔리비로 칭하고 왕위에 올랐

              다.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왕위에서 물러난 그의 뒤를 이어 아들 모하카

              드 레자 샤 팔라비가 권력을 계승했다. 팔라비는 이란의 현대화·서구화 계획에

              착수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소외되고 권력이 제한된 결과

              1970년대에 그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1979년에는 결국 정부

              가 무너지고 팔라비는 망명길에 올랐다.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아파 지

              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란으로 돌아와 1979년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기 위

              한 움직임을 주도했다.

 

              혁명 후 이슬람 근본주의에 바탕을 둔 법이 제정되었고, 서유럽은 이란에 대해

              더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1980년 이라크군이 기존의 국경선을

              규정한 조약(1975)을 파기하고 이란을 침공하면서 두 나라 경제를 모두 파탄으

              로 몰고 간 이란-이라크 전쟁

              적 손실을 끼치며 계속되다가 1990년에 종전되었다. 1989년 호메이니가 죽고

              1990년 전쟁이 끝난 후 이란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경제 : 이란 경제는 혼합경제체제로 재정은 대부분 석유 생산을 통해 조달된다.

              1990년대초에는 1980∼90년 오랜 기간 계속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막

              대한 외채와 여러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석유수출이

              재개되었고, 경제를 평화시 체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에 착수해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다. 국민총생산(GNP)은 중동에서 가장 높으나, 갑자기 증가한 인구 때문에

              1인당 GNP는 평균 이하일 것으로 추산된다.

 

              농업 부문은 이란 노동력 가운데 1/4이 종사하고 있으며. 경작기술이 취약하고

              물이 부족한데다가 시장을 이용하기가 어려워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식

              량 생산이 국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작물은 밀·감자·보리·포도·쌀·옥수수·사탕무·사탕수수·담배 등이다

 

              1950년대에 국유화된 이란 석유산업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후

              아바단에 있는 정유공장을 비롯한 유전·정유소·수출항 등의 시설 전반이 파손

              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1990년대초 석유 생산량은 1976년도

              생산량의 1/2 수준으로 떨어졌다. 막대한 매장량의 천연 가스를 비축·보급하는

              국영시설은 중동 최대규모로 꼽힌다. 석유와 천연 가스를 제외한 다른 광물자

              원은 대부분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1949년에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은 1979년 혁명과 함께 끝났다. 이란은 모든 주

              요산업·은행·보험회사를 국유화하고, 경제 자립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따라

              농업 부문과 일부 선별된 산업에 대해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으나, 불안한 국내

              상황과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중요한 경제 조치들의 실시는 1990년대 중반까지

              만 해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석유 생산의 재개로 국가재정이 안

              정되었고 자유시장의 개시로 농업·공업의 국내 생산이 증가했다.

 

   ▶ 대한 관계 : 1962년 10월 수교, 1967년 4월에 한국의 테헤란 상주대사관이 개설되었

              다. 중동지역에서 한국의 건설진출이 처음 이루어진 나라이며, 1969년 5월 우

              호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한국과 문화협정(1974. 7)·경제기술협력협정(1975. 7)

              ·무역협정(1976. 2)·수산협력협정(1977. 5, 1979. 5)·사회보장협정(1977. 5) 등

              7개 협정을 체결했다. 북한과는 1973년 4월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남북한 등

              거리정책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북한과

              밀착해 상호간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1997년 현재 한국인 교민은 44명, 체류자는 215명이다.

 

   ▶ 여행 정보 : 여행경보-여행자제 이라크 국경지역 / 예방접종-말라리아 : 예방권고

                       비자 발급 필요

                       전압 : 220 / 230 / 240V    콘센트 2구

        

 

 

 

  0:47

세계테마기행 이란편 생생영상 - 길이: 0:47

세계테마기행 EBS

 

   https://www.youtube.com/watch?v=bu6MNIjDZNQ < 2:06

   パランガン村 Palangan village in Kurdish area in Iran / 이란 팔란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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