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Iraq)
- 서아시아 -
▶ 개관 : 이라크 Iraq
위치 - 아라비아반도 북동부
인구 - 약 48,007,000명 (33위)[26,06,10]
GDP - 약 2,647억8,400만 달러 (55위)
종족 - 아랍인(75%), 쿠르드인(15%), 터키인
수도 - 바그다드 (한국과 -6시간차)
면적 - 약 43만㎢(한반도의 2 배)
기후 - 사막건조성기후
언어 - 아랍어
종교 - 이슬람교(97%), 그리스도교(3%), 기타
정부 형태 - 과도정권 / 단원제 (대통령)
화폐 - 이라크 디나르 (ID)
국가번호 - 964
관련 - 날씨 정보
안전현지 안전정보
▶ 약사 :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로 알려져온 이라크는 세계 최초로 문자기록 및 도시형
성이 시작된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기름진 티그리스 강과 유프
라테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그 역사는 고대 문명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인들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삼각주 지역에 나타난 시기는
BC 3500년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인들은 설형문자를 개발하고,
우르·우루크·라가시·키시 등을 포함하는 도시국가연합을 형성했다. 이 도시국
가들은 BC 2350년경 아카드 군주인 사르곤의 통치를 받는 제국이 되었다가
아카드인들이 쇠퇴하면서 2개의 새로운 중심세력, 즉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로 나누어져 발전했다. 아시리아인들은 BC 7세기에 고대 중동의 대부분을 차
지하는 광대한 제국을 세웠으나, BC 609년에 무너졌고, 그후 칼데아인을 중심
으로 신(新)바빌로니아가 일어났으나, BC 550년경 이들을 포함한 메소포타미
아 전체가 페르시아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페르시아인들은 BC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었으며, 그의 사후
(BC 323)에는 BC 141년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후 파르티
아와 로마, 곧이어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 사이의 전쟁으로 시달렸으
며, 계속된 전쟁으로 쇠약해진 사산조 페르시아가 AD 7세기에 침략해온 아랍
이슬람교도들에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정복되면서 이슬람 제국의 치하에 들어
갔다.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후에는 칼리프 자리를 놓고 싸우는 여러
세력들간의 싸움으로 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8세기에 아바스 칼리프 왕조가
수립되면서 바그다드가 수도이자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나, 1258년
아바스 왕조가 몽골족에게 멸망하면서 함께 붕괴되었다.
이라크는 16세기에 오스만인들에게 넘어가 1917년까지 여러 세기 동안 지배를
받았는데, 이 기간에 내부적인 반란과 이란을 비롯한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17세기 중반에 페르시아 만 지역과 유럽의 교역이 시작되었는데, 19
세기에 들어와 그 교역량이 더욱 늘었다.
1899년 오스만인들이 독일인들에게 내준 철도부설권에 자극받은 영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중 이라크를 점령했다. 1921년 영국의 보호를 받는 군주국이
세워졌고, 1925년 헌법이 승인되었으며, 1932년에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중 친(親)독일정책을 고수해 1941년 영국에 재점령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정치 소요가 계속되었다. 1958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진 뒤
군사 쿠데타가 계속 일어나다가 1968년 사회주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았다.
1970년대부터는 바트당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의 통치 아래 국가의 산업화와
사회복지 개선에 막대한 석유 세입을 사용했으나, 1980년에 이란을 침공하면
서 이란과 진퇴양난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
휴전으로 중단되었다.
곧이어 1990년 8월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이듬해 1월 시작된 페르
시아 만 전쟁에서 이라크는 국제연합(UN)의 지원을 받은 반(反)이라크 연합군
에 패했다. 전쟁의 포화로 이라크 내의 여러 도시들이 파괴되었으며, 이라크군
도 막대한 전력손실을 입었다. 패전 후 이라크 내 쿠르드족·시아파 등 주요 소
수민족과 종교집단들의 분리주의 운동이 거세게 달아올랐으나, 연합군의 철수
로 여력을 회복한 이라크 정부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2001년 9월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이라크가 미국에 반감을 갖고 대량살상무기(WMD)를
제조×보유하려고 하며, 테러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UN 안전보장이사회는 2002년 11월 이라크에게 무기사찰단 입국을 허용하
고 이전의 모든 결의안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 1441호를 발표했다. 이라
크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였지만, 부시와 블레어는 이라크가 계속해서 금지된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UN의 결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이라크에 대한 공습이 시작되었다.
4월 9일 수도 바그다드가 점령당했고 4월 말에 주요 전투가 끝났다.
바트당이 붕괴한 후, 이라크의 통치는 미국의 고위 외교관을 수반으로 한 연합
군 임시행정처(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CPA)가 맡게 되었다.
CPA가 임명한 이라크 통치위원회는 한정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사담
후세인은 2003년 12월 13일 티크리트 근방에서 숨어 지내다 붙잡혔다.
▶ 경제 : 이라크 경제는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으며, 대체로 국유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1인당국민총생산(GNP)은 다른 중동 국가와 비교해볼 때 낮은 편이
다. 실질적인 연간 GNP 성장률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전에는 9% 이상이었으
나, 1980년에 전쟁이 일어난 후 주로 석유 수출에 의존했던 GNP의 규모가 크
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전국토면적 가운데 약 1/8을 차지하는 경작지는 대부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
테스 강 유역에 집중돼 있으며, 그 가운데 약 1/3이 관개된다. 대부분의 관개
지에서는 농토의 염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가운
데 1/5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 노동력의 1/8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경작지의
4/5가량 되는 지역에서 채소와 곡류가 재배되며, 밀·보리·수박·토마토·포도·대
추야자 등도 많이 생산된다. 국토면적의 1/10가량에 해당하는 목초지에서는
양·염소·소를 사육한다.
가장 풍부한 광물자원은 석유와 천연 가스이다. 원유생산량은 전쟁 피해와 노
동자 태업 등으로 인해 1980년 이후 많이 줄어들었으며, 석유와 함께 생산되
는 천연 가스의 대부분이 계속 타서 고갈되고 있다.
석유 수출로 재정이 확보되면서 정부는 정유와 전력생산 능력을 늘리고, 댐을
세워 관개망을 건설하며, 교통·통신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중요한 공사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라크는 석유산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 부문과 금융계, 교통과 통신 시설 등을
국유화했다. 국영화되지 않은 민간 부문이 이라크 산업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노동조합은 정부 통제를 받으나 제한된 범위 단체협상은 허용된다.
이라크는 숙련공과 농업 노동력의 부족을 겪어왔으며, 많은 건설현장에 외국
인 노동자들을 투입시키고 있다.
▶ 대한 관계 : 1981년 7월 바그다드에 한국의 총영사관이 설치되었고 1989년 7월 9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했으나,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적인
제재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이름해 1월 한국 정부는 이라크 내 공관을 잠정폐
쇄했다.1994년 5월 주한 이라크 대사관도 잠정폐쇄되었다.
북한과는 1968년 1월 30일 수교했으나,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북한이 이란
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1980년 10월 단교했다.
1997년 현재 교민은 11명, 체류자는 4명이다.
▶ 여행 정보 : 여행경보-여행금지 2007.8.7 ~ 2017.1.31 / 예방접종-폴리오
전압 : 220 / 230V 콘센트 3구 220 / 230 / 240V 콘센트 2구
- 현장기록 세기의 총격전 이라크 나시리아 혈투 - 길이: 46:21